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희

편집자 주

연극계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8년 이래 연극계에서는 위계폭력과 젠더폭력 없는 안전하고 평등한 창작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폭력의 가해자들이 반성 없이 복귀(를 시도)하는 일은 반복되고 있다. 지난 3월 22일 연극계 성폭력 가해자 이윤택의 형기 만료일을 맞으며 웹진 ACTiO는 3호의 [이슈, 이슈]로 ‘연극공동체가 수용할 수 있는 가해자의 복귀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하여 연출가 홍예원 씨의 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수용할 마음이 없습니다”를 실었다. 이번에는, 미투 운동 이후 ‘안전’에 관한 연극 현장의 변화된 의식과 감각에 관해, 8명의 여성 연극예술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성찰한 드라마투르그 전강희 씨의 글을 싣는다.

2015~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되던 시기는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깊이 각성한 시점이었다. 그 배경에는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이어 2016~2017년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추상적 개념이 아닌, 삶의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생생하게 체험하고 치열하게 사유하게 되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단절을 경험한 시기였다. 물리적 거리두기뿐 아니라 심리적 고립이 전 사회를 관통했다. 연극계 또한 변화의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2018년 #METOO 운동 이후, 서로 잘 알지 못했던 연극인들 사이에서 활발한 교류가 시작되었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페미니즘연극인모임’ ‘이야기하기자리’ 등 여러 모임과 단체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났고, 그 만남과 논의의 흐름 안에서 2020년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시작되며 연극은 잠시 멈췄고, 이후 전과 같은 거대한 물결은 다소 잦아든 듯 보였다. 대신, 작고 조용한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글쓰기 수업이 이어졌고, 자신의 이야기를 언어로 풀어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배우들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활발했고, 단순한 고백이나 경험의 나열을 넘어서, ‘배우’라는 위치에서 발화하는 행위로 나아갔다. 이들의 글쓰기는 단지 자기 고백에 머물지 않았다. 권력 구조 속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성찰하고, 그 경험을 언어화함으로써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분명한 의지를 품고 있었다. 1인칭 시점의 글들, 취약함을 기꺼이 드러내는 고백들, 돌봄에 대한 섬세한 사유들. 지난 7년 동안 이 모든 작은 움직임은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이어져 왔다. ‘미투’라는 커다란 파동이 만들어낸 또 다른, 낯설고 다양한 움직임들. 글쓰기 모임은 그중 하나의 예일 뿐이며, 내가 알지 못하는 더 많은 흐름이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나는 그 마음들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연극으로 상징되는 대학로라는 공간, 그 안에서 흘러간 7년의 시간, 그 속에 쌓인 기억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그 자리에서, 동일하지 않은 개개인의 기억을 통해 미래를 함께 바라보고자 한다. 이 복잡하게 얽힌 공간과 시간 속에서, 어떤 경험이 의미가 있는지를 나 혼자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실천해 온 여덟 명의 여성 연극인들의 목소리를 이 글에 담았다. 그들이 일상에서 어떤 태도를 지켜왔는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를 통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함께 돌아보고자 한다. 30년 넘게 무대에 선 50대 배우, 20년 이상 연극을 만든 50대 연출가와 40대 배우, 그리고 2014년에서 2018년 뜨거웠던 시기에 등장한 20~30대 배우 세 명과 연출가 두 명. 세대도, 위치도 다른 이들이 풀어낸 말들이, 한 시기를 증언하는 하나의 궤적으로 남기를 바란다.

2018년 미투를 기억하며

질문은 2018년 연극계 미투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때의 심정은 어땠는지를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은폐되어 온 일이 드러난 데 대한 충격을 이야기했고, 당혹스러웠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믿어왔던 기존의 체계가 무너져 내리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 혼란과 상실을 경험하고 있었다.

“제가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극단에서도 있었던 가스라이팅과 위계 폭력이 개인의 특수성이 아니라 연극계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보편성으로 확대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겪은 특정 사례라 여겼던 것이 연극계 전반에 만연한 폭력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으니까요.”

“미투가 있기 몇 해 전, 저를 잘 따랐던 한 학생이 저를 찾아왔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대학 졸업 후 연희단거리패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힘든 시간을 이야기해 주었어요. 그 와중에 이윤택이 자기에게 좋은 배역도 주고 칭찬도 많이 해주어서 버티고 있지만 선배들 눈치가 보인다면서 그곳을 나와야 할지 고민되고, 다른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문제가 없는지를 물어봤거든요. 저는 지금의 생활이 너에게 큰 자산이 될 것 같다면서 다독였습니다. 그 친구가 넌지시 던진 그 말속에 혹시 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은 아닐까? 왜 더 버티라고만 했을까? 이런 자책이 밀려왔습니다.”

“제일 처음 느꼈던 감정은, 당혹감과 혼란이었어요. ‘아, 이윤택이 한 일이 성폭력이라면, 그때 그 선생님이 나한테 했던 것도 성폭력이겠구나. 그래서 내가 그렇게 괴로웠던 거구나’하는 중요한 인식의 순간이 있었어요. 제가 겪었던 일들에 비로소 ‘성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는데, 그 인식이 저를 무너뜨리면서 동시에 벌떡 일으켜 세워줬어요.”

“올 것이 왔다는 생각과 함께, 숨이 크게 쉬어지고 체증이 내려간 느낌이었어요.”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장면에 대해서도 물었다. 많은 이들이 떠올린 장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2월 21일 밤, 100명이 넘는 연극인들이 극단 고래 연습실에 모여 7시간이 넘도록 토론을 이어갔던 풍경이었다.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고자 했던 그 자리는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다른 하나는 뉴스 화면 속, 당시 극단 대표의 해명 인터뷰였다. 그 장면 역시 쉽게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뉴스를 보고,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 놀라고 당황했을까? 먼저, 이윤택이라는 이름이 가진 예술적 상징성에 대한 배신감, 그의 작품을 한때 좋아했던 나에 대한 분노, 연희단거리패에 대한 여러 가지 단상들, 대표였던 사람의 말도 안 되는 해명. 연극에 대한 나의 마음과 열정 또한 의심하게 되면서 뭔가가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이윤택이라는 거장은 절대 무너질 수 없을 것이라 믿었는데, 그런 세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제 삶도 같이 흔들리더라고요.”

거장의 이름은 견고한 세상을 무너뜨렸다. 그 붕괴의 충격은, 그와 직접적인 인연이 없던 이들의 삶마저 흔들어 놓았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 역시 그 여파 속에 있었다. 연극이라는 예술 자체에 대해 근본부터 다시 질문하고, 재정립해야 했다. 그 흔들림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제가 말하지 못한 성폭력이 있다는 사실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어요. 그 선생님과 작업하는 후배를 가끔 마주쳐요. 아마도 그는 ‘우리 교수님은 폭력은 저질렀지만 성폭력은 저지르지 않았어’라는 믿음으로 포용력을 발휘했겠지요. 2018년 이후 한때 학생들에게 나타난 희한한 현상이 있어요. 물리적 폭력은 성폭력이 아니니까 쉽게 용납하고 용서하는 거예요. 저 역시 그 선생님이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저럴까, 안쓰럽다고도 생각했었는데, 이런 마음을, 후배들도 가지게 된 걸까요. 제가 성장한 것 같을 때도 있는데, 저의 어떤 부분은 아직도 2018년의 그때 그 자리를 여전히 뱅뱅 돌고만 있는 것 같아요.”

“가해자에게 더 가까이 연루되었다는 느낌, 그에 따른 죄책감이 있었어요. 피해자들은 제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가해자들과 동조자들은 제가 작품을 찾아보던 연출가와 배우들이었으니까요.”

이후 7년, 우리의 변화된 감각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에서는 월례포럼이 열렸다. 3월의 주제는 ‘미투가 폭로한 침묵의 카르텔’이었고, 나는 사회를 맡았다. 참가자들은 피해자로서의 경험을 공유했다. 가해자에 대해 말하기 위해, 혹여 자신의 정당성이 의심받지 않기 위해, 많은 이들이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전면에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그날의 격양된 분위기는 이후 한동안 거의 모든 모임의 공통된 정서이기도 했다. 우리는 냉정하고도 정제된 언어를 갖출 여유가 없었다. 분노와 울분이 말을 대신했다. 선배 연극인들조차, 이 사안을 설명할 적확한 언어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나는 이 시간이 적절한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토해내는 시간을 거친 후, 각자의 방식으로 다음 단계를 모색해 왔다. 이제는 서로 다른, 다양한 목표를 지닌 채, 저마다의 길 위에 서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 권력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극계의 위계적 구조, 더 나아가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자신을 다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제 과거나 지금의 행동을 돌아보는 부분이 생겼고요. 감수성에 대해서 더 고려해 보고 노력하는 제가 좋기도 하고요. 물론 어떨 때는 혹시 과거의 어떤 행동을 누군가 문제 삼으면 어떻게 하지? 나도 표적이 되는 건가? 그런 불안함도 솔직히 있었어요. 다들 어설펐고, 잘 몰랐고, 위계나 폭력에 대한 감수성도 없었고, 때로는 그런 것이 멋있다고 느끼면서 작업한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죄책감과 슬픔이 밀려왔어요. 여러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어요. 교수가 술 마시자고 부를 때는 꼭 남자 동기를 데리고 가라고 당부했던 선배들, 교수의 성폭력 관련 문제 제기에 ‘왕따’가 되어 질타를 감내해야 했던 동기들, 울면서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던 후배들이요. 그건 잘못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던 저의 무지함과 나약함이 떠올랐고, 스스로 가담했던 위계의 재생산을 인지하게 되었어요. 저는 선배들의 방식을 답습했고, 때로는 후배들을 몰아세우기도 했어요. 그러니 그 구조 안에서 저는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던 거죠.”

자신이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자각은, 단순히 누군가를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문제를 넘어,자신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어떤 윤리적 실천을 선택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이는 곧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며,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나의 동료들이 취한 전략은 ‘글쓰기’에 이어 ‘말하기’였다. 자신의 이야기에 자긍심을 실어 말해보기, 문장의 주어와 목적어를 바꿔보며 관점을 흔들어보기, 때로는 주제를 바꾸거나, 기존 질서 안에 포획되지 않는 새로운 언어를 찾는 것이었다. 때때로 유머를 장착했고, 때로는 뻔뻔할 만큼 당당했다. 그 모든 시도는 불완전하지만 진지한,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적인 실천의 한 방식이었다.

“초반에는 분노를 동력 삼아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이후 몇 년은 조금 지쳤고, 사람들이 더 이상 미투 운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더 말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고요. 무력감과 허탈감도 느꼈습니다만, 그 시간을 버텨 온 자긍심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저는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제안하고, 불평합니다. 젊은 여성이 불평하는 것을 못 보신 분들은 좀 놀라기도 합니다만 저는 배우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불편을 느꼈을 때, 그것이 어떤 위계에서 발생하는지 대화로 점검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주로 얼굴이 붉어지고, 몸이 덜덜 떨리고, 말이 빨라지고, 횡설수설하고, 준비한 말을 다 못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요.”

“배우라는 역할에 대한 재정의가 있었어요. 창작자로서 배우가 가진 시선과 감각, 해석이 작품 안에서 작동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요. 동시에, 배우의 위치가 한참 아래라는 것도 자각하게 됐어요. 그걸 바꾸고 싶어서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됐어요. 사실 거기에 몰두하면서 고집도 세지고 갈등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 시기를 지나 입체적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어요. 이제는 ‘배우’ ‘연출’ ‘작가’ 등의 구분보다는, 각자의 위치에서 겪는 부침과 외로움에 더 관심이 있어요.”

오늘의 안전, 내일의 윤리

미투 이후 작품이 다루는 주제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많은 이들이 전해주었다. 세계에 대한 시선이 이전보다 따뜻해졌다고 했다. 그 안에는,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조금은 더 너그러워지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미투 이후 저는 여성 인권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고, 그렇게 페미니즘을 알게 되니 퀴어, 장애, 동물권, 기후위기까지 시야가 확장됐어요. 이제는 더 이상 소수자를 ‘소비’하는 연극은 하지 않아요. 그런 농담도 안 하고요. 다양한 감각과 특성을 가진 몸들, 보편 바깥의 존재들의 이야기들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고, 그만큼 더 배우고, 사유하고, 부딪히고 있어요. 한계를 인정하고 마주하기도 하면서요.”

“대본에 혐오 발언이나 시대착오적인 표현 등 불편한 부분이 있을 때, 예민하게 들여다보고 수정을 하기도 해요.”

“재현 윤리에 대한 고민을 세심히 하게 되었어요. 미투 초창기에는 확실히 폭력적인 재현에 더 얼어붙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폭력의 재현이 금기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좀 더 상상하게 만들 수 있는 편을 선호하긴 합니다. 폭력의 재현뿐 아니라 연습 기간 전반에 거쳐 심리적, 물리적 안전을 고려하는 환경을 조성하려고 하고, 프로덕션에 대한 정보 제공을 팀원들에게 최대한 상세히 미리 알리려고 해요. 그뿐 아니라 장애 접근성, 기후위기와 관련된 폭넓은 감수성으로 작업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작업 현장은 그 전보다 안전해졌을까? 이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은 지금을 과도기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2년 전에 같이 작업한 배우와 이번에도 함께 하는데 지난번과 달리 지금은 나의 모습이 권위적이라면서 실망했다고 했어요. 조금 충격이었죠. 다른 작업에서는 아닌데 왜 이 작업에서는 그렇지? 배우가 그렇게 느낀 근본적인 이유가 뭐지? 조직 운영에 있어 수평과 수직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가야 하지? 미묘한 지점이 있는 걸까? 저의 상태가 조금은 분열적일 수도 있고요. 아직 과도기이고, 앞으로 나아지겠지요.”

“분명히 안전해졌어요. 이윤택이 다시 돌아오고, 연희단거리패의 전 대표가 일을 하고, 그가 만드는 공연에 계속 새로운 작업자들이 붙고, 작업물들이 나온다고 해도요. 저는 더 안전해졌다고 믿습니다. 이후를 상상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안전한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이라는 것은 감각이고,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에게 ‘안전한 작업 현장’이란, 실수해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관계)이었어요. 각자가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소통하고 조율하려는 태도를 마주할 때, 저는 안전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예전보다 더 안전해졌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만들어온 ‘안전함’이 누구에게 쉽게 작동하고, 누구에게 작동하지 않는지를 계속 확인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해요. 요즘에는 폭력적인 순간이 더 미묘해졌기도 하고요. 그만큼 더 정교한, 새로운 언어로 이 문제들을 다뤄야겠지요. 결국 안전이라는 건 계속 갱신되어야 하는 감각의 과정이니까요.”

“안전이라는 키워드를 다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훨씬 안전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무조건 ‘~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은 아니라는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안전에 대한 감각이 일부 현장에서만 유효할 뿐, 여전히 미투 이전과 이후가 다르지 않은 현장도 있다는 격차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가 분명히 변하고 있다는 감각. 그들은 여전히 질문 중에 있었다. 이윤택의 복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던져 보았다.

“형사적 책임이라는 벌을 받았으니 다시 본인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그 공연을 볼 생각은 없어요.”

“지켜볼 겁니다. 피곤하고 지쳐도 흘려보내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그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저를 세차게 흔들고 있어요. 평생 연극을 하지 말라는 거냐와 같은 말은 논점을 흐리는 거예요. 저는 그(들)은 돌아올 준비가 안 되었다고 봅니다. 가해에 직접 가담하거나 2차 가해를 했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데 자신들이 행했던 가해와 가담에 대해 일말의 인정도 사과도 없어요. 그들이 대응해 온 지금까지의 과정이, 그(들)의 복귀를, 복귀 가능성을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듭니다. 중요한 과정이 생략된 채 시간만 흘렀어요.”

나는 연극사에서 그의 존재를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쓰기가 지우기와 같은 말일 수 없다. 연극계를 무해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그것이 더 곤란한 일일 수 있다. 미투 이후 우리는 7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왔다.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것을 보는 사람들 모두의 7년이었다. 그 시간은 이윤택으로부터 시작된 연극사를 고정된 서사로 두지 않고 다시 쓰게 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고 믿는다. 과거로부터 오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자리에서 과거를 다시 응시할 수 있는 힘, 7년이라는 시간은 그 힘을 키워나가는 데 필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우리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 세대를 초월한 연대가 가능할까?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우선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보다 ‘이야기 나눌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세대의 차이를 느끼는 것, 이것부터가 연대의 시작인데 지금은 차이가 없도록만 하려고 하니까, 서로 불편한 거 같아요. 서로를 너무 몰라서 각자 외로운 거 같아요. 창작자로서 가져야 할 책임과 권한, 저작권이나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육기관의 꾸준한 창작자 윤리교육에 대한 논의도 같이 나누고요.”

“다른 세대가 가지는 상상력에 호기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연대의 기반이 된다고 믿어요. 작년에 배우들이 모여 글을 쓰고, 각자의 단막 희곡을 완성하는 과정을 보냈는데요. 그 속에서 서로를 애써 설명하지 않았어요. 그저 써온 글을 함께 읽고, 울고, 기뻐하고, 신기해하면서 삶을 엿보았죠. 어떤 배우분이 늙어가는 몸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는 청결 강박을 주제로 글을 써오셨는데, 언젠가 저도 만나게 될 순간이잖아요. 겪어보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공감하고, 내 삶의 일부분으로 여겨보면서, 깊은 연대의 힘을 느꼈어요.”

“우리는 앞으로 방대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명확한 가해로 인정되지 않는 2차 가해와 법적 구속력, 가해자의 복귀와 공공기관의 대처, 예술인권리보장법에 2차 가해가 명시되어 있지 않은 점, 그뿐 아니라 연극계 전반의 제작비나 인건비, 극장 및 연습실 환경, 관객들과의 소통 방법, 심사위원의 성비나 다양한 연령대를 보장하게 하는 것 등 쌓이고 널린 이슈들이 있지요. 저는 계속 연극을 하고 싶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활발하게 이야기되기를 바라요. 연극계 미투는 단순히 ‘성폭력’만이 아니라, 연극계에 쌓인 관습과 전반적인 환경에 대한 모든 이슈가 쌓여 폭발한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세대 간 소통뿐 아니라, 동년배라 할지라도 타 작업자들과의 소통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세대 내 연대도 어렵고, 세대가 다른 이들 간의 연대도 어렵습니다. 다들 바쁘고 가난해요. 그래서 또 바쁘고요. 연대까지는 아니어도, 경청하고 소통하는 것까지는 노력해야죠.”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질문의 바탕에는 우리는 어떤 언어를 발견하고, 또 발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그에 대한 단서는 인터뷰이들의 응답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안전에 대한 언어들을 모아야 합니다. 그간 만나온 프로덕션들이 대체로 ‘안전한’ 공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크고 작은 폭력과 갈등은 있습니다. 저는 그것들이 연출-배우, 남성-여성, 윗세대-아랫세대로 구분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공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섬세하고 내밀한 언어로 대화를 나눕니다. 더 다양한 언어로 대화하는 방법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저는 연극계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윗세대가 특별한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잘못을 내버려두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싸울 권리요.”

“제가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 중 하나는 연출과 배우의 언어를 교류하는 것인데요. ‘위계-힘-권력’을 상쇄시키는 방법을 찾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저는 무엇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폭력을 알아차리기 위해, ‘안전’한 환경을 위해 긴장하고 검열하고 감시하는 시기를 꽤 오래 지나왔잖아요. 이제는 무엇이 우리를 즐겁게 만들고 기쁘게 하는가를 묻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쁨은 싸움을 계속하고 방향을 재정의하는 힘이자 회복의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기준을 다시 세우게 만드는 질문이기도 하고요. 어떤 웃음이 누군가에게 고통이라면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죠. ‘무엇이 기쁨인가’를 질문하는 것은 윤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미래를 상상하는 3

미투 이후 10년이라는 시간을 향해, 이제 3년이 남았다. 그래서 물었다. 앞으로 3년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가?

“제 자리에서 생존하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 작업을 했던 동료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규약을 만들고 난 이후 각자의 작업 공간과 주변에서 일어난 변화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을 의논하고 싶습니다.”

“저처럼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저는 공유한 질문에 답변을 생각하면서 이 과정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어떤 문제에 공감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일상에서부터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 마음을 잃지 않고 내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으로 쭉 있고 싶습니다.”

“미투 이후 10년을 돌아보는 자리에서는, 확장된 서사와 주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연극계 미투는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다양성과 소수자를 다루는 감각에 비약적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3년간 소수자 서사를 풍부하게 확장 시킨 신작 작업에 매진하려 합니다. 더 많은 존재와 투쟁에 연대하는 예술가로서 앞으로의 3년을 보내려 해요. 고통스러운 사건에서 의미를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주변을 잘 살피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응원하는 것과 같은 소소한 일을 먼저 하려고 합니다.”

“열심히 버티고 싶습니다. 퀴어페미니즘 공연을 만들고, 또 만들며 버티는 것. 그렇다면 누군가 목소리가 필요할 때 함께 발화해 줄 수 있고, 다음을 버틸 세대에게 미약한 위안이 될 수 있겠지요?! 꼭 미투 얘기가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내어주며 연극을 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나는 자연스레 ‘돌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들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결국 주변을 살피고 감각하고 돌보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지난 7년은, 각자의 위치를 권력 구조 속에서 다시 바라보고, 기존의 질서를 새롭게 조명할 언어를 찾아 온 시간이었다. 그 끝에서 우리가 도달한 것은, 취약한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무대에 오를 것이다. 소소한 글을 쓰고, 작고 조용한 연극을 만들며, 작은 실천들을 이어갈 것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우리는 힘이 없기 때문에 서로에게 기대어 갈 것이고, 그 취약함은 결국 서로를 돌보는 새로운 힘으로 자라날 것이다. 그 힘은 과거의 역사를 새롭게 배열할 가능성이 될 것이며, 우리는 그 가능성을 축적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미래를 상상하려는 시도만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전강희

새로운 극적 언어를 탐색하고 장르 간 해체와 협업이 활발한 공연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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