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영
연극계 미투 운동 아카이브는 연극계 미투·위드유 운동을 기억하고 지식의 전승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웹 아카이브로 티스토리 블로그를 이용하여 운영되고 있다. [1] 사건 [2] 논문·비평·칼럼·책 등 [3] 단체 활동·행사 [4] 관객 연대 [5] 미투운동 이후의 변화라는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고, 2026년 2월 현재까지 232개의 기록이 저장되어 있다.
https://metoo-theater.tistory.com/
2018년 2월 시작된 연극계 내 미투 이후, 연극계는 이전과는 다른 곳이 되었다. 가해 사실 고발과 피해자에 대한 연대와 지지가 이어졌고, 동시에 안전하고 평등한 연극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곳이 사실은 안전하지 않았다는 것, 당연하다고 믿었던 관행들은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하여 가해자들이 마음 놓고 가해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 시간이 있었고, 가해자 개인을 처벌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안전하고 평등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임을 논의했다. 미투 이후 8년, 연극계는 이전과는 다른 곳이 된 것처럼 보였다.
연극계 백래시, 어떻게 맞서나갈 것인가
2024년 3월, 극단 서울공장의 <두 메데아> 공연의 보이콧 및 취소 사태와 관련하여 열린 제9차 대학로X포럼 [연극계 백래시, 어떻게 맞서나갈 것인가 – <두 메데아> 보이콧 운동을 경유하여]에서 우리가 목도한 것은 연극계가 마주하고 있는 백래시의 현장이었다. 가해자들의 반성 없는 복귀와 이를 승인하는 공공극장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발의된 포럼에서조차 가해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안전을 위해 만들었던 규칙은 잘 전달되지 않았고, 미투 당시 문제가 되었던 사건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9차 X포럼의 기획단과 참석자들은, 연극계의 백래시가 거세지고 있으며 미투 운동과 그 이후 연극계의 흐름이 세대와 환경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고 있음을 발견했다. 포럼 후 만들어진 후속 모임에서 연극계 백래시 조사와 더불어 연극계 미투운동 아카이브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그 때문이다.
미투 운동 이후 현재까지 연극계 내부에서는 성폭력/위계 폭력을 예방하고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사회와 연극계 내의 인식 변화라는 흐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을 단편적으로만 받아들이게 되면 사건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지고, 적절한 대응의 예시를 찾을 수 없게 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연극계 미투 운동 아카이브는 이런 정보를 한 자리에 모아 정보 교류를 원활하게 하며, 미투 이후 연극계 내에서 어떤 연대가 이루어져 왔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연극계 미투 운동 아카이브는 다섯 개의 분류로 구성되어 있다. 2018년 이후 일어났거나 가해 사실이 드러난 사건, 2018년 이후 발표된 논문, 비평, 기사 및 도서 등 학술적 연구, 단체의 활동 및 행사, 제도의 변화, 관객들의 움직임을 담아냈다. 다섯 개의 분류는 다시 연도별로 분류하여, 해당 연도 연극계의 지형을 살펴볼 수 있게 만들었다. 미투 운동 아카이브팀(김민조, 김진아, 박선우, 유연주, 이산, 장지영, 진해정)은 아카이브를 만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과, 사용자가 정보를 파악하기에 용이할 것을 아카이브의 목표로 삼았다. 물론 어느 정도 한계는 있으나 태그를 이용하여 같은 키워드의 정보를 모아 볼 수 있게 하거나 연관된 사건과 행사, 학술적 연구 등을 게시물 내의 링크로 연결하는 등 전반적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해는 계속된다
아카이브를 만들면서 알게 된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가해는 계속된다는 점이다. 제9차 대학로X포럼 후속 모임에서 아카이브 만드는 일을 논의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아카이브에 추가되어야 할 일은 계속되었다. 미투 이후 연극계의 모습을 반성하고 톺아보는 긍정적 의미의 행사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많은 것은 끊이지 않는 가해와 과거 가해자들의 반성 없는 복귀였다. 하지만 동시에 알게 된 것은, 사건에는 항상 대응과 연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8년에 걸친 수많은 사건들을 기록하는 동안, 그 사건의 피해자들을 혼자 두지는 않겠다는 동료들과 관객들의 의지를 발견했다. 연극계를 넘어 문화 예술계의 다른 주체들이 연대했고, 관객들은 그러한 움직임을 지지해 주었다. 미투 이후 내가 겪은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2018년 관객들이 열었던 #withyou 집회이다. 그것은 창작자와 함께 연극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또 다른 주체인 관객들이 우리의 움직임에 힘을 실어준 순간이었다. 그렇게 미투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연대의 재발견이기도 했다.
연극계 미투 운동 아카이브는 기사화 혹은 공론화 된 사건과 공식적인 매체/행사를 통해 공개된 자료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공론화 되지 않은 가해는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공론화되지 않은 곳에서도 폭력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아카이브 만으로 연극계 전반에서 벌어지는 일의 양상을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사건과 그 대응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봄으로써, 피해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고 있으며 연극계가 그러한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카이브 개설 이후 미투 가해자가 이름을 바꿔 복귀하려는 시도가 있었을 때 아카이브의 자료를 이용하여 과거의 사건과 가해자 복귀의 정보를 연결하기도 했다. 결국 가해자의 복귀는 무산되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
우리에게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이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K교수의 위계 폭력과 학생 고소는 아직 진행 중이고, 여전히 성폭력 가해자들이 반성 없이 연극계에 복귀하고 있으며, 백래시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그간 연극계가 해 온 자정의 노력들을 없던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이전의 경험을 통해 배운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는 틀림 없이 연대할 것이라는 사실이며, 연극계를 더 안전하고 평등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연극계 미투 운동 아카이브는 그러한 노력들이 있었음을, 그러므로 누구도 혼자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다. 거센 백래시의 가운데서도, 때로는 뒷걸음질 치고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앞으로 올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노력이다.
장지영
드라마터그.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