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진
편집자 주
행정안전부의 보고에 따르면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의 수는 2024년 11월 1일 기준 258만 3,262명으로 대한민국 총인구의 5.0%를 차지한다. K-콘텐츠의 글로벌 성공에 도취하고 글로벌 공동 제작의 일상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공연예술계의 외국인 동료들에게 제대로 된 성원권을 부여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ACTiO는 총 3회의 ‘연속 기획’을 통해 공연예술계의 외국인 동료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마주하고자 한다. 첫 글은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오진이 3인의 외국인 동료들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2회에 걸쳐 연재된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인구의 5% 이상은 이주민이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 20명 중 1명은 이주민인 셈이다. 이주배경 인구는 3개월 이상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외국인, 귀화자, 이주민 자녀, 북한이탈주민, 국적판정자,1 사할린 동포 등을 포괄한다. 국내 출생율이 0.8명에 머무르는 상황에서도 매년 한국 총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이주민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기준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학생 수가 작년보다 19만 명 줄어든 와중에도, 이주배경 학생은 8천 명 넘게 늘어 학령인구 감소와 대비되고 있다.
이주배경 학생은 첫 조사였던 2012년 4만여 명에서 2017년 10만 명, 2025년 20만 명을 넘어섰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이주민들과 함께 일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주(移住)’는 ‘정주(定住)’와 다르다. 하여 여전히 ‘이주민’(移住民)이라는 단어는 머무르다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주민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당연하게 한국 국적을 가진, 당연히 ‘한국인’으로 패싱되는 다른 누구보다 이 나라에 머무르고 싶어할 지 모르며, 원치 않게 떠나야 될 날을 두려워하고 있을 가능성 또한 높다.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다양한 이주배경을 가진 예술가들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나는 어떤 얼굴로 이 정부가 외국인을 바라보고 있는지, 또한 한국에 사는 이들이 어떤 눈으로 이주민을 바라보고 있는지 조금 더 감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눈으로 이주민에게 배타적인 이 나라를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모호해졌다. 한국에 머무르는 이주민들에게 한국은 배타적이다. 이주민들은 정기적으로 출입국 관리소에 가서 본인의 무해함을 서류로 증명하고 비자 연장을 허락받아야 한다. 그 증빙은 어느 때는 거주지이며 현 직장 주소이고, 신뢰할 만한 한국인의 추천서이거나 통장 잔고이고, 지난 주와 지난 달의 업무 기록이다. 한국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비율의 세금을 내거나, 과도한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2 나라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증명서와 증빙 방법 또한 그때그때 요구하는 것이 달라지고 그 원칙 또한 모호하다. 한국에 머무르며 다른 국적을 갖고 있는 한, 누구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주배경 예술가들과의 대화는, 무서운 속도로 우경화 되어가는 이 전세계적 흐름 앞에서 우리가 앞으로 대적해야 하는 것은 지금의 상황보다 더 큰 재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비단 대한민국만의, 현 정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동시대의, 세계의 거대한 나쁜 흐름이 말이다.
이주민들은 그 거대한 흐름에 어떻게 대적하며 살아야 하는가. 외국인으로서, 혹은 귀화인으로서, 혹은 이주민 자녀로서, 여행비자로 왔다가 여기에 쭉 머무르고 싶어져 버린 다른 나라의 국적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대항하여 싸울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싸움은 필연적인가. 어쩌면 큰 문제가 없는 한, 비자의 위협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더 자유해지기 위해, 아무 문제를 만들지 않고,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며, 적법한 서류를 준비하는 무해한 이주민이 되는 편이 그나마 수월해지는 길 아닐까. 그렇게 때로는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나 일정한 기준 없이 자꾸만 변화하는 법의 요구사항에 맞춰 나를 수정해 나가는 편이, 나의 통장 잔고를 증명하고 나의 소속을 서류화해 내는 것이, 어쩌면, 이것이 세계의 거대한 흐름이라면, 그렇게 나를 맞추어 나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이주민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보다 먼저 그들의 ‘국적’이 소환되곤 하는 이들이 있다.
현 정부의 문화 정책 기조는 크게 ‘5대 문화강국 도약’과 ‘K-컬쳐 300조 원 시대’3를 핵심 비전으로 삼고 있다. K-콘텐츠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전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형형하다. 실상 이러한 정부의 문화 정책 기조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작업하고 있는 이주 배경 창작자들의 삶과는 너무나 먼 이야기이다. 2026년 여름, 폭염을 가로질러 배우 베튤과 진완시, 사운드 디자이너 지미 세르와 만나 인터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지원 정책과 비자 문제와 같은 법률적, 행정적 조건으로부터 시작하여 디아스포라 경험으로 이어졌다.
비자와 국적과 삶
지미 세르는 프랑스에서 자란 사운드 디자이너이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 살 때 프랑스로 입양을 갔다. 25년간 프랑스에서 살다 우연히 한국에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19년째 한국에 살고 있다. 한국에 온 뒤로 2년 정도 불어 과외를 하며 밥벌이를 하다 친구가 하는 무용 공연의 음악을 만들게 된 것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지미는 ‘재외동포 비자(F-4)’로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데,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갔다는 증명서만 있으면 3년마다 재발행이 되는 비자이다. 거주지에 대한 부동산 계약서 외에 다른 증빙은 요구하지 않는다. 지미에 말에 따르면 ‘노숙인만 아니면’ 연장이 되는 비자라, 한국에 살며 끊임없이 비자의 압박을 받는 다른 외국인 친구들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라고 한다. 하여 그는 늘 미안함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F-4 비자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오래 한국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베튤은 여섯 살 때 한국에 왔다. 터키인 부모님이 자국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더는 터키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 있었고, 가족이 다 한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녀는 한국에서 초중고교를 나오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며 이주민-페미니즘-디아스포라적 경험에 관하여 공부하였다. 졸업 전까지는 학생비자(D-2)로 한국에 머물렀고, 졸업 후에는 우수인재 거주비자 (F-2)로 비자를 연장하였으며, 1년 전에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현재는 결혼 이민 비자(F-6)로 전보다 더 안정적으로 한국에 살 수 있게 되었다.4 그녀는 여성, 이주민, 페미니스트, 배우로서 이민자 경험과 디아스포라적 경험에 대하여 강연을 하거나 글을 쓰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의견을 말할 기회가 생기곤 한다. 본인의 목소리로 이주민의 경험을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카메라 앞에서 한국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인 척하는 연기를 하기도 한다.
진완시의 이름은 완시이다. 시를 좋아하시는 엄마가 딸의 이름을 “완‘시(詩)’” 라고 지었다. 싱가포르에서 나고 자랐다. 학부는 중어중문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에 연기를 하기로 결심하고 방향을 틀었다. 가족들은 완시가 배우가 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시’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만은 차마 100% 반대하지 못하셨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 실험극 위주로 무대에 서며 배우 생활을 하다가, 삼수를 거쳐 한국으로 유학을 왔고, 한국에서 8년째 공부하고 일하고 연기하는 삶을 꾸리고 있다. 현재는 소속사가 있어 ‘예술인 비자(E-6)’로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예술인 비자는 세금은 22% 내야 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고용추천서를 받아 출입국관리소에 제출하여야 하는데, 1회에 최대 2년까지 머무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몇 가지의 질문을 만들어 공유하고, 현장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네 시간이 넘는 대화를 축약하는 과정에서 남은 이야기들을 전부다 담아내지 못하여 아쉽다. 그 사이에 있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 있는 지면들이 앞으로 더 많이 확보되기를 기대한다.
나의 ‘외국인’ 정체성
지미
상대가 누군가에 따라, 상대의 선입견에 따라 나를 인식하는 게 달라질 때 있는 거 같아요. 여권을 보여줘야 할 때, 상대가 여권 보고, 다음에 제 얼굴 보고는 ‘프랑스 사람 맞나요?’라고 묻기도 하고. ‘복잡하게’ 느낄 때 있어요.
베튤
페이퍼워크 해야 할 때 외국인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곤 합니다. 이민자로 인식되는 채로 오래 살다 보니, 배우로 오디션 지원서를 넣을 때 사전에 ‘외국인도 되나요?’하고 불안해하며 확인하게 되기도 하고요. 한국인의 경우 예술인 활동증명이 완료되어 있지 않아도 지원사업을 쓸 수 있지만, 외국인의 경우 예술인 증빙이 있는 외국인만 지원사업을 쓸 수 있는데, 긴 심사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실제로 제출할 시기를 놓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예술인 증빙을 받기 위해 예술인 복지재단 측에서 이러이러한 부분을 보완해 달라고 요청하고, 그 후 논의하는 시간이 이어지고, 그러면 승인이 나길 기다리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다른 이들보다 더 길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무게가 다른 것 같아요. 그럴 때면 내가 ‘외국인’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진완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혹은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은 ‘한국인’만 지원할 수 있다고 (공고문에) 적혀 있어요. 작년에 싱가폴-한국 수교 50주년이었고, 대한민국 예술 환경에 대해서 리서치를 하려 했었는데, 당시 사업 담당자 분과 소통했을 때 아무래도 이것이 ‘나랏돈’이라… 세금으로 돌아가는 지원사업이다 보니 외국인인 저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받고 지원금을 받지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주 배경은 어떻게 작업의 자원이 되는가
베튤
저는 어쩌다보니 포스트 드라마 작업을 종종 공연해 왔는데요, 아무래도 인종적인 이슈 때문에 드라마 작업은 잘 안 들어오더라고요. 좋은 동료 창작자들을 만나 이주배경을 대상화 하지 않고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반대로 ‘외국인’이라는 상자 안에 들어있는 캐릭터를 연기해야 될 때도 있었습니다. 소위 ‘빻은’ 배역을 맡게 되곤 합니다. 그럴 땐 고단했어요. 다른 비틀기를 사용할 수 있는 창작자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말 못하는 연기를 제안 받으면 막막하긴 합니다. 촬영 현장에서는 그런 불편감을 표현해도 씨알도 안 먹히곤 하는데요, 때로는 이런 고민을 전혀 안 하는 작업만 하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도 좋은 드라마를 보고 나면 ‘나도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선이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디아스포라고 뭐고 가끔 딴 것도 좀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진완시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싱가포르에 있을 때 만약에 외국인 배우가 ‘싱가포르인’인 척하면은 그것도 이상할 것 같아요. 차라리 배우로서 내 정체성 및 특색을 활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생활인으로 돈을 벌어야 하니까, 매체에서 ‘외국인’ 역할을 하게 될 경우, 아무래도 ‘중국인’ 역할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인 역할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언어 배우는 것도 좋아하고, 연기 능력치를 개발하는 것도 좋아요. 그러나 가끔 하고 싶은 역할을 못 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전에 교내에서 지원금을 받아 작게 공연하기도 했는데요. 장 주네 <하녀들>에서 ‘하녀’를 이주민 설정으로 비틀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사는 외국인 하녀들ㅡ이런 사례는 없지만ㅡ 설정으로 공연을 올렸었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로 우리끼리 만들자’하고 뜻을 모은 이주 배경 배우들, 한국인 배우들, 장애 당사자 배우들이 함께 했어요.
베튤
저는 제가 어느 정도는 똑똑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똑똑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간이 길었어요. 뭔가 설명하거나 입증해야 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나의 발화에 힘을 싣기 위해 정말 열심히 똑똑해지려고 했었습니다. 그 결과 알게 된 거죠. 어차피 안 들을 사람은 안 듣는구나. 세상에는 똑똑해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구나. ‘똑똑해질 필요가 없는 것’이 내가 가져본 적 없는 특권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 세대 이주민들은 ‘똑똑해질 필요가 없는’ 사회를 누리게 되면 좋겠어요. 근래에 저에게도 조카들이 생겼는데, 이들은 제가 해 온 고민을 안하길 바라게 됩니다. 이 또한 딜레마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불편감이 저의 에너지나 작업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거든요. 예를 들어 지정 성별 여자인 조카들이 본인의 젠더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사회였으면 하는 한편, 아예 무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들지만 그와 동시에 그 감수성이 차별받는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럼에도 인종 때문에 불필요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으면 합니다.
진완시
전 좀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정책을 떠나 인간으로서 접근하면 어떨까. 작업자건 관객이건 (다른 국적의 사람에 대한) 포용력이 조금 더 넓어지면 어떨까 싶어요. 왜냐하면 동남아 사람이나,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 편견, 그런 거 한국에 여전히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동남아 사람 약간 아래로, 서양 사람 조금 더 위로 보는 게 있어서, hierarchy(위계)가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작업할 때 ‘외국인 틀에 맞게끔’ 우리를 (배우로) 썼구나, 싶을 때도 있어요. 여기가 ‘한국’이라 더 (차별 존재하는) 그런 것일까? 생각해 보면, 조금 더, 한국이라서조금 있죠. 싱가포르도 있지만, 어디 가든 있지만, 근데 한국은 명확하게 있구나, 느껴지곤 해요. 조금 더 묘하게… 있는 것 같아요.
제도와 인식
베튤
한국에서 이주민에 대한 연구를 한다든가 또는 뭔가 이주민에 대한 정책적인 비판 의식을 가지고 글을 쓴다든가 할 때 대체로 착안하게 되는 것이 딱 세 가지 케이스거든요. ‘난민’이거나, ‘결혼 이주 여성’이거나 혹은 ‘외국인 노동자’. 전 난민까진 아니지만 (부모님의 정치적인 이유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경험이 있었어요. 동시에 제 생김새가 굉장히 서양인의 전형적인 생김새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난민’ 이슈에 완전히 적합한 사람은 아닌 거예요. 때문에 이주민 관련 콘텐츠에 쉽게 캐스팅 될 수 없는 지점이 있어요. 일전에 ‘한국에서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한 자기 서사를 발화하는 공연을 했는데, 공연 관계자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동양인 여성이 (인종적으로, 상황적으로) 더 핍박받는 존재인데, 서양인(의 외모를 가진) 백인 여성이 나와서 본인의 얘기하는 거가 별로 자기는 와 닿지 않는다, 달갑지 않다. 라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결국 제 발화가 ‘약자 투쟁’처럼 들렸겠구나, 라는 회의감이 들고 고민이 되었어요. 굳이 ‘약자 투쟁’을 하자면 전 이슬람 여성이고, (투쟁의 당사자성에서) 최하층에 있는 사람인데, 한국에서 이민자 문제를 발언함에 있어서 저의 정당성이 상대적으로 작게 여겨지는 건가 고민도 하게 됐지요. 완시 언니가 말한 대로 인종적인 hierachy가 분명히 한국에는 있고요. 당사자로서도 어떤 어려움들이 있고, 또한 그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서도 (대표되는) 전형들이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도 내가 편입되지 못한다는 감각도 있어요.
때로는 내가 더 분명한 어떤 상태였으면 하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동시에 경계에 있는 지금의 나인 채 그대로, 나(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라는 감각도 있어요. 둘은 다른 건데 사실 같은 거기도 하잖아요. 이 맥락에서 이주민 문제를 단순히 제도 비판으로 가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해요. 제도로 가면 결국에는 아까 말한 난민이나 결혼 이주 여성 문제, 이주 노동자 문제 이런 것밖에 건드릴 수가 없는데 사실 거기서 비켜난 사람들 너무 많거든요. 특히 이주 배경 예술인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진완시
사실은 비자 문제만 갖고는 한국만 비판할 수 없거든요. 왜냐하면 싱가포르는 한국보다 비자 받는 것 더 힘들어요. 한국 비자 받는 거는 싱가포르 보다 되려 더 수월해요. 싱가포르에서는 ‘예술인 비자’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어요. 작품 들어가면은 그때 그 기간만 가능하고 거주자로 취급받을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아니면 프로젝트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되는데, 예술인들 그렇게 될 수가 없잖아요. 현실적으로 싱가포르는 예술인 비자 아니고 work permit(노동 허가)만 나오거든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거죠. 미국의 경우는 ‘이민자의 나라’라는 오래된 정체성이 있어서 학생 비자로 들어 온 이민자들에게 장기적으로 영주권을 주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지미
저는 (다른 나라) 다 어디든 비슷비슷할 거 같아요. 친구 부부가 독일 베를린으로 간 지 이제 7년 됐는데 둘 다 한국인인데 비자 계속 골치 아프다고 해요. 수입 계속 증명해야 하고, 시스템이 계속 까다로워지는 거죠. 프랑스도 그래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년 거주 증명되면 자연스럽게 15년 거주 비자 신청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10년 살아도 비자 안 나오는 거예요. 프랑스에서 대학 함께 다녔던 친구가 10년 거주 후에 2005년에 15년 거주 비자 신청했었는데, 당시에도 비자 나오기를 1년 넘게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당시에도 이미 점점 이주민들에게 계속 엄격해지고 있었는데, 시스템이 이제는 거의 안 줄 것 같은 분위기여요.
인터뷰를 하기 전,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모순에 대해 들여다 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대화가 이어지며 결국 전 세계가 나와 다르게 여겨지는 존재를 배제하고 배척하고 있다는 문제로 확장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태도로 향후에 다가오는 시간을 살아가야 할까. 제도를 넘어선 인식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 회에 이어진다.
(다음 회에 계속)
이오진
호랑이기운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쓰고 무대에 올린다.
instagram.com/tiger.power.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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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적 보유에 관한 확인이 요구되어 법무부 심사 후 판정받은 자로 주로 재외동포가 해당된다. ↩︎
- 건강보험의 문제는 이주민의 최저보험료가 국민 평균 보험료라는 것이 주요한데, 이주민 예술가의 개인 소득과 상관없이 매달 위 금액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인 어려움이 되곤 한다. 예를 들어 이주민 예술가의 연 소득이 1000만원일 경우, 소득의 1/5인 180만원 (15만*12개월)은 건강보험료로 의무적으로 납부를 해야 한다. 건강보험료 산정은 이주민의 비자에 따라 차등이 있는데, 그에 반해 결혼이민자(F-6)는 국민과 동일하게 소득기준으로 산출되며, 학생비자는 정부에서 할인을 해주어 반값(8만원)으로 책정된다. ↩︎
- 문화체육관광부, 「’케이-컬처’ 300조 원 시대 연다…문체부, 콘텐츠 예산 26% 확대」,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2025.09.05.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48737> ↩︎
- 점수제 거주비자는 연간 소득, 나이, 학력, 한국어 능력 등을 점수로 환산하여 일정 점수(120점 만점 중 80점 이상)를 넘으면 취득이 가능한 비자이다. 학력 등의 포인트에 따라 2~3년, 길게는 5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프리랜서’라는 기준은 정부의 시스템에 포함되지 않았고, 이주민 예술가인 베튤은 소득이 최저임금이 안되는 이유로 6개월에 한번씩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불안감이 있었다고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