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량원

로미오 눈아, 마지막으로 보아라!
팔아, 마지막으로 안아라!
입술아, 정당한 입맞춤으로 죽음과 영원의 계약에 도장을 찍자!
죽음이여, 이 배를 당장 암초에 부딪혀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건배!

–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중에서

로미오의 마지막 대사이다. 줄리엣은 잠들어 있고, 로미오는 그녀가 죽었다고 오해한 채 미리 준비해 둔 독약을 마신다. 영화 <고스트라이트>켈리 오설리반 · 알렉스 톰슨 감독, 2024, 미국에서 이 대사를 말하는 사람은 건설 노동자 댄이다. 그는 노년의 아마추어 극단에서 로미오 역을 맡았지만, 끝내 이 대사를 하지 못한다. 그의 아들이 여자 친구와 함께 음독자살을 시도했고, 여자 친구는 깨어났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 사연을 알게 된,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동료 아마추어 노인 배우들은 서로의 손을 포개어 그의 몸에 닿는다. 그를 둘러싼 손들이 하나의 몸처럼 연결된 장면을 담은 영화 포스터에는 “예술이 주는 고요한 위로”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그러나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댄의 고백이었다.

“난 이 대사를 이해할 수 없어요.”

그는 아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을 연기하기 힘들어서 멈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배우로서 로미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연극을 끝마치기 위해서는 로미오의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그때, 어쩌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들의 죽음의 이유에도 닿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이해할 수 있는가?”

나는 한 번도 이 질문을 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한 때 그로토프스키의 보편자에 관심을 가졌다. 그에 따르면 대체로 오랫동안 구전되어 온 춤이나 노래에는 보편자가 있어서 관객의 몸에 저절로 반응한다고 했다. 거의 모든 나라의 ‘어머니’라는 단어에 어떤 공통의 울림이 있는 것처럼. 나는 셰익스피어의 대사에도 보편자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원어 대사를 자막도 없이 들으면서 보편자가 나를 건드리는지 관찰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많은 셰익스피어가 끊임없이 공연되겠는가.

그런데 어쩌면 오늘의 연극은 셰익스피어를 통해 다음의 질문을 하려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다른 사람 때문에 목숨을 거는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가?”

노라 저는 기적을 애타게 기다렸어요.
그때 그 일이 터졌고 마침내 기적이 오는구나, 생각했어요.
전 당신이 ‘이 사건을 세상에 공포하라!’고 외칠 거라고 확신했어요.
세상 사람들 앞에 나아가 ‘모든 건 내 잘못이다!’라고 말할 거라고.
제가 기다리던 기적은 바로 그것이었어요.
그걸 그 기적을 막기 위해서 저는 제 목숨을 끊으려고 했어요.

– 헨릭 입센, <인형의 집> 중에서

<인형의 집>의 노라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위하여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고자 한다. 그러나 집을 나서려는 순간, 남편의 언행을 통해 죽음의 시도가 더 이상 불가능함을 깨닫는다. 이 연극에서도 행동한다는 것은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일이다. 그러나 앞선 셰익스피어의 작품처럼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일은 좌절된다. 노라가 살고 있는 사회는 더 이상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는 사회다. 그런 이유로 노라가 하려는 죽음이 해석될 수 없다면, 이제 노라는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노라는 자신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남편도 노라를 위해 서슴없이 자신을 희생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기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노라는, 희생을 통해서라도 지켜야 하는 상대가 부재한, 그런 일이 기적이 되어 버린 참혹한 사회를 배우기 위해 집을 떠난다.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사회를 배워야 할 텐데, 노라가 배우려고 하는 세상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나아가 기적을 이해할 수 없는 사회다.

그러므로 노라가 이 사회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상대와 연결되지 않는, 타인과 사회에 주의를 두지 않는, 온전히 자신만의 몸의 감각으로 살아가는 기술이다. 이것을 ‘행동하지 않는 몸’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행동하지 않는 몸을 희곡에 처음 세운 사람이 입센이다. 그리고 체호프는 행동하지 않는 몸을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체호프의 인물들은 새로운 사회 규칙을 배우지도 않고, 어떤 욕망도 끝내 붙들지 않은 채 그대로 허물어지는 쪽을 택한다.

<벚꽃 동산>에서 라네프스카야는 선조들이 살았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 팔려나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시간이 가는 대로 놓아두면서 문제를 더욱 고착화시킨다.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거나 문제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엉겨 붙어서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까지도 폐허로 만드는 전략이다. 그러면서 수천 년 이후 인간이 사라진 뒤의 주체들을 고대하고 또 상상한다.

올해도 우리 무대에 올라가는 여러 체호프 공연을 기다리면서, 나는 행동하지 않는 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지금 체호프를 이렇게 많이 들여다보고 공연하려는 것은, 인류에게 이미 어떤 믿음도 갖지 않았던 지혜를 체호프로부터 발견하기 때문일까.

인간도 사자도 독수리도 자고새도 뿔 없는 사슴도 거위도 거미도,
침묵하는 물고기도 바다 밑 심해어도,
요컨대 모든 생명체가 다 사라져 버렸어요.
아득한 옛날 모든 생명이 사라진 이 땅 위에서,
이제 오직 저 홀로 이 영혼을 깨우고 있습니다.

-체호프, <갈매기> 중에서

팬데믹 이후에 더 많은 체호프와 셰익스피어가 올라가는 이유를 불현듯 알 것도 같다.

강량원

극단 동, 월요연기연구실 연출가.

_________________________
* 인용문은 여러 판본을 참고하여 글쓴이가 새로 정리하였습니다.


ACTiO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인기 검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