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지

2022년,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oyal Shakespeare Company) 역사상 처음으로 장애인 배우가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 역을 연기하기 위해 무대에 섰다. 아서 휴즈(Arthur Hughes)는 선천적인 요골 이형성증을 경험하는 배우로, 오른쪽 팔에 노뼈와 엄지가 없다. 그런 자신을 ‘팔이 다른 사람’으로 정체화하는 휴즈는 실제 척추측만증으로 인해 구부러진 등과 불균형한 어깨가 있었다고 전해진 리처드 3세와는 분명 상이한 유형과 정도의 장애를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숨길 수 없는’ 장애와 장애 당사자로서 겪어 온 경험의 궤적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면, 입을 떼기도 전에 즉각 “진정성”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1

휴즈 이전에도 리처드 3세를 연기한 영국의 장애인 배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헐에 위치한 트럭 시어터(Truck Theatre)의 프로덕션에 출연한 맷 프레이저(Mat Fraser)는 영국 연극사상 최초로 리처드 3세 역을 맡은 신체장애인 배우로 알려져 있다. 해표지증을 가지고 태어난 프레이저의 두 팔은 짧고 휘어진 모양이다. 휴즈와 마찬가지로, 프레이저의 몸은 실존 인물 리처드 3세나 셰익스피어 희곡에 묘사된 리처드 3세의 외양과 완전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까지 리처드 3세를 연기한 배우들처럼 등 위에 베개 뭉치를 부착하거나 지팡이를 짚는 대신, 프레이저는 자신의 장애를 배역의 몸에 그대로 덧입히는 연기 방식을 고안했다. 프레이저는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입증하기 위해 애써 ‘손상을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직접적이고 솔직한’ 존재 방식에 주목했다고 밝혔다.2 이는 리처드 3세라는 배역의 핍진성이 신체의 형태를 희곡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구현해 내는 데서 비롯되지 않고, 오히려 장애 당사자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업에 있다는 믿음을 보여 준다.

휴즈와 프레이저의 태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배역의 몸을 재현적 원본으로 숭앙하기보다, 그 몸에 상응하지 않는 ‘배우’의 몸을 연기적 준거로 내세우는 자세다. 그리고 배역과의 외형적 불일치를 소거하기 위해 몸을 변형하기보다, 오히려 그 차이를 딛고 배역과 배우 사이의 신체적 대화가 연기를 위한 경험적·정서적 재료로 쓰일 수 있다는 신뢰다. 이는 셰익스피어 이래로 리처드 3세라는 배역에 할당되어 왔던, 전형적인 신체적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 몸을 구부리고, 접고, 절뚝이기를 서슴지 않았던 비장애인 배우들의 연기 방법론과는 무척 상반된 태도다. 휴즈와 프레이저의 연기는 막이 내리고 나면 언제라도 보형물을 떼어 내고 ‘리처드 3세 되기’를 종료할 수 있었던 위대한 배우들의 세계에 작별을 고한다. 연극이 끝난 이후에도 장애인 배우가 여전히 낙인과 배제를 경험한다는 것은 휴즈와 프레이저가 결코 ‘리처드 3세 되기’를 중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누가 왜 장애를 연기하는가

오늘날 영국 연극에서 리처드 3세는 “불구 흉내(cripping up)”3를 둘러싼 윤리적·정치적 긴장을 품은 형상이 되었다. 리처드 3세 역을 누가 어떻게 연기할 수 있고/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는 이제까지 명시적으로 장애를 경험하는 배역들이 줄곧 비(신체)장애인 배우에 의해 연기되어 왔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비장애인 배우들에 의한 ‘기형성’ 연기의 역사는 장애 당사자의 자리를 상상하지 않는 재현 관습을 한층 구조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로 인해 장애는 특정한 형태의 몸과 마음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것처럼 간주되었고, 그 결과 장애를 구성하는 사회적·관계적 조건에 대한 생산적 논의가 지체되어 온 것이다.

2024년 셰익스피어 글로브(Shakespeare’s Globe) 극장 사태는 리처드 3세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장애 재현에 관한 오늘날의 논쟁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글로브 극장의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배우 미셸 테리(Michelle Terry)는 한 해의 레퍼토리 공연들을 소개하면서, 5월에 상연될 <리처드 3세>에서 본인이 표제배역을 연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가 된 것은 테리가 장애를 경험하지도, 따라서 스스로 장애인이라고 정체화하지도 않은 배우라는 사실이었다. 영국의 장애예술계에서는 크게 반발했다. 장애 예술가 동맹(Disabled Artists Alliance)에서는 공개 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16세기 말 처음 발표된 셰익스피어의 희곡 속 리처드 3세는 4세기가 넘는 시간에 걸쳐 영국 연극사의 ‘가장 대표적인 장애인 배역’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비장애인 배우 테리의 출연은 그동안 장애 배역으로서 리처드 3세가 획득한 ‘상징성’을 그 자체로 훼손하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테리의 장애인 연기는 글로브 극장이 표방해 온 ‘다양성과 포용의 원칙’에 어긋나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4 장애 당사자 배우 벤 윌슨(Ben Wilson)은 글로브 극장의 캐스팅이 그간 장애연극이 선보여 온 예술적 성과들을 무효화한다고 비판했다. 윌슨은 휴즈와 프레이저를 통해 리처드 3세가 장애인으로서 겪는 불화와 소외의 감각에 비로소 경험적 실체가 부여될 수 있었으며, 전과 달리 장애인 배역의 외양이 과장된 희화로 귀결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리가 리처드 3세를 연기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불구 흉내’이자 시대착오적인 선택이라고 비판했다.5 이에 테리는 장애예술계의 염려를 이해하면서도, 우려와는 달리 글로브 극장이 이미 장애 예술가들과 여러 차례 협업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와 같은 실천을 이어갈 것이라고 답했다.6

흥미로운 사실은 테리가 리처드 3세의 신체장애를 구현하거나 암시하는 연기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테리는 거대한 보형물을 등이나 어깨에 부착하지도, 다리를 절뚝이거나 손을 안쪽으로 구부리지도 않았다. 이와 같은 결정은 테리가 다수의 여성 배우로 구성된 캐스트와 함께 무대에 섰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글로브의 프로덕션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특정한 신체적 형상을 국가 공동체의 불운이나 도덕적 타락에 대한 외형적 상징으로 낙인을 찍었던 초기 근대(early modern)의 신체 패러다임이 아니다. 차라리 혐오적 언사로 무대 위 모든 여성 인물들에게 끊임없이 위해를 가하고, 기울어 가는 잉글랜드를 이끌어 낼 남성 주체로 인정 받기 위해서 폭주하듯 악행을 일삼는 리처드 3세의 ‘유독한 남성성’이다.7

어쩌면 테리가 장애를 드러내는 표지들을 삭제하기로 한 것은 리처드 3세의 장애신체를 수행하는 ‘비장애인’으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리처드 3세가 공격의 표적으로 삼길 주저하지 않았던 ‘여성’으로서 자신의 신체성을 강조하려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다시 말해, 배역의 몸보다 배우의 몸을 우선하면서 그 불일치를 통해 창발되는 의미들을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테리의 연기는 앞서 휴즈와 프레이저가 리처드 3세라는 배역과 상응하지 않는 자신들의 몸을 기꺼이 전경화했던 것과도 닮아있다. 휴즈, 프레이저, 테리가 구현한 세 명의 리처드 3세는 셰익스피어 희곡 속 세계의 질서에 대한, 그리고 하나의 신체를 읽고 해석하는 관점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효과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장애 재현은 서로 어떻게 변별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리처드 3세를 재현하는 작업이 언제나 어떤 몸이, 어떤 몸을, 왜, 어떻게 연기하려 하는가에 관한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카멜레온처럼 색을, 프로테우스처럼 모양을 바꿀 수 있다”8

한편, 리처드 3세의 몸은 사실 재현의 주체와 목적에 따라 언제나 형태를 달리해 왔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신체)장애인 배우들만이 ‘기형적’인 군주를 연기할 수 있던 과거에도, 리처드 3세의 ‘기형성’은 하나의 통일된 형태로 전승되지만은 않았다. 비규범적인 신체를 해석하는 패러다임이 변천할 때마다, 혹은 과거 역사서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리처드 3세의 몸은 기실 계속해서 달라져 왔다. 이는 희곡 속 리처드 3세가 자신을 ‘카멜레온’과 ‘프로테우스’에 빗대면서, 모습과 성질을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영국 연극사에서 리처드 3세의 신체는 이미 ‘차이’와의 충돌과 협상에 개방되어 있는, 가변적인 틀에 가깝다.

일례로, 리처드 3세의 신체장애를 축소하거나 거의 생략하는 연기 방식을 2024년 테리가 최초로 선보였던 것은 아니다. 과거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반까지 런던에서 활동했던 배우들 중에는 구부러진 등, 한쪽으로 기울어진 어깨, 절뚝거리는 걸음걸이와 같은 리처드 3세의 전형적인 신체 특질을 연기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9 예컨대 조셉 조지 홀먼(Joseph George Holman), 존 배니스터(John Bannister), 찰스 킨(Charles Kean)의 연기 장면을 담은 초상화에는 평평한 어깨, 안쪽으로 오그라들지 않고 펼쳐진 채 뻗어 있는 팔과 손이 그려져 있다. 이들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엘리자베스 브라이드 르 페브르(Elizabeth Bride Le Fevre)는 영국에서 리처드 3세를 연기한 최초의 여성 배우로 알려져 있는데, 앞서 살펴본 테리의 연기 방식과 마찬가지로, 리처드 3세의 장애를 시각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10 르 페브르의 연기에 관한 상세한 묘사나 논평을 담은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기형성’ 구현이 연기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당시에 여성 배우가 리처드 3세를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리처드 3세가 지닌 ‘불구성’이 여성적인 신체와도 결합할 수 있는 하나의 타자성으로 해석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한편, 19세기 초반부터 중엽까지는 연령이 아주 어린 배우들이 리처드 3세를 연기하기도 했다.11 1804년 윌리엄 헨리 웨스트 베티(William Henry West Betty)는 12살 소년의 몸으로 리처드 3세 역을 연기했고, 이듬해에는 6살밖에 되지 않은 여자 어린이 배우 클라라 피셔(Clara Fisher)가 같은 역으로 출연했다. 1849년에도 베이트먼(Bateman) 자매가 런던에서의 공연에 함께 출연하면서 6살인 언니 엘렌(Ellen)이 리처드 3세를, 4살인 동생 케이트(Kate)가 리치몬드 백작을 연기했다. 어린이 배우들은 굽은 등이나 절뚝이는 걸음을 연기했다기보다는, 자신들의 작은 신장을 그대로 내보이는 방식으로 리처드 3세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중엽 이후로는 어린 배우가 리처드 3세 역으로 출연하는 경향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당시 런던의 관객에게 ‘미성숙’하고 ‘불완전’해 보이는 어린이의 작은 체구가 리처드 3세의 ‘불구성’에 대한 적절한 비유로 여겨졌음은 분명하다.

리처드 3세 역의 엘렌과 리치몬드 역의 케이트 베이트먼12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유색인 배우가 리처드 3세를 연기하기도 했다. 극단 아프리칸 그로브 시어터(African Grove Theatre)의 소속 단원 찰스 태프트(Charles Taft)가 주연을 맡고 1821년 뉴욕의 파크 시어터(Park Theatre)에서 상연되었던 이 공연은 비백인 창작자들이 주도한 최초의 <리처드 3세> 프로덕션이다. 동시에 흑인 남성 배우가 리처드 3세 역을 맡은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13 배우 태프트는 노예해방 이후 시민 자격을 획득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태프트는 앞선 사례들과 다르게 리처드 3세의 ‘낙타 같은 등’과 불균형한 걸음걸이를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뉴욕에서 활동했던 한 백인 평론가는 태프트의 장애 연기 방식을 과거 백인 배우들과 일일이 비교하면서 거침없이 폄하했다. 이전까지 종아리에 보형물을 부착하거나 변형된 신발을 착용하는 식으로 표현되어 왔던 ‘기형성’이 태프트의 연기로는 매끄럽고 우아한 방식으로 재현되지 않아서 거슬린다는 논조였다.

놀랍게도 첫 공연을 마친 다음 날 태프트는 절도죄로 체포되었다. 같은 평론가는 이 사건을 놓고 태프트가 “리처드 3세라는 옷을 입고 싶어서, 결국은 그 옷을 훔친 것”이라고 기록했다.14 이는 흑인 배우의 리처드 3세 연기가 백인 배우들의 전통적 연기 관습을 ‘훔치듯’ 복제한 것이며, 흑인 타자의 사회적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백인 주체의 ‘옷’을 탐하려 했다는 논평이기도 하다. ‘곱사등’을 구현하기 위해 비장애인이 등을 구부리며 보형물을 부착하는 연기는 명백한 ‘불구 흉내’일 것이다. 그러나 서구 극장의 오랜 관습상 흑인 배우에게 한 번도 허가되지 않았던 ‘리처드 3세라는 무대’에 오르려 했던 태프트의 야심과 실패는, ‘불구’로 태어났기에 이미 악인이 될 운명만을 허락받았던 리처드 3세의 삶을 누구보다 닮아 있다.

이렇듯 리처드 3세를 연기한 비장애인 배우들의 오랜 역사도 실은 언제나 젠더적, 인종적, 신체적 차이들과 혼합되었다 떼어지면서 계속 변천을 겪어 왔다. 앞서 휴즈와 프레이저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백인-남성-비장애인 배우들은 장애를 입고 벗는 연기를 통해 자신의 능란한 몸과 연기적 기예를 자랑해 왔다. 이러한 ‘불구 흉내’의 역사는 연극 무대에서의 능력주의(혹은, 비장애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영속화하는 결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리처드 3세의 ‘불구성’은 여성, 어린이, 비백인과 같은 타자의 것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이는 위대한 배우들에게만 주어졌던 ‘리처드 3세 되기’의 기회를 교차성의 관점으로 재전유하는 기획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것은 규범적인 세계의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리처드 3세라는 문제적 형상을 빌리는 실천이었을는지도 모른다.

리처드 3세를 비롯한 장애인 배역을, 그리고 장애인을 비롯한 여러 주변화된 집단을 재현하려는 오늘날의 공연들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가장 우선하는 것으로 둔다. 이는 아직까지도 소수자를 정당하게 재현하는 작업들이 부족하다는 사실, 그럼에도 당사자를 창작의 주체로 고용하지 않는 관습이 연극계에 여전하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다. ‘당사자 캐스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당사자성이 마법처럼 재현의 윤리를 저절로 보장할 것이라는 속단이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더 나은 장애 재현을 보고 싶다는 요청이 장애인 창작자의 몫을 요구하는 장애정치와 떨어진 채로는 논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 재현에 관한 담론들을 둘러싼 이 구체적 필요들을 이해하면서, 그와 동시에 장애를 재현할 수 있는 권한과 자격이 특정한 몸과 마음에서만 비롯된다는 선언으로 논의를 쉽게 귀결하지는 않으면서, 연극은 어디로 갈 수 있고 가야만 할까.

김현지

연극을 만들면서 기록도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는 자주 관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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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arriet Sherwood, “‘There’s a truth to it’: RSC casts disabled actor as Richard III,” The Guardian, 8 February 2022. ↩︎
  2. Ian Youngs, “Mat Fraser on playing Richard III and TV’s ‘pathetic’ disabled casting,” BBC News, 4 May 2017. ↩︎
  3. Jeffrey R. Wilson, “Cripping Richard III: What Disabled Actors Bring to the Role”, American Theatre, 3 January 2023. ↩︎
  4. Chris Wiegand, “Shakespeare’s Globe criticised for casting non-disabled actor as Richard III,” The Guardian, 25 January 2024. ↩︎
  5. Ben Wilson, “Ben Wilson simmers over the recent Richard III controversy,” Extant, January 2024. ↩︎
  6. “Shakespeare’s Globe’s response to the conversation surrounding Richard III and disability,” January 2024. https://cdn.shakespearesglobe.com/uploads/2024/01/Shakespeares-Globes-Response-to-Richard-III.pdf ↩︎
  7. Arifa Akbar, “Richard III review – a fast-paced study of toxic masculinity with an almost entirely female cast,” The Guardian, 21 May 2024. ↩︎
  8. William Shakespeare, King Henry VI Part 3 (The Arden Shakespeare), John D. Cox and Eric Rasmussen(eds.), London: Bloomsbury, 2001, 3.2. pp.182-186. ↩︎
  9. 이와 같은 연기 경향이 등장한 데에는 당시 역사학계와 셰익스피어학계를 중심으로 실존 인물 리처드 3세의 ‘기형성’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 3세의 몸이 ‘기형적’이었다고 기록하는 과거 역사서의 신빙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동시대 셰익스피어 배우들도 신체 재현 방식을 재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리처드 3세의 굽은 등과 절뚝이는 걸음걸이를 연기하는 배우들 역시 남아 있었고, 1730년대부터 1840년대까지 런던 극장가에는 두 개의 상반된 리처드 3세 연기 방식이 공존했다. 김현지, 「영국 연극에서 리처드 3세의 신체 재현 연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학위논문, 2026 참조. ↩︎
  10. Anonymous, Mrs Le Fevre as Richard III (c. 1782), London: The British Museum. ↩︎
  11. Alice I. Perry Wood, The Stage History of Shakespeare’s King Richard the Third, New York: Th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09, p.112; Jeffrey R. Wilson, Richard III’s Bodies from Medieval England to Modernity: Shakespeare and Disability History,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2022, p.165. ↩︎
  12. Hollis, Miss Ellen Bateman as Richard 3rd and Miss Kate Bateman as Richmond (c. 1860), Washington: Folger Shakespeare Library. ↩︎
  13. Wilson, ibid., pp.161-163. ↩︎
  14. Mordecai Noah, National Advocate, 19 November 1921, quoted from Wilson, ib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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