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보름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계속 보이지 않게 둔다.
그게 나를 성공하게 만든 바로 그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낙인찍힌 나 자신을 스스로 낙인찍는다.
부양해야 하는 대상들과 현상(現狀)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숨기고 약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왜냐하면 내가 진짜 누구인지 드러내는 순간,
실패와 버림받음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차이는, 기존의 계획과 방식, 규칙 안에 들어맞을 때만 용인된다.
나는 나 자신을 드러낼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나를 받아들일까, 아니면 두려워할까?
인정할까, 아니면 밀어낼까?
나는 이상체(異常體)다.
I keep the invisible invisible,
even though it is the thing that makes me a success.
I stigmatise my stigmatised self.
I help hide and disempower myself
for the sake of my dependants and a continued status quo,
for to be open as to who I really am would risk failure and abandonment.
Difference is tolerable when it fits established plans, ways and rules.
Can I risk revealing myself?
Would I be embraced or feared,
accepted or shunned?
I am an anomaly.
-케이트 오라일리, <그리고 나는 갑자기 사라진다 : 싱가포르 ‘디’ 모놀로그> 중에서*)
최근 몇 년간 활자가 잘 읽히지 않는 난독 상태를 경험 중이다. 꽤나 상실감을 안겨주는 상황인데, 그래서 요즈음은 책을 사면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읽고 싶은 부분만 봐도 괜찮다는 사고방식을 연습 중이다.
<여성의 수치심>에리카 L.존슨 · 퍼트리샤 모런 엮음, 손희정 · 김하현 옮김, 글항아리, 2002을 읽고 있는데, 5장 ‘장애 자긍심과 수치심의 상호작용’ 챕터가 가장 흥미로웠다. 뇌성마비를 가진 저자 일라이자 챈들러는 “자긍심과 수치심이라는 두 개의 체현된 관계가 공존하는 감정의 배치”에 주목하며, 장애 자긍심을 다루는 대중 서사가 “장애를 지닌 몸에 대해 확고하게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를 어떻게 배제하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는 장애인권운동의 맥락에서 시작된 ‘장애 자긍심’이, 장애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문화적 요구와 기대로 인해 수치심을 거부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수치심을 외면하면서 만드는 변화만이 ‘자긍심을 가지고 장애인의 삶을 살아갈 방법’을 결정짓는 유일한 규범적 기준으로 상정된다면, 몸과 관계된 다른 이야기를 할 기회를 배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긍심을 둘러싼 온갖 너저분한 경험들을 엮어내는” “난장판” 같은 서사의 가능성을 닫아버린다는 측면에서다.
이는 내가 ‘OO 프라이드’ 예컨대 퀴어 프라이드, 매드 프라이드 등의 개념을 접할 때 들었던 개인적 고민이기도 했다. 소수자 정체성을 세상에 가시화하기까지의 여정도 고단하고 어렵지만, 소수자 자긍심을 강조하는 맥락에서는 좀처럼 소수자성과 관련된 부정적 감정들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점으로부터 기인하는 내적 갈등의 문제 역시 까다롭고 어렵다.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번 아웃 말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룰 수 있는 마법 같은 대안을 찾고 싶다(물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라이자 챈들러의 글 속에서 작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저자인 챈들러는 본인의 경험을 반추하며 사유를 전개해 나간다. 그는 길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말려있는 손을 보고 조롱할 때, 수치심에 “꼼짝없이 사로잡힐 수도 있는” 강렬한 가능성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목적지인 크립 커뮤니티로 가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며 나아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길에서 혼자 있다고 느낄 때조차 나와 함께하는 크립 커뮤니티의 힘을 깨달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힌다. 그가 말하는 장애 자긍심이란, 장애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장애를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모욕을 당한 그 순간 내가 느끼는 정동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나와 동질감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기억하기. 챈들러는 더 나아가 장애를 수치심, 좌절감, 당혹감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을 배제하지 않는 새로운 자긍심 ―현재 맺고 있는, 또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를 신체와의 관계에 있어 모든 장애인이 가닿을 수 있는 장애 자긍심을 상상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2018년에 초연된 <‘디’ 모놀로그>의 21편의 짧은 독백 중 이상체(Anomaly)라는 제목의 독백을 언급하고 싶다. 독백 속 화자는 타인의 시선을 매우 의식하면서도 이상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낙인찍힌 자신을 스스로 또 낙인찍는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을 구성하는 모습들 중 사회의 정상성 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이상한’ 부분들은 가급적 보이지 않게 내버려둔다. 그것들을 깎아내고 축소시키는 자신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으며, 그저 의심하고 질문하는 ‘경계적 상태’로 존재한다.
모든 순간 세상과 불화하며 살아갈 수 있는 소수자는 없다. 나에게 중요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사회에 순응하고 맞춰야 하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이런 상황에 매번 새롭게 흔들리면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경계적 상태다.
자긍심이라는 정해진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긍심을 느꼈던 순간을 기억하면서 지금 이 순간의 수치심을 겪어내는 것이라면, 삶에 필수불가결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오늘의 수치심을 다독여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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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출처 : Kaite O’Reilly, 『The ‘d’ monologues』(Oberon books, 2018)
강보름
연극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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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극작가 케이트 오라일리(Kaite O’Reilly)의 <그리고 나는 갑자기 사라진다 : 싱가포르 ‘디’ 모놀로그(And Suddenly I Disappear: The Singapore ‘d’ Monologues)>는 영국 라나스 그룹(Llanarth Group)과 싱가포르의 액세스 패스 프로덕션(Access Path Production)의 협업으로 2018년 제작된 다언어·다문화·장애 주도 연극 프로젝트다. 작가는 이 작품을 “차이, 장애, 그리고 인간다움의 의미에 관해 탐구하는 국제적인 연극적 대화”라고 정의했다. 작품은 21개의 짧은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인용문의 한글 번역은 ChatGPT의 도움으로 글쓴이가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