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미
잘 만든 아동극은 어른들도 집중해서 흥미를 갖고 본다. 어떤 아동극은 어른들이 더 좋아하기도 한다. <고양이가 말했어>이래은 작·연출, 이미라·백소정 배우, 심은용 음악도 그런 작품이 아닌가 싶다. 2005년 초연 때는 기존의 아동극과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아동극 정체성이 강했다면 2025년 공연에서는 경계가 더 많이 지워진 느낌이다. 일단 어른 관객이 더 많다. 평일 저녁 공연 시간 때문일 수 있지만 거의 모든 연령에 열려 있다.
이 작품은 2005년 초연 이후 20년 만에 다시 공연되었다. 20년을 훌쩍 뛰어 날아온 공연이 반갑다. 엄밀히 말하자면 달과아이극단에서 2008년까지는 지속적으로 재공연되었으니까 20년까지는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간격을 넘어 2025년에 다시 소환된 의도와 의미는 무엇일까. 2005년 초연, 2006년 아시테지 축제에서 본 재공연의 기억과 2025년 최근의 공연을 견줘가며 시간의 틈 속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질문들
<고양이가 말했어>를 20년 만에 다시 공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궁금하다. 그래서 이래은 작가, 연출에게 물어보고 싶다. ‘첫 연출작이고 사랑스러운 작품이지만 지금 다시 공연하려는 구체적인 이유가 뭘까요. 2023년 이래은 연출 인터뷰에서 “그때 극장에 왔던 어린이 관객들이 지금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이 되었을 거예요. 어린이였을 때 이 공연을 보고 기억하는 관객분을 만나면 정말 행복할 거 같아요.”1라고 말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인가요? 어른으로 성장한 관객이 자녀와 함께 와서 보는 작품이라는 미담이 생성되고 있다는데 예상하신 건가요?’ 또는 ‘“약 20여 편의 연극을 연출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10대 여성의 삶을 담은 공연이다.”2라는 연출가 소개에서 드러나듯 이러한 여정의 출발점이었던 작품을 다시 공연한다면 새로운 의미가 더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까요?’ ‘다양한 작품들의 경험을 내 몸과 마음에 켜켜이 간직한 채 첫 작품을 다시 만나는 것은 연출가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아이의 시간
초연 때나 2025년 공연에서나 10살 4학년 지영이의 시간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지영이의 아빠는 등장하지 않고 엄마를 통해 부모의 존재를 드러내는데 주로 규율하는 역할로 표현된다. 지영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고, 학원 가고, 돌아와서 간식 먹는 등 정해진 일들을 스스로 잘 하는 편이며 혼자의 시간도 제법 감당해 내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일과를 다 하고도 남는 시간, 혼자의 시간을 심심해하는 모습을 통해 지영이의 속마음이 드러난다.
지영이에게도 친구들이 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어울린다. 그런데 또래 아이들의 놀이 방식이 오히려 외로움을 부추긴다. 친구들은 주로 외톨이 놀이를 하는데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방식이다. 비슷한 점과 차이점 중에서 차이점을 기준으로 친구들을 나누는 놀이이다. 의자 뺏기처럼 앉지 못하면 탈락인 것과 비슷한 결의 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차이점은 게임으로만 끝나지 않고 친구들 사이에 경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작품에서 이 놀이는 간결하고 리드미컬하게 놀이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심각하지 않게 다뤄지지만, 한 아이에게 외로움을 경험하도록 하는 충분한 계기가 된다. 비교적 어린 초등학생의 경우라 사춘기 절정의 중학생들처럼 사회문제가 될 정도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나 외로움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지영이가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고 집에 데려와서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단지 귀엽고 가여운 동물에 대한 애정 이상의 절실함이었을 수 있다.
고양이와의 관계
예전에 쓴 리뷰를 찾아보니 2005년 초연과 2006년 공연의 차이는 지영이 내면의 마음이 불분명하고 관념적인 측면을 배우들과 지영이 인형의 역할이 활동적으로 바뀌면서 구체화 되었다고 서술되어 있다.3 여기서 인형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진 지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주인공 지영이의 성장통을 고양이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구체성과 상징성을 모두 취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지영이와 고양이를 유비관계에 놓고 보는 시각이 더 두드러졌던 것으로 해석된다. 어린 아이한테도 분노, 야성, 욕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한 부분을 다룬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2025년 공연에서는 지영이와 고양이의 관계가 좀 더 다각적으로 읽혔다. 고양이가 지영이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깔려 있었기에 또 하나의 주체로 해석되었다. 고양이와 지영이의 첫 만남에서 고양이가 적극적으로 의사 표시를 함으로써 지영이의 집으로 가게 된 것, 고양이의 성장주기에서 울 수밖에 없는 시기(발정기)가 그대로 표현된 것, 엄마를 비롯해 그것을 이해하지도 견디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압력으로 지영이 역시 인간의 방식으로 고양이를 제어하면서 인간과의 갈등이 가감 없이 객관화된 것, 고양이가 다시 밖으로 나가게 되었지만 지영이의 돌봄 없이 고양이들의 세계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 등이다. 그러니까 고양이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서 존재 자체로 표현되었고 그것으로 지영이와의 관계도 다르게 읽혔다. 이것이 관람자의 개인적 시각의 변화 때문인지 작품의 변화, 또는 연출의 미세한 차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여러 이유가 함께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공연에서나 이번 공연에서 지영이의 내면의 감정은 외로움이고 이는 성장하면서 해결해야 하는 관계의 문제이다. 친구들의 외톨이 놀이에서 다른 친구를 왕따시키는 것을 보고 마음이 불편할 때 고양이와의 관계를 통해 위안을 받는다. 그러나 고양이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자신이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고양이는 언제든 지영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존재가 아니다. 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지영이가 고양이와 관계를 맺는 데서도 어려움이 발생한다. 그러니까 고양이의 울음으로 인한 갈등과 과격한 행동, 고양이를 밖으로 돌려보내는 행위는 이러한 어려움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기존의 아동극 관습 혹은 인간중심적인 시각에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고양이를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지 않은 순수한 고양이로 보지 않은 탓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므로 지영이가 길에서 데려온 고양이를 길로 돌려보내는 일을 무책임하게 버리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고양이는 집 밖의 세상으로 돌아갔고 지영이는 걱정이 되어 먹이를 들고 찾아가는 방식이 되었고 이것은 고양이의 세계에 지영이가 방문하는 방식이라서 고양이를 버리는 행위와 거리가 있다. 오히려 고양이는 고양이의 성장주기에 따라 빨리 성장하고 지영이는 인간의 성장주기에 따라 아직 아이에 머물러 있기에 이들의 주공간이 바깥 세상으로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영이가 작아져 있고 야옹이가 커져 있는 인형으로 둘을 표현한 장면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시각을 달리했을 때 보이는 것이 그렇게 대단히 이상하거나 문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럼 이제 고양이가 말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고양이와의 친밀감, 연대를 드러내기 위한 설정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인간중심적이고 아동극의 관습을 그대로 따르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작품 초반에는 고양이가 말을 하지만 중반에는 울음만을 울고 맨 끝에는 “야옹”으로 마무리된다. 고양이와 소통이 잘 될 때는 고양이가 말을 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소통이 안 될 때는 울음으로만 표현된다. 이 작품에서는 고양이의 다양한 말을 다룬다. 그러므로 고양이가 말한다는 것을 인간의 말을 하는 것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고양이의 다양한 언어를 통해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다루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고양이와의 관계 안에서 지영이 역시 성장한다. 대단한 문제해결력이 생겼다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를 수용하고 관계의 부대낌을 견뎌내고 새로운 국면으로 한 발 딛는 방식이다.
연출가의 말
2025년의 이 공연이 새롭게 해석될 수 있었던 이유를 파악하고자 이래은 작가·연출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2006년 공연 이후 2008년까지 변화된 부분을 알지 못했기에 필자가 새롭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있었지만 2025년 이번 공연에서 서사적으로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드라마적 측면에서 추가된 것이 있다면 고양이가 작품 초반에 등장하지 않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소리를 넣었고 공연이 더 조용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시끄러운 요소들을 최소화한 정도라고 한다. 오히려 2005년의 상황을 드러내는 단어를 넣는 등의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초연 때의 이미라 배우가 이번 공연에서도 등장했고 인형도 예전 모습 그대로 깨끗하게만 손을 본 정도이다. 앞에서 언급한 고양이를 크게 지영이를 작게 표현한 장면도 예전 그대로라고 했다.
그렇다면 필자의 시각이 달라진 것에 가까운데 예전에 못 봤던 것을 보게 된 것일 수도 있고 시대 감각의 변화를 반영하여 적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온전히 관람자만의 시각 변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다양한 경험이 쌓인 연출가의 변화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이 우리에게 다른 시각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다그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유미
연극 보고, 연구하고, 가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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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호, 「[인터뷰]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인물들과 삶을 들여다보는 이래은 연출가 #2」, 『브릭스』, 2023. 02. 17.
- https://blog.naver.com/artezine/223749811272
- 김유미, 「여유 속에 치러진 2006 서울아동청소년 공연예술축제」, 『연극평론』, 2006년 가을호, 12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