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현, 나희경, 박예지, 심지후, 이도원, 이예본, 정명기

퀴어페미연극센터에서는 비정기적으로 다른 키워드를 가지고 창작자들이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 5월 18일 월요일에는 ‘예술정책’과 ‘창작자 지원제도’ 이슈를 중심으로 토론하는 모임이 있었다. 기획, 연출, 배우, 작가 등 다양한 포지션의 창작자들이 모여 여러 해 동안 지속되고 있는 지원사업과 2026년도에 변경 및 새로 도입된 사업, 특히 청년 예술가를 타깃으로 한 정책들을 살펴보았다.1) 토론 내용을 더 많은 창작자들과 공유하고자 중요한 주제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이 내용이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의 경험만을 중심으로 논의했다는 한계를 안고 있음을 밝힌다. 각자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창작자에게 양해를 구하며, 존경의 마음을 덧붙인다.

변화무쌍(變化無雙)과 불변부동(不變不動) 사이에서

첫 번째 화두는 ‘K-Art 청년 창작자 지원사업’(이하 ‘케이아트’)이다. 케이아트는 새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문체부, 예술위, 문광연, 광역자치단체 및 광역문화재단이 함께 추진하는 지원사업으로 등장한 신규사업이다.2) 그런데 사업의 목적이 모호하여 서류 작성 과정에서부터 난관이 있었다. 지원 공고는 작품 ‘개발’ 단계의 창작자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설명되었는데 지원서 양식은 ‘완성’ 혹은 ‘무대화’에 관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분량 제한도 없어서 서울문화재단에 문의했더니 그냥 칸만 채우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와서 가능한 한 많은 서술과 자료를 첨부해야 할 것 같은 심리적 부담이 있었다.

또한 케이아트 지원 과정에서는 신청서 외에 필수 서류(지원서, 포트폴리오 등)와 ‘청년예술인 창작 여건 조사 응답 완료증’을 제출해야 했다. 창작 여건에 관한 조사 자체는 예술인 DB 구축을 위한 것으로 이해되었지만, ‘작품활동을 위해 소요되는 시간’ 뿐 아니라 ‘구체적인 수입’까지 적어내야 했고, 수면 시간과 같이 지극히 사적인 일상에 대한 질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창작자가 자신의 빈곤을 증명하고 사적인 일상을 노출하는 데이터를 토대로 선발되기를 기대해야 하는 ‘수치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예본

설문조사에 사용된 언어들이 일종의 수치심을 일으키는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렇게 추출된 데이터가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그리고 내가 작성한 답변이 과연 유효한 데이터로 사용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나희경

예술가가 대체로 프리랜서라는 걸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어제 오늘 어떤 타임테이블로 생활했는지 얘기하라고 하는데 그걸로는 이 설문의 목적이 달성될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수입 창출을 위한 활동, 예술 작업을 위해 쓰는 시간, 수입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데이터가 명확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나? 기준값이 되어줄 수 없는 데이터인데… 그리고 진짜 많이 뽑았더라. 서울에서만 1,000 명, 경기도는 400명, 전국적으로 3,000명…

심지후

이 사업이 ‘복지’ 개념으로 들어간 것 같다. 지금 문체부 예산 자료를 보고 있는데 케이아트 청년예술인 지원 기획이 애초부터 중요한 꼭지로 있고 거의 융자 사업이랑 유사한 정도의 중요성을 갖는다.

나희경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도 예술기업들의 재정이 불안정하니까 센터가 보증을 서준다는 식으로 해서 융자 지원을 하는 행태들이 나오고 있다. 예술분야에 산업의 논리를 계속 주입하는 것이다. 무이자 또는 저리로 대출해주고 세제 혜택도 줄 테니 살아남아라. 어쨌든 그 빚을 떠안는 건 예술가들이다.

심지후

처음에 창업 지원제도에서 이런 유사한 지원이 많이 나왔는데 2억 원씩 무이자나 저리로 빌려주는 것들… 우리를 자영업자의 일부로 보고 돈 빌려줄 테니 어떤 브랜딩이든 해보고 갚아라, 이런 식이다. 청년창업 지원사업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청년들도 많다. 지금 청년 부채 비율이 얼마나 높은데 이것부터 탕감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나희경

기관들은 문화예술진흥법에 근거해서 지원사업을 마련한다. 법에 나와 있는 대로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민족문화 창달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니까 문화예술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 아닌가. 근데 마치 ‘너네 가난하니까 우리가 지원한다, 너네 공연하고 싶어 하니까 우리가 지원한다’, 이런 식의 프레임을 계속 씌운다. 예술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창작 활동일 수 있지만 이 창작 활동들이 모여 국가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를 하니까 지원을 하는 것이지 않나? 지원을 할 거면 똑바로 해야지, 마치 우리가 떼 쓰니까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한다.

케이아트는 2026~2027년 2개년에 걸쳐 지원금을 지급함으로써 기초예술 창작 기반을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되어 있으며, 지원금은 보조금을 원천징수하고 선정자 1인당 연간 900만원의 창작‘사례비’를 지급한다. 연극을 만들기에도, 창작자의 연봉이 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사례비는 상,하반기에 분할 지급되기에 최소한 중간 보고서와 결과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을 정도의 결과물은 만들어내야 한다. 2026년 발표 기준으로 서울권에서 1천 명의 청년예술가가 선정되었으니 최소한의 사례비로 1,000여 개의 성과가 산출될 것이다. 얼마나 가성비(?) 좋은 사업인가.

매년 예술인을 위한 새로운 지원사업이 등장하고 때때로 계획과정의 고민이나 방향성의 변화가 느껴져 반갑기도 하지만, 창작자 입장에서는 지원금을 얼마 받든지 최상의 공연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기꺼이 서로를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구조는 불변한 채, 성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업들이 창작자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쉽게 기대하기 어렵다.

관객 개발, ‘지속가능성이라는 불가능한 단어

우리들의 수다는 근본적인 ‘공연 향유층’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기초예술에 관한 관심과 수요가 꾸준히 하락하는 현재 상황에 ‘관객개발’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피고, 안타깝게도 본질에서 빗나가고 있는 정책의 방향성을 되짚었다.

나희경

얼마 전에 예술위의 문화예술 생태계 진단 연구과제 발표에 갔다. 연구의 결과가, 결국에는 공연팀들이 홍보 마케팅 역량이 없고 관객개발 역량도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자기들도 이제 그런 홍보 마케팅 지원을 하겠다는 게 요지였다. 문화예술이라는 게 어릴 때부터 접점이 많아져야 되는데, 지금은 청소년 동아리 예산이나 활동 지원이 확연히 줄었고, 예술 강사들도 다 일자리를 잃었다. 관객을 소비자로만 대하는 것이 무슨 관객개발인가.

김남현

시장의 파이를 늘리면 기초예술 쪽으로 관객들이 올 거라는 생각에 홍보 마케팅 분야를 성장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자본 규모가 큰 공연이나 상업극의 관객들이 단순히 마케팅을 통해 기초예술로 넘어오지는 않는다. 지금 단계에서 기초예술의 관객개발이란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되는지 궁금하다.

이도원

아이들 세대에서도 지역에 따라 격차가 크다. 지역에서는 공연을 다양하게 보면서 자란 경험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역 문예회관에서 하는 투어공연을 우연히 한 번 본다던가 하는 식이니까 말이다. 관객개발의 차원에서는 일상적으로 다양한 작품에 대한 선택권을 넓혀줘야 한다. 문화센터나 예술회관에 가면 언제든 고를 수 있는 옵션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희경

어떤 면에서는 ‘신나는 예술 여행’ 사업이 그런 역할을 했었는데 이제 그것도 없어졌다. 그 사업은 아파트나 어린이 청소년 시설이나 그런 데 가서도 공연을 했는데… 예전 샘터파랑새극장이 역사적으로 아동극을 많이 했던 극장이라서, 어릴 때 거기서 공연 봤었다면서 또 다른 공연들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제 샘터는 사라졌고, 학전도 어린이 공연 많이 했는데 이제 꿈밭이 되었다. 꿈밭은 어린이청소년극 위주로 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그런 작품이 많이 올라가고 있지는 않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모든 참여자들이 공감한 부분은 문화예술 생태계가 점차 축소되고 있고, 청소년을 위한 창의예술 활동 시간과 예산 삭감으로 인해 청소년들이 공연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확연히 감소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지역에 따라 극장 및 작품 선택의 편차가 존재하고, 투어공연은 심사를 통해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방식이기에 예술 향유자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주요하게 논의한 부분은 ‘청소년의 예술경험’이다. 나이, 지역, 장애 등의 제약을 넘어 예술 작품을 선택하고 향유해 본 기억과 경험의 부재는 청년, 장년, 노년이 되도록 선택의 부재로 이어진다. 청소년이 연극을 본 적도, 무대에 서 본 적도, 창작 과정을 겪어본 적도 없다면 예술 분야는 장래 진로의 선택지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관객이 되어 본 경험이 없다면 창작의 길에 들어서기는 원천적으로 어렵다. 지원금의 회복과 함께 중요한 것은 예술교육과 청소년 예술활동에 대한 철학과 장단기 계획이다. 이것을 정권과 예산 상황에 따라 존폐를 오가는 부가사업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정부의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 예산은 대폭 삭감되어 2023년 574억 원에서 2024년 287억 원, 그리고 2025년 80억 원으로 86% 가량 줄었다.3) 더불어 청소년 동아리, 어울림, 정책참여 활동 지원비 역시 전액 삭감되어 ‘예술 선택의 기회’는 사라지고 ‘예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 역시 희미해졌다. 끊어진 예술교육과 청소년 활동의 공백을 메울 대안이 필요하다. 결국 문제는 단순한 예산 부족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예술을 만나고 꿈꿀 수 있는 통로 자체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예술을 선택할 수 있으려면, 먼저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희미한 불티에게도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청년창작자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창작 세대로 자리 잡기를 바라면서도 때로는 ‘청년’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발견한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구조에 놓인 창작자가 한 개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토론은 불특정 다수의 예술인이 모이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열린 공간의 필요성으로 이어졌다. 비단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방향으로 튀어 올라 옮겨붙을 수 있는 불티의 장이 필요하다는 데에 가 닿았다. 참여자들은 한때 강력한 플랫폼의 역할을 했던 페이스북 ‘엑스포럼’도 이제는 시들해졌다고 느끼며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디에 공론의 장을 두어야 하는가’ 물었다.

김남현

여기 모인 것처럼 청년 예술인들도 뭔가 공론의 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만의 방식이 없으니까 결국 목적이 모호한 협회와 기존 플랫폼들이 대표성을 가져간다. 그쪽은 적어도 눈에 띄긴 하니까… 그러다 보니 괴리가 생겨나고 있는 것 아닌가.

정명기

다같이 모일 수 있는 장이 드물고, 있어도 소식이 잘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예술계 안의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고 그냥 한 명의 개인이라고만 느껴진다. ‘뭐 아는 사람도 없고 모일 수 있는 자리도 없는 것 같고… 그럼 방법이 없지’ 하는 창작자들이 너무 많다.

박예지

연서명 요청 같은 것도 다 하고 싶은데, 공지가 어디 올라오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나중에 보면 성명서가 올라가 있고. 나도 하고 싶었는데 목소리를 보탤 수 있는 경로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다 알음알음 공유를 하다보니…

이도원

공론에 참여해본 경험을 만들어줘야 한다. 자기 이름을 걸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 이후에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시켜주는 토론 경험의 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원사업의 형태와 언어가 변화하고, 관객개발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루어지며, 공론의 장이 새롭게 만들어지더라도 공연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연극의 시간은 언제나 찰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런 찰나들이 이어져 하나의 흐름이 되고, 때로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정부와 정책이 바뀌고, 공공 예술기관의 대표가 불투명하게 임명되는 현시점에서도 기초예술을 이어가는 청년예술인들의 의지까지 꺾을 수는 없다. 그 시간을 쌓아 올리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9회차 혹은 12회차 공연, 900만 원, 1,000만 원, 2,500만 원이라는 예산 단위와 단기적인 성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창작과정 자체와 창작자의 노력을 인정하는 지원제도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관객개발 역시 단순한 수치 확대가 아니라 경험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자본과 제도를 운용하는 이들이 보다 적합하고 적확한 지원사업을 모색해주기를 요청한다.

대화 나눈 이들

김남현

익숙한 풍경에 균열을 만들기 위해 뾰족하고 치열하게 살고자 하고 있습니다.

나희경

연극을 기획합니다. 나와 당신의 접점을 찾아 연결을 시도하는 중입니다.

박예지

당신의 관객, 친구, 동료, 곁에서 쓰는 사람

심지후

오합지졸 같은 상태와 자기보위적 두려움으로 무장한 노동자민중을 관찰하고, 연극합니다 대체로.

이도원

연극 재활중입니다.

이예본

전쟁과 기후, 여성의 몸과 노동, 평화를 봅니다. 알고 나면 손 내밀 수 있다고 믿어요.

정명기

행동하는 양심과 연기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합니다.

정리:이예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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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토론 전문은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s://m.blog.naver.com/playforlife/224329837698
  2. 문체부 보도자료「케이-아트 청년창작자 지원 시범 사업 추진」참조. https://www.mcst.go.kr/site/s_notice/press/pressView.jsp?pSeq=22249
  3. 진보연, 「[Hot Issue] 학교예술교육 26년, 예산 삭감으로 붕괴 위기」, 『서울문화투데이』, 2025.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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