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KQTA: Korea Queer Theater Archive)라는 그룹이 구상된 것은 2022년 10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워크숍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기획된 ‘퀴어하는 연극의 마음들’ 라운드테이블 자리에서였다. 패널과 참석자들 사이에 열띤 대화가 오갔던 이 모임에서 각자의 경험과 기억을 주고받았고, 그 과정에서 한국 퀴어연극에 대한 공동의 구술사가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보았다. 그러나 일회적이고 산발적인 회합이 지니는 필연적인 한계를 모두가 공감했기에, 한국 퀴어연극을 둘러싼 담론이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원천으로서 ‘아카이브’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고립에 개입하기

2010년대를 거치며 한국 퀴어연극은 페미니즘 연극, 장애 연극 등의 물결과 교차하며 전례 없이 성장해 왔다. 성소수자의 존재와 육성을 가시화하는 공연, 성별 이분법의 경계를 횡단하는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연극, 퀴어/트랜스적 관점에서 대안적인 연극미학을 모색하는 연극을 극장에서 만나는 일은 더 이상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연극을 제작하고 관람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영역에 ‘고립’되어 있다고 느낀다. 개별적인 실천들 사이에 연결과 축적을 담보해 줄 수 있는 네트워크, 플랫폼, 씬(scene)의 부재라는 한계에 부딪히곤 하기 때문이다. 한국 퀴어연극이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있는 퀴어연극 창작자들이 늘 외롭다는 심경을 토로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그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강윤지, 김민조, 나희경, 연혜원, 이홍도는 2023년 초 KQTA를 결성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공연을 기획, 창작, 관람해 온 멤버가 많은 KQTA는 결성 초기부터 연구 그룹보다는, 현재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는 한국의 퀴어연극을 기록하고 매개하기 위한 참여적인 아카이브 그룹을 지향하고 있었다. 작품 목록이 축적된 문서고를 설립하는 일에 만족하는 대신 퀴어연극을 창작하고 향유하는 문화 자체에 개입하는 일. 다시 말해 KQTA는 퀴어연극에 대한 레퍼런스를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로서의 역할과 퀴어한 연극 실천들 사이에서 담론을 생산하는 ‘매거진’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고민하며 활동해왔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베타 버전’입니다

아카이브 활동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첫해의 활동은 한국 퀴어연극의 리스트를 잠정적으로 구축하면서 ‘베타(Beta) 버전’의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이루어졌다. 활동 초기에 우리가 경계했던 일 중 하나는 아카이브가 가장 기념할 만한 퀴어연극을 가려 뽑는 ‘명예의 전당’처럼 인식되는 것, 나아가 아카이브 팀원들이 퀴어연극의 정전(canon)을 선정하는 감별사로 간주 되는 것이었다. 아카이브가 또다시 미학적 위계를 세우고 마이너한 실천들을 소외시키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우리는 아카이브에 작품을 등록하는 행위 자체가 기록자 개인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에 토대를 둘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자 했다. 실제로 팀원들이 관심을 두는 작품도, 그 작품이 퀴어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서로 달랐다. 『한국 퀴어연극 아카이브 베타(Beta)』(2023)의 총론을 쓴 김민조는 그 고민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선정될 이유가 충분한 작품’이 무엇인지를 합의하는 대신 (…) 사심 어린 덕후로서 작품론을 쓰게 되었다.”1) 그러나 2023년 12월 말에 열린 결과공유회에 리뷰어로 참석한 루인(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상근활동가)은 ‘정말로 사적이고 주관적인 아카이브라면, 아카이브의 주체들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들을 호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를 반문하기도 했다. 퀴어연극 아카이브가 인정 체계로 환원되는 것을 지양하기 위한 선택과 그 역효과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베타(Beta)』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작품 단위 중심의 아카이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때문에 퀴어연극에 대한 기억을 지닌 극작가, 배우, 관객 등과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리라 여겼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공식적인 매체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퀴어연극에 대한 기억이 창작자와 관객들에게 얼마나 풍부한 형태로 분유(分有)되어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 기억들은 단순히 퍼즐 전체의 한 조각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주체들이 지닌 욕망과 상상력이 투사 되어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동일한 대상에 대한 기억을 다르게 나눠 가지는 방식 자체가 ‘퀴어한 것’이라고 느꼈다. 이처럼 선별과 배제의 논리에 따라 아카이브의 목록을 좁혀가는 대신, 퀴어연극이라는 표면에 난반사된 빛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아카이브의 용적을 넓혀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보다 즐거운 작업이었다.

2024년은 KQTA에게 ‘연결’과 ‘매개’의 역할에 대해 고심하는 시간이었다. 1990년대 퀴어연극으로 수집 범위를 확장했고, 서울-대학로 중심의 아카이브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부산과 대전의 창작자들을 만났다. 그러한 방향성에서 뻗어가 서울프린지네트워크의 국제교류 프로그램 ‘오프사이드 서울’에 참여하여 태국에서 퀴어 공연을 창작하고 있는 호모하우스(H0M0HAUS) 팀과 만나기도 했다. 아울러 2024년 11월 말에 ‘한국 퀴어연극의 시간: 함께 흐른 파도’라는 제목의 행사를 개최하여 지난 10년 동안 참석자들이 겪은 사건들과 퀴어연극이 어떻게 교차해 왔는지를 공유하며 함께 타임라인을 그려보기도 했다. 한국 퀴어연극이 연극계라는 게토 안에서 독립적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역사적 사건들과 소수자 운동, 그리고 여타의 문화예술 장르에서 울려 나온 파장들과 공명하는 가운데 진화해 온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패널로 참석한 문학비평가 장은정은 행사 리뷰에서 “#〇〇계의 경계”를 허무는 일의 어려움과 함께 “서로의 얼굴과 몸이 부딪힐 장소, 그리하여 서로의 존재를 ‘실감’하는 기회 자체를 만드는 일”2)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처럼 2024년은 아카이브가 섣불리 ‘퀴어연극(사)’로 상상될 수 있는 매끄러운 타임라인 속에서 차이를 끄집어내고, 다시금 연결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공간이 되어야 함을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결국 퀴어연극 아카이브는 온전히 닫힐 수 없는 상자처럼, 혹은 미완인 채로 열려 있음을 시인하는 ‘베타 버전’의 플랫폼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그 틈새가 아직 주변부를 떠돌고 있는 존재들이 들어올 수 있는 빈자리로 기능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발견과 참여의 아카이브

2025년 12월 말, KQTA는 디지털 아카이브를 론칭했다.3) 한국 퀴어연극에 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목표를 일차적으로나마 실현한 순간이었다. 화이트리버 출판사의 운영자 남선미가 홈페이지 디자이너로 참여하여 팀원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온 아카이브 공간을 기술적으로 구현했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이용자가 작품 목록을 일람하거나, 검색 기능을 활용하거나, 태그를 통해 유사한 작품들을 톺아보는 식으로 탐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KQTA 팀원들이 준비 과정에서 가장 공을 들인 것은 무엇보다 태그를 붙이는 작업이었다. 태그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상연된 퀴어연극을 연결해 주는 매개이자, 이용자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작품들을 모아볼 수 있는 툴(tool)이었기 때문이다. 2026년 3월 2일 기준으로 ‘레즈비언’ 태그를 클릭하면 1993년의 <클라우드 나인>, 2009년의 <스탑 키스>, 2018년의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를 포함한 19개의 작품이 정렬되어 나온다. 우리는 이처럼 매개자로서 기능하는 태그들이 정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른 작품들과 풍부하게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기나긴 토의를 벌여야 했다.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할 때 염두에 두었던 또 다른 주안점은 새로운 작품을 아카이브 공간 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그래서 작품 목록을 시대순이나 제목순으로 나열하는 대신 매번 랜덤하게 정렬되도록 했고, 홈 화면에는 태그 클라우드와 [랜덤] 메뉴를 배치하여 생경한 작품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했다. 아카이브 공간을 구축한 것은 KQTA의 팀원들이지만, 그 안에서 작품 간의 링크를 구성하는 것은 각각의 이용자들의 몫이 되기를 바랐다. 아울러 작품에 대한 ‘공식 소개’와 ‘아카이버의 한 마디’를 분리하여 해당 작품을 둘러싼 맥락과 아카이버가 그것을 퀴어하게 읽어낸 사유를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디지털 아카이브를 론칭하는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여러 가지의 뜻깊은 의견을 들려주었다. KQTA가 표방하는 ‘아키비즘(archivism)’이나 태그를 붙이는 원칙에 대한 설명을 담은 문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이용자들이 아카이브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제안도 있었다. 개별 작품에 대해 이용자가 코멘트로 첨언을 한다거나, 시민기자처럼 자신이 관람한 공연에 대한 기사를 아카이브에 투고한다거나, 에디터톤(Edit-a-thon) 같은 모임을 열어 퀴어연극에 대한 해설을 함께 작성하는 방식 등 우리의 아카이브가 보다 참여적인 성격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하게 교환되었다. 나아가 성폭력·위계폭력 가해자가 참여한 작품을 아카이브에서 제외해 버리는 손쉬운 방법을 넘어 #미투 태그를 달거나, ‘연극계 미투 운동 아카이브(metoo-theater.tistory.com)’ 링크를 첨부하는 식으로 그러한 폭력의 맥락을 함께 아카이빙하는 방식을 제안해 주기도 했다.

현재 KQTA 팀원들은 2026년과 그 이후의 활동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일차적인 목표는 이제 갓 론칭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보완해 나가는 것이다. 현재 아카이브 공간에는 1990년대부터 2023년에 이르는 기간의 퀴어연극 작품들이 등록되어 있다. 최신작을 업데이트하고 기존에 등록한 정보들을 보충해야 하는 것은 물론, 홈페이지의 문을 열기 위해 잠정적으로 설정했던 수집 범위를 보다 넓게 확장해 나가는 작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한 활동만을 주력 사업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KQTA는 아카이빙과 더불어 동시대에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는 퀴어한 연극 실천의 현장에 매개자로서 개입하고 싶다는 욕망 또한 여전히 품고 있다. 퀴어연극을 올렸거나 준비하고 있는 다양한 씬의 창작자들을 만나보고 싶고, 여전히 잘 들리지 않는 퀴어 관객들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고 싶다.

다만 올해부터는 KQTA 외부의 인력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각자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5명의 팀원이 운영자, 아키비스트, 프로그래머로서의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그런 연유로 작년에 제안받았던 것처럼 외부 필자를 섭외하거나 다른 단위와 연대하여 함께 행사를 꾸미는 등 ‘참여의 아카이브’로서의 성격을 보다 강화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들께서는 언젠가 KQTA가 협력의 손길을 구하며 문을 두드릴 때, 부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짧은 기간의 활동을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면, 혼자임을 넘어서는 일은 결코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것이었으니.

(정리: 김민조)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KQTA)는 퀴어연극을 창작하고 향유하는 문화에 관심을 가져온 이홍도(극작가), 강윤지(연출가), 연혜원(관객), 나희경(기획자), 김민조(비평가) 등이 2023년에 결성한 아카이빙 그룹입니다. 한국 퀴어연극을 조직화, 역사화, 계보화하는 작업이 부재함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김민조, 「욕망하는 아카이브를 향해: 한국, 퀴어, 연극, 아카이빙하기」,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한국 퀴어연극 아카이브 베타(Beta)』, 2023, 6쪽. <https://queertheater.mycafe24.com/wp-content/uploads/2025/12/%ED%95%9C%EA%B5%AD%ED%80%B4%EC%96%B4%EC%97%B0%EA%B7%B9-%EC%95%84%EC%B9%B4%EC%9D%B4%EB%B8%8C%EB%B2%A0%ED%83%80Beta.pdf>
  2. 장은정, 「부르는 말」,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 『한국 퀴어연극 아카이브 2024』, 2024, 62쪽. <https://queertheater.mycafe24.com/wp-content/uploads/2025/12/%ED%95%9C%EA%B5%AD-%ED%80%B4%EC%96%B4%EC%97%B0%EA%B7%B9-%EC%95%84%EC%B9%B4%EC%9D%B4%EB%B8%8C-2024_%EB%A6%AC%EB%B7%B0_%EB%B6%80%EB%A5%B4%EB%8A%94-%EB%A7%90.pdf>
  3. 한국 퀴어연극 아카이브 홈페이지. <https://queertheater.kr/>

ACTiO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인기 검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