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이 글은 한 연출가의 개인적 경험에 대한 기록이다. 예술활동증명 불인정을 처음 경험한 사람이 느낀 감정과 성찰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2016년 처음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해 세 번의 재신청 과정을 거치며 올해 초까지 증명을 유지해 왔다. 이번이 네 번째였다.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고 이를 증명할 자료도 갖추고 있다고 믿었기에 이번에도 무난히 통과하리라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던가.

그 기시감은 신청 4개월 뒤인 11월 어느 날 늦은 저녁, 문자로 보완 요청 통보를 받았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설 연휴 전날인 2월 13일 저녁 8시, 문자로 ‘미완료’ 통보를 받는 순간 ‘설마’는 ‘역시’가 되었다. 굳이 그 날짜와 시간을 떠올리는 이유는 결과만큼, 통보 방식이 남긴 감각 때문이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긴 연휴를 앞둔 시간, 문의나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때였다. 고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참 배려 없다’는 감각과 대응의 기회를 빼앗긴 느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반려 통보 이후, 마르틴 니묄러의 <그들이 처음 왔을 때>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한 걸음 물러서 있던 사람이었다. 연극계의 여러 문제가 공론화될 때마다 분노는 있었지만, 사적인 공간에서만 말하는 소극적인 동조자에 머물렀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말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침묵에 가까운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 내가 제도에 의해 ‘걸러진 사람’이 되었다.

전문예술이란 무엇인가

분노보다 먼저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동안의 작업이 전문성이 없다고 판정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예술활동증명은 예술가를 판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 활동이 ‘전문 예술’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나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오늘날 예술활동증명은 단순한 행정 서류가 아니다. 자신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자신의 작업이 ‘예술’로 호명될 수 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받는 최소한의 증표다. 또한 예술가 자격을 요구하는 여러 현장에서 생계를 가능하게 하는 증빙 서류이며, 불안정한 창작 환경 속에서 삶의 존엄을 지탱해 주는 최소한의 사회적·심리적 안전망이기도 하다.

나는 제도권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진 예술가는 아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큰 단절 없이 작업을 이어왔다. 코로나 시기에는 공공기관이 장려한 온라인 미디어 예술 사업에 참여했고, 그 전부터 다양한 규모와 형식의 연출 작업을 지속해 왔다. 이러한 작업은 최근 생중계 라디오 매체와 연극 형식을 결합한 드라마 작업으로 이어지며 나의 창작 방향을 다지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재단이 요구한 것은 예술 ‘활동’의 맥락이 아니라 규격에 맞는 예술 ‘결과’였다.

나의 활동 자료들이 반려되는 순간, 나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이 되었다. 일할 능력도 의지도 있지만 시스템은 그의 삶을 서류의 칸으로만 판단한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신청자’가 된다. 나 역시 여전히 작업을 해왔고 무대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데 제도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당신의 활동은 이 형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당신의 시간은 이 방식으로는 증명되지 않는다고.

설명/지 않는 판단

반려 사유에는 낭독극, 쇼케이스, 무료 공연, 시민 참여 공연은 전문예술활동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문구가 있었다. 더불어 유튜브와 같은 개인 업로드 매체 역시 증빙 자료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 정부 정책에 따라 예술 활동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전환되었고, 이는 사업 수행의 필수 방식이었다. 운영지침 제14조에 의하면 재난 시기 공공기관 지원을 받은 온라인 예술 활동을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제2조 제3항은 “문화예술의 범위는 한정할 수 없으며, 분류에 맞지 않더라도 예술활동이 분명할 경우 심의를 통해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예술의 형식을 경직된 개념에 고정하지 않으며, 새로운 매체와 실험적 시도 역시 심의를 통해 판단하고 포용한다는 약속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 심의에서는 “유튜브 게재물은 연극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모든 가능성을 덮어버렸다.

무엇보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은 반려 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의 부재였다. 제시된 내용 역시 1차 보완 요청 문구를 반복한 것에 불과했다. 어떤 작품이 왜 인정되지 않았는지 납득할 만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설명되지 않는 판단은 결국 상처와 불신을 남긴다.

또 다른 작품은 재단이 요구한 ‘러닝타임이 명시된 자료’가 없어 제출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공연 인쇄물에 러닝타임을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가 아니었고, 온라인 예매처 역시 이미 운영을 종료해 기록 확인도 불가능했다. 재단이 제시한 형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자료(예: 공연 실황 영상)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 제작 관행을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하는 의문이 남았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다양한 보완 요청과 반려 사례를 접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내 예상을 넘어섰다. ‘자료 보완’을 이유로 개인 통장 내역과 같은 민감한 정보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이제 관례가 되었다. 또 민간단체의 참여확인서도 인정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공공 지원 없이 이루어진 활동은 어디에서 증명받을 수 있는가.

제도을 관리하는 복지는 누구를 배제하나

복지는 본래 열악한 위치에 놓인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여야 한다. 그러나 여러 사례를 접하며 규모가 작고 실험적이거나 독립적인 작업들이 더 쉽게 걸러지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이미 제도권 안에서 지원이나 인정을 받아 온 형식의 작업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 제도는 보호 장치인가, 아니면 이미 보호받고 있는 결과를 재확인하는 장치인가.

오늘날 많은 예술가들이 좁은 제도적 진입로 앞에서 원치 않게 배제되고 있다. 그럼에도 승인된 형식만을 선별하는 구조라면 ‘복지’라는 이름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가장 취약한 지점을 향하지 못한다면 그 울타리는 보호가 아니라 또 다른 장벽일 뿐이다. 복지라는 이름이기에 그 상처는 더 깊다.

어쩌면 니묄러의 글이 떠오른 또 다른 이유는 반려 이후 느끼게 된 단절과 무기력의 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술가로서 바쳐 온 시간과 노동이 한순간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경험. “심의위원의 판단 재량이니 어쩔 수 없다”는 형식적인 응답, 언제 답을 들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이의 제기 절차,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채 몇 달의 재신청 과정을 다시 감당해야 하는 현실. 그 과정을 홀로 견뎌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느낀 무력감 속에서, 니묄러의 문장은 마치 지금 내 상황을 설명하는 언어처럼 떠올랐다.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침묵에서 한 걸음 나왔다. 그리고 이제 묻는다. 예술을 증명하라는 요구 앞에서

이 증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심의는 정말로 현장을 아는 전문가의 판단 위에 서 있는 것인가.
제도가 지키려는 것은 예술인가, 아니면 예술을 관리하기 위한 형식인가.

유림

연극 연출가. 창작집단 달빛사냥 대표

[추신] 본 글은 2026년 3월 9일에 작성되었다. 이후 3월 11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심의 오류가 확인되어 예술활동증명 ‘미완료’ 판정이 ‘완료’로 정정되었으며 사과를 받았다. 다만 이 글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경험한 문제를 기록한 것이기에 내용은 수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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