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수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대본을 써보려고 애쓰다가 결국 제대로 된 문장은 채 한 장도 쓰지 못하고, 개를 산책시키고 씻긴 후 자려고 누웠을 때였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에 메시지가 하나 왔다. 작년 가을에 함께 공연을 올렸던 동료가 단체방에 보낸 글이었다. 우리 작품을 포함한 공연 자료를 모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했다가 반려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작년에 올린 공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한 작품임을 포스터 여기저기에 명시했고, 티켓 홍보와 예매도 공신력 있는 사이트에서 진행했다.극장 역시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곳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반려 당할 이유가 없었다. 동료는 내게 “러닝타임과 티켓 가격이 적힌 상세 페이지를 다시 공유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벌써 넉 달 전에 끝난 공연 자료를 뒤져 해당 내용을 단체방에 올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미 SNS가 예술활동증명 문제로 뜨겁게 달아올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작은 동료의 전화였지만
오랜만에 들어간 페이스북에는 먼저 예술활동증명을 반려 당한 예술인들이 저마다의 사례를 공유하고 있었다. 울분과 수치심마저 묻어나는, 이 제도의 한계를 짚는 여러 편의 글과 댓글을 보았다. 예술활동증명 제도의 문제를 함께 모여 논의해보자는 홍예원 님의 제안도 있었다. 나는 새벽에 메시지를 보냈던 동료에게 그 자리에 같이 가보자고 권했다. 그는 거절했고 나 혼자 참석했다. 첫 모임에서 원래 알던 얼굴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처음 만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고, 소문으로만 돌던 사례들을 공유했다. 현재 각자가 알고 있는 예술활동증명의 문제점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더 많은 반려 및 탈락 사례를 모으기 위해 설문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첫 번째 설문을 시작하자 예술활동증명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더 많은 예술인이 행정검토 단계에서 반려됐다는 걸 알게 되었고, 더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문체부 장관이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예술인들 사이에서 보다 실질적인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다시 한번 모이자는 제안이 나왔다. 나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내부 사정을 잘 알 만한 동료에게 같이 가자고 했고, 그러기로 했다. 처음 내게 메시지를 보냈던 동료에게도 다시 제안했지만, 그는 이번에도 거절했다. 이 모임에서 예술활동증명에 ‘실패하지 않았더라도’ 참여할 수 있는 두 번째 설문조사를 진행하자는 제안과 더불어 사례 발표 및 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준비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예술활동증명TF’라는 이름을 정한 것도 이때였다.
온라인을 포함해 여러 차례 회의를 했다. 설문조사를 설계하고 명확한 문구를 만들기 위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고, 토론회를 공동 주최하기로 한 손솔 의원실과의 소통 내용을 정리하느라 논의를 거듭했다. 그 밖에도 각자의 시간을 쪼개야 했다. 설문조사 초안을 만들고, 디자인을 하고, 의원실을 비롯해 접촉해오는 언론에 대응하는 시간이 분주히 흘러갔다. TF멤버들은 이 과정을 거치며 무사히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하기도 했고, 실은 자신에게 처음부터 이 제도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래도 예술계를 위해 필요한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고, 지금 불거진 이슈이지만 따지고 보면 오래된 문제이기에 더는 끌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누가 시킨 것도, 페이를 받는 것도 아니었지만 손발이 척척 맞아 뭔가 일이 진척되는 듯한 느낌에 신이 난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종종 나누곤 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미팅을 한 건 이 무렵이었다. 복지재단 측 담당자들은 현장에서 마주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부족한 인력과 예산, 다변화하는 예술 현장, 그리고 AI의 발달로 허위 사례를 적발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졌다는 점 등이었다. 우리는 TF가 복지재단의 허점을 공격하고 악마화하기 위해 모인 게 아님을 명확히 밝혔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정말 예술인의 복지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움직이자고, 더 많은 관심과 힘을 실어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TF와 함께 현장의 목소리가 되자고 이야기를 나눴던 터였다. 예컨대 예술지원사업을 하는 다른 기관들이 서류 심사 단계에서 예술활동증명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꽤 수집되었는데, 이는 해당 기관이 선정 절차를 편하게 처리하려는 의도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자신들의 행정 업무를 복지재단에 떠넘기는 양상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누가 예술인인가’라는 사회적 토론이 활발히 진행되어야 할 시기에, 적은 인력과 부족한 예산을 가진 단일 기관이 이를 모두 떠안았으니 행정 편의적 판단이 앞설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뜻이 통했는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국회 토론회에 발제와 후원으로 동참하기로 했다.
예상된 결말과 남겨진 질문들
토론회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다. TF가 국회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진행한 1차 설문조사에 190여 명, 2차 설문조사에는 780여 명이 참여할 만큼 현장의 관심은 뜨거웠다. 예술계의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데다 예술인을 밀어내기만 하는 행정의 언어를 지적하는 생생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제언도 여럿 나왔다. 그러나 문체부에서는 사무관 단 한 명만이 현장에 참석했다. 그는 질의 응답 시간에 장관이 현장 이야기를 듣겠다며 만든 ‘문체부 소속 TF’가 사실상 실질적인 제안을 할 수 있는 그룹이 아니라 그저 면피용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발언을 했다. 여러 질문에 대해서는 추후 질의서를 보내면 응답하겠다며 답변을 회피하기도 했다. 언론은 토론회가 끝나자마자 더 자극적인 문화예술계 이슈로 시선을 옮긴 듯했다. 2부 자유토론 사회를 맡은 나는 토론회에서 제기된 의견과 질의를 정리해 문체부에 전달할 것이며, 그 답변을 현장과 공유하겠다는 말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결과를 이미 예상했었다. 토론회를 열기 며칠 전 회의에서 TF는 우리가 토론회를 통해 할 수 있는 것과 그 이후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논의했다. 결론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문체부와 복지재단은 이미 예술활동증명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공고한 상태였고, 그 연구를 맡을 연구기관은 아마도 ‘현장 예술인 FGI’라는 형태로 우리가 토론회를 준비하며 나눈 이야기들을 그대로 반복할 터였다. 그 얘기라도 반복해 주면 다행일지도 몰랐다. 예술활동증명을 정말 필요로 하는 이들은 각종 협회에서도 소외된 현장 예술인이 많은데, 연구기관에서 ‘현장을 대표할 만한 예술인’으로 초빙하는 이들은 이와는 정반대 부류의 사람들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토론회를 연 시점은 의원실도, 복지재단도, TF 일원들도 여건이나 여력으로 보면 쉽지 않은 때였다. 각자 지방 선거와 제도 개선 준비, 개인 작업 일정 같은 것들을 코앞에 둔 상태였다. 마침 복지재단이 일시적으로 담당 인력을 늘리고 행정 단계를 완화하면서 여러 예술인이 예술활동증명을 발급받게 되었다. 이 이슈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많은 개인에게 급한 불은 꺼진 상황이기도 했다. 그래서 TF 내부에서는 토론회 이후에 예술활동증명 제도가 던진 본질적인 질문들을 다루는 모임을 이어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예술인 기본소득에 대한 공부 모임이나, 차라리 ‘반려예술인축제’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나누기도 했다.
처음부터 짐작했던 한계지만 뒤따라오는 질문들은 여전히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현장과 괴리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누구의 목소리를 어떤 방식으로 모아내야 하는 걸까. 파편화되고 다변화된 현장을 어떻게 제도라는 틀 안에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성명서에 연명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토론회를 개최하고, 언론 인터뷰를 하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미투 운동을 거치며 예술계 문제를 공론화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동료들이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답을 잘 모르겠다. 거버넌스라는 용어는 진작에 힘을 잃은 것 같고, 그렇다고 기성 협회에 가입해 목소리를 보태고 싶지도 않다. 보수 정권 때는 숨죽이고 있다가 이제야 튀어나와 정부를 비판하느냐는 일부의 비아냥에 여전히 성질이 난다. 난 그저 어느 새벽 동료의 카톡 메시지 한 통을 받았을 뿐인데…
작은 변화는 분명히 있다
토론회 이후 손솔 의원실은 설문을 통해 모인 제도개선 관련 제언과 질의를 정리해 문체부 및 복지재단에 공식 전달했다. 민예총이 복지재단에 제안한 덕분에 현장 예술인의 목소리를 연구용역에 녹여내기 위한 자문 그룹이 꾸려졌고 TF 일원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예술인이 아니라며 반려 당한, 그러나 어쩌면 그러나 어쩌면 가장 반려와도 닮아 있는 예술작품들을 모아 축제를 벌이면 어떨까 하는 논의도 이어지는 중이다.
처음 메시지를 보냈던 내 동료는 생애 처음으로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했고, 덕분에 예술인 심리상담 지원을 받고 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안도감과 허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당장 개인의 급한 불은 꺼졌고 시스템은 미세하게나마 움직였으니, 더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어느 정도 마련한 셈일지도 모른다. 혹은 행정이 늘 그렇듯 일시적으로 소나기를 피하고, 구조적인 과제는 연구용역이라는 절차 속으로 흘려보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행정 논리가 매끄럽게 흘러가도록 적당한 구색을 맞춰준 꼴이 된 것은 아닐까. 정말로 모를 일이다.
이 일이 아니었으면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을, 합이 잘 맞는 예술계 동료들을 얻은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신이 나서 움직였던 열기가 일상의 속도 뒤로 이내 흩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이것저것 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각자의 생업과 약속된 일정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그렇다고 TF가 멈춰선 것은 아니다. 선거도 끝났으니 조만간 의원실에 다시 연락해 문체부로부터의 답변을 전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제도개선 연구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동료는 TF 단체방에 논의 진행 상황을 꾸준히 공유해준다. 축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조만간 오프라인 모임도 가질 예정이다. 모임 이름을 바꾸고, 더 많은 동료를 만나 지금은 우리조차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무언가를 또 벌이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 역시 풀리지 않는 대본을 붙들고 끙끙대는 평범한 나날로 복귀했다. 혼자 책상 앞인데 예술활동증명 제도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서 마음은 쉽게 가벼워지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겠어! 하는 무모한 꿈을 꾼 것도 아니고 흐름을 짐작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으나 이렇게까지 찾아드는 막막함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거창한 투쟁이라기보다, 어쩌면 무력한 현실을 지루하게 견뎌내는 과정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제도는 없을 것이고 행정은 앞으로도 현장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다시 한밤중에 동료의 메시지가 도착한다면 나는 또 어떤 일을 벌일 것이다.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열심히 하긴 했는데 아무것도 못 바꿨다는, 아니 하나도 못 바꾼 건 아닌데 그래서 달라진 게 무엇인지 통 모르겠다는 이 허무감을 안고서… 대본은 여전히 써지지 않고 밤은 깊었다. 내일도 내겐 개를 산책시키고 씻기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 이어지겠지.
성지수
한밤중 연락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것이 서로를 살린다고 믿는 연극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