정진새
하얀 바닥과 하얀 조명, 천장에는 하얀 종이구름이 매달려 있었고, 쿵쿵거리는 비트에 맞춰 가벼운 멜로디의 전자사운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입장할 때부터 공연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데, 댄서들과 어린이들은 눈높이를 맞추고 가볍게 인사하며 저마다의 환대를 나누고 있었다. 열 명 남짓의 어린이들은 제각기 움직이고 있었다. 폭신한 바닥에서 뛰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고, 눕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린이도 있었다. 몸은 엄마 편에 두고 눈만 무대를 향한 채 오래 생각하는 어린이도 있었다. 무대의 바깥에는 어린이와 동반한 어른들이 무리를 지어 벽에 기대 앉아 공연을 관람하였는데, 부모로 보이는 존재들의 표정도 제각각이었다.
이상하게도 한 아빠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무심하고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아이를 따라다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공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극장은 어떤 몸을 따라왔는가
극장은 조용히 앉아 있는 몸을 좋아한다(심지어 시체처럼…). 끝까지 버티는 몸을 좋아하고, 균일한 리액션으로 반응하는 몸을 좋아한다. 극장은 그러한 ‘말 잘 듣는’ 존재들로 연극의 관습을 쌓아나가고 그들만의 성인문화를 축적해왔다. 그렇다면 어린이 전용극장이 아닌 일반 극장은 어쩌면 애초부터 ‘노키즈존(No Kids Zone)’에 가까운 공간은 아니었을까.
이 작품은 그러한 관습과 다른 방식으로, 어린이 관객들이 별도의 준비 없이 자유롭게 무대에 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야호야호>1는 6세 이상, 10세 이하의 신경다양성 어린이를 위한 참여형 무용 공연을 표방했는데, 자폐, ADHD, 발달장애, 다운증후군, 경계성 지능을 가진 어린이뿐만 아니라 비장애 어린이들까지 서로 어울릴 수 있었다. 각자 다른 인지와 감각, 소통 방식을 지닌 어린이들이 극장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공연의 영어 제목은 ‘Echoing Dance’로, 핵심이 되는 안무(행위)는 바로 따라하기(메아리)이다. 어린이가 팔을 흔들면 댄서가 따라 흔들고, 어린이가 몸을 돌면 다른 댄서가 그 움직임을 이어받는다. 댄서들은 어린이를 관찰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몸을 맞대며 즉흥적으로 미러링(mirroring) 한다. 컨택 즉흥(Contact Improvisation)을 기반으로 하는 것 같지만 이를 섣불리 아름답게 가꾸거나 확장하지 않는다. 의미를 만들기보다 놀이로 남겨두려는 선택처럼 보였다.
어린이에게서 시작된 움직임은 다른 댄서에게 이어지고, 다른 몸들이 하나둘 합류하며 그 흐름을 끊기지 않게 이어간다. 어린이의 움직임이 어른의 동작으로 들어오고, 그 움직임은 다시 메아리쳐 되돌아간다. 완성된 안무라기보다 안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섣불리 꾸미지 않은 채 움직임을 연결하는 순간들, 이른바 어린이 안무가에게 배우는 어른 학생들의 상기된 표정이 이 작품에서 가장 예술적이었다.
공연 중간 어린이들은 마이크 앞으로 걸어간다. 누구는 짧은 말을 하고, 누구는 소리만 낸다. 어린이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확장되기도 하고, 전자적인 울림을 갖기도 하고, 변성되어 들려지기도 한다. 의미를 가진 말도 있고, 금세 흩어지는 소리도 있다. 공연은 그 둘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말을 ‘잘해야’ 하는 공연이 아니라, 아무 소리나 내는 공연이기에 마이크 앞에 선 어린이들은 거리낌이 없다. 문득, 다시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공연을 보고 있었다. 표정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탑 조명이 켜지자 바닥에 빛의 길이 생긴다. 어린이는 손을 내밀어 빛의 질감을 느껴본다. 첫 시작이 그러하니 다음 멤버들도 빛을 눈이 아니라 손으로 감각하려 한다.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해 쓰이던 관습적인 조명기술이 새삼 무색해진다. 빛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처럼 퍼지고, 무대는 어느덧 동물들이 활개 치는 자연으로 변한다. 춤꾼들은 동물의 행동을 따라하며, 친숙한 여러 동물들의 소리를 낸다. 멜로디를 들려주던 음향 또한 벌레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등으로 극의 흐름을 이끈다. 야생의 들판으로 변한 극장에서 어린이들은 “야호~ 야아호~”를 외친다.
시종일관 천장에 매달려 있던 종이구름은 공연 말미에 바닥으로 서서히 내려앉는다. 가까이서 보니 구름은 연약한 재질이면서도 계속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종이 오브제다. 어린이들은 바닥에 내려앉은 구름을 둘러싸고 만져보고, 구겨보고, 찢기도 한다. 약하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들이 서로 뒤엉키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는데, 솔직히 고하자면 ‘멍 때리기’에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놀이의 마력 때문인지, 어린이의 매력 때문인지, 편안한 기분으로 오래 바라보게 된다.
공연 도중 어린이들은 종종 보호자의 품으로 돌아갔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옷매무새를 바르게 한 뒤, 다시 무대로 뛰어들었다. 그것 역시 공연의 일부처럼 보였다. 성공도 실패도 아니었다. 어떤 어린이는 끝까지 무대 가장자리에 머물렀고, 어떤 어린이는 계속 뛰어다녔다. 처음 본 사이 같았지만 손을 잡고 친구가 되어 말을 주고받는 어린이도 있었다. 물론 작품에 참여하지 않는 어린이도 있었지만, 그 또한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끊임없이 깔깔거리며 웃었고, 그 소리가 극장을 가득 채웠다. 그런 낯선 순간들이 묘한 황홀함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어떤 극장을 상상하는가
<야호야호>는 우리가 익숙하게 구분해 온 예술의 범주를 조금씩 비껴간다. 드라마이기도 하고 포스트드라마이기도 하며, 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포용예술, 예술놀이, 예술치료의 요소를 모두 품고 있지만, 어느 하나로 쉽게 이름 붙여지지는 않는다. 몸의 자유를 말하면서도, 결국 모두가 같은 동작으로 보편화되는 장면을 기어코 만들어내는 ‘커뮤니티 댄스’의 문법과도 달랐다. 장애나 예술을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않는 것, 어린이들이 잘 놀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점을 이 작품은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멋진 장난꾸러기 어른 댄서들. 이들은 춤을 추면서도 놀았고, 티 나지 않게 관객을 돌보았으며, 어린이들의 친구처럼 느껴졌다. 오랜 기간의 관찰과 리서치, 그리고 감각적으로 체화된 몸이 실감되었다. 그들의 몸에는 장르와 극장의 관습을 조금 다르게 써보려는 연습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공연을 보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저마다 다른 감각과 소통 방식을 지닌 어린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마음껏 뛰고, 소리를 지르고, 가만히 있고, 참여하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해서. 극장은 그런 존재의 시간을 허락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공연이 끝나고 그제야 아빠는 아주 조금 웃으며 엄마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물론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미래의 예술은 대단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제서야 극장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어떤 시간은 아닐까. 지금 막, 조금 늦게 도착한 미래. 이제 시작인 예술. 어쩌면 내가 본 미래는 그 아빠의 표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진새
극단문 작가·연출가. SF연극, 어린이연극, 생태연극에 관심이 많다. 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 웹진 <연극in> 편집장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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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천뮤지컬센터 금천예술극장, 2026.6.19.~6.20. 공연. 콘셉트·연출 김재리, 안무 이윤정·정지혜, 무용 송명규·정재필·정지혜·정한별, 퍼실리테이터 위성희, 어드바이저 에린 매닝(Erin Manning), 음악·사운드디자인 해미 클레멘세비츠(Rémi Klemensiewicz), 라이브연주 중원, 무대디자인 김동희, 의상디자인 정호진, 오브제디자인 송지은(라움콘), 조명디자인 공연화, 음향감독 강우진, 프로듀서 최봉민. 공동리서치&워크숍 개발 김재리·송명규·이윤정·정재필·정주혜·정지혜·정한별·최봉민·해미 클레멘세비츠·허명진. <야호야호(Echoing Dance)>는 모두예술극장 기획으로 2025년 6월 쇼케이스를 거쳐 2025년 9월에 초연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