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란
미래 서사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 두산인문극장 공연으로 올라간 <모어 라이프(More Life)>로런 무니&제임스 예이트먼 작, 민새롬 연출, 두산아트센터, 2026.4.29.~5.17.는 2025년 런던 로열코트극장 초연작이다. 이 작품은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의 미래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뇌를 스캔하고 기계장치에 이식하고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상상력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러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다시 상상하게 한다. 작가는 인간의 ‘신체’를 폐기하고 ‘의식’만을 기계장치에 이식한다는 상상력이 휴머니즘적 주체에 대한 ‘데카르트적 집착’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이러한 집착에는 여전히 서사적·감정적·도덕적으로 매우 풍부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생체기술과 정보기술의 미래를 꽤 촘촘한 서사로 그리고 있다.
마인드 업로딩, 프랑켄슈타인 미래 서사
공연은 3시간에 육박하는 165분의 러닝타임으로 진행된다. 1막의 배경은 생명보존 기술을 연구하는 에디우스 연구소이다. 이곳에서 브리짓은 죽은 지 50년만에 ‘의식’이 깨어난다. 2막은 마인드 업로딩에 성공한 브리짓이 여전히 생존해 있는 남편 해리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에디우스 연구소는 빈무대와 커다란 스크린으로 이루어져 있고, 해리의 집은 가구와 식물 화분들로 채워져 있다. 에디우스 연구소는 인간을 위한 가구는 모두 치워져 있는 차가운 공간이다. 이곳에서 의식이 깨어나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브리짓의 욕구를 공간 자체로 이해하게 한다. 인간의 공간에는 비록 인공적으로 보이지만 커다란 식물의 그림자들이 스크린 벽체를 채우고 있다. 에디우스 연구소는 비생명의 공간, 인간의 공간은 생명의 공간으로 대조되고 있다.
2026년, 브리짓은 자율주행 자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그녀의 뇌는 ‘생화학, 심리학, 노화방지 분야에서 선구적인 생명보존 기술을 연구하는 에디우스 연구소’에 제공되었다. 그리고 50년 후, 비약적인 기술발전이 이루어진 어느 시점, 브리짓의 의식은 인공신체 B389-6 안에서 다시 깨어났다. 브리짓의 의식을 다시 ‘불러오기’한 인물은 빅터이다. 빅터는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실제로 공연에선,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바라보며 혐오를 느끼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대목이 인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브리짓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실험에 의해 깨어난 또 다른 몬스터인 셈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이 시체들을 얼기설기 기워내 만든 거대한 남성 괴물이라면, 빅터의 실험체는 매끈한 인공신체를 가진 여성형 안드로이드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프랑켄슈타인 서사를 브리짓의 서사에 끼워 넣고 있다. 브리짓의 이름은 과거와 미래, 인간 정신과 신체의 ‘연결’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의미로 읽힌다. 해리라는 이름도 익숙하다. 해리는 이른바 다윈의 거북으로 알려진그러나 나중에 암컷으로 밝혀져 해리엇이라는 이름으로 정정되는 해프닝을 겪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땅거북의 이름이다. 해리는 홀로 오래 살아남은 멸종위기종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공연의 결말에서 해리는 마인드 업로딩을 통한 생명연장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다. 해리는 인간의 죽음을, 그리고 멸종을 받아들이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혹시 해리의 현재 부인인 다비나는 다윈의 여성형 이름인 것일까? 결말에서 다비나는 생명연장 기술을 받아들인다. 인간의 삶을 끝내고, 인공신체의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모어 라이프>는 미래 기술 서사를 낯선 SF가 아니라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살려내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식된 의식 혹은 편집된 의식
공연 초반은 브리짓의 의식을 인공신체에 업로딩하는 과정을 꽤 꼼꼼하게 보여준다. 무대에는 인공신체 B389-6과 빅터 박사가 있다. 빅터는 인공신체에 여러 자아의 의식 파일을 불러와 대화를 시도한다. 어떤 의식은 의식은 있지만 신체를 움직이지 못한다. 어떤 의식은 일어서긴 하지만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다. 어떤 의식은 인공신체와 자신의 자아를 연결하지 못한다. 어떤 의식은 인공신체와 자신의 자아를 연결할 수 있지만 새로운 신체의 감각에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인공신체는 매끄러운 피부를 가졌지만 유기체가 아니다. 전원을 끄면 꺼진다. 매끄러운 피부와 유연한 움직임을 가진 인간배우가 B389-6의 역할을 맡고 있지만, 그/그녀는 기계인간, 곧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한스 모라벡은 1988년에 쓴 책 『마음의 아이들』김영사, 2011에서 인간의 뇌를 스캔해 컴퓨터로 업로딩하는 시나리오를 보여주었지만, 이제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과 같은 신경망과 이동성을 가진 인공신체에 의식을 업로딩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당연히 이 로봇은 비싸다. 이 로봇은, 노화방지와 생명연장 기술을 가진 에디우스 연구소의 고가의 상품이다.
기계신체 B389-6의 역할은 이진경 배우가 맡았다. 이진경 배우는 벌려진 입, 표정 없는 얼굴 근육, 허우적거리는 팔다리, 기괴한 모습으로 널부러져 있는 모습으로 기계신체의 모습을 표현했다. 기계신체의 목소리는 무대를 둘러싼 코러스 역할의 배우들이 마이크를 들고 여러 자아의 대사를 돌려가며 말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이진경 배우는 그 대사에 맞춰 립싱크를 하며,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외부에서 이식된 의식의 목소리로 말하는 장면을 연기했다. 몸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로 의식을 표현하는 방식은, 의식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 집어넣었다가 뺐다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브리짓은 똑똑하다. 브리짓은 기계신체에 잘 적응한다. 자기 몸을 컨트롤할 줄 안다. 기계 몸으로 느끼는 자신의 감정도 표현할 줄 안다. 빅터는 환호한다. 실험 성공이다. 기계신체들의 B389-6, N351-4의 일련번호처럼 무수히 많은 실험체 중에서, 브리짓은 유일한 성공 케이스이다. 그런데 이 실험은 좀 잔인한 데가 있다. 빅터는 브리짓의 성공 가능성에 집착하며, 원하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브리짓을 반복해서 껐다 켠다. 원하지 않는 기억은 삭제하고, 원하는 기억과 감정이 남도록 유도하고 편집한다. 이런 식으로 다시 깨어날 것이라면 영원한 삶을 사는 기계신체라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경악하게 된다. 브리짓은 더 이상 자신의 의식과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없다.
그러나 브리짓은 똑똑하다. 브리짓은 자신에게 지워진 순간이, 지워진 기억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빅터가 자신의 의식을 편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브리짓은 그만두고 싶다. 그러나 브리짓에게는 자기결정권이 없다. 빅터는 반복해서 브리짓의 전원을 꺼버리고, 다시 깨어난 브리짓은 이 실험실에서 나가고 싶다. 브리짓은 남편 해리가 보고 싶다. 브리짓은 이제 코러스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브리짓의 기계신체는 힘이 세다. 브리짓은 빅터의 눈알을 뽑아 홍채 인식으로 열리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2막에서 브리짓은 드디어 해리를 찾아간다. 해리는 80세가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모습이다. 그의 아내 다비나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부자다. 이들의 목에는 건강관리를 위한 생체칩이 이식되어 있다. 다비나는 먹지도, 자지도, 숨 쉬지도 않는 브리짓의 몸을, 그리고 영원히 늙지 않는 브리짓의 피부를 원한다. 그러나 해리는 혼란스럽다. 해리는 브리짓에게서 50년 전 과거의 자신의 모습만을 찾는다. “해리, 당신은 정말 다 내어주는 사람이었어.” 브리짓은 말하고, 그 순간 관객은 알아차린다. 이제 그는 50년 전의 그가 아니구나, 하고. 해리는 어정쩡한 태도로 브리짓의 뇌 실험동의서에 사인을 한 사실을 인정하고, 막대한 보상금의 대가로 지금 이곳에서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하게 만든다. 브리짓의 사후 어느 시점에 인류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고, 세상은 망했고, 일부의 인류만 살아남았다. 브리짓은 해리에게 말한다. “당신은 돈 뒤에 그냥 숨어버렸어. 다들 죽게 내버려 뒀지. 우리 언니도. 내 남편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야.” 브리짓은 다른 신체 속에서, 해리는 달라진 마음 속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프랑켄슈타인 혹은 드라큘라
공연의 마지막 장면은 갑작스러운 비약과 함께 끝난다. 브리짓은 다시 실험실로 끌려간다. 브리짓은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브리짓은, 에디우스 연구소 이사회 앞에서 스스로 전원 스위치를 끄고 죽을 수 있는 결정권을 갖게 되었을 때 스위치를 끄지 않는다. 브리짓은 계속 살아가기로 한다. 해리의 장례식장에 참석하고, 수백 년이 흐르고, 마지막 인간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브리짓은 영원한 삶을 산다. 그러나 기계신체를 가진 브리짓이 영원히 산다는 설정은 일종의 비약이다. 기계도 죽는다. 기계는 마모되고 낡아간다. 혹은 부품이라도 단종되면 그 기종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극 전반부에서 꽤 정교하게 마인드 업로딩 기술을 그렸던 작품은 후반부에 아무런 물리적·기술적 설득력 없이 판타지로 비약한다. 브리짓은 더 이상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이름 없는 몬스터가 아니다. 그/그녀는 이제 영원히 사는 존재인 드라큘라가 되었다. 서사의 장르가 바뀌었다. 기술 서사가 고딕 호러가 되었다.
프랑코 모레티는 『공포의 변증법』새물결, 2014에서 부르주아 계급의 공포를 대변하는 두 인물로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를 든다. 프랑켄슈타인의 몬스터는 이름도 없이 사는 노동자포드자동차의 노동자처럼 그에게는 이름이 없다를 의미하고, 드라큘라는 죽었지만 죽지 않는 자, 다른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영원히 살아가는 자라고 말한다. 모레티는, 프랑켄슈타인의 몬스터와 드라큘라에게서 산업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자와 독점 자본가라는 양극단의 모습을 읽는다. 드라큘라는 귀족이다. 그는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의 몸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는 인간의 몸을 가졌지만, 인간이 아니다. <모어 라이프>에서도 인류 멸종의 시기, 부자인 다비나는 기계신체를 통해서 영원한 삶을 살아가길 선택한다. 이는 기술 낙관주의 시대의 새로운 드라큘라 서사로 읽힌다.
이 작품은 우리 시대의 ‘똑똑한 괴물’ 스마트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으로 시작해서 실리콘 드라큘라의 결말로 끝난다. 빅터의 이름 없는 괴물 B389-6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라벨이 붙은 상품이 되었고, 브리짓은 영원한 삶을 사는 실리콘 드라큘라가 되었다. 자기 몸과 의식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없는 스마트 프랑켄슈타인, 혹은 자기 생산 없이 자기 기억의 복제품으로만 남는 실리콘 드라큘라의 삶, 모두 끔찍하긴 마찬가지이다.
김옥란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