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연
라이카 와, 이게 바로 나를 위해 쓴 한 편의 글이군요. 누가 이 글을 소리 내어 말하게 될까요, 이왕이면 잘 좀 하고 매력도 좀 있고 인지도도 좀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네요.
사이. 무엇인가를 듣는다.
음악이 흐른다. 추상적 차원의 실체 없는 고통. 그 공간에서 벨카와 스트렐카가 만난다.
-구자혜, <로드킬 인 더 씨어터> 중에서
사이. 무엇인가를 듣는다. 그 ‘무엇인가’는 무엇인가. ‘사이’는 무엇과 무엇의 사이인가. 그리고 그 무엇인가를 듣는 이는 누구인가. 지문 한 줄의 형태로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말을 건 이는 누구였을까. 라이카? 라이카 역을 맡은 잡종 개 라이카? 라이카 역을 맡은 잡종 개 라이카가 등장하는 희곡을 쓴 작가? 라이카 역을 맡은 잡종 개 라이카가 등장하는 희곡에서 라이카 역을 맡은 잡종 개 라이카 역을 맡아 연기하는 배우, 그러니까 ‘사이, 무엇인가를 듣는다’의 순간에 막 도착한 나?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서 라이카 역할을 맡았었다. 라이카. 최초로 우주를 비행한 포유류로 알려진 개 라이카. 그러나 희곡에서도 말하듯, “라이카는 그저 그 개가 속한 종의 이름이었을 뿐. 실제 그 잡종 개의 이름은 쿠드랴프카.”(27)이다. 그렇다고 내가 연기한 배역이 특정적인 그 개 쿠드랴프카였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그 공연에서 개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질문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엄밀히 말해 내가 연기한 것은 그 개 자체가 아니라 그 개에 대해 작가가 쓴 ‘말’이었다고 대답한다. 물론 인간 배우로서 동물 배역을 연기할 때 가져야 할 태도와 그 태도를 반영한 연기에 대해 깊이 고민한 것은 사실이다. 그 고민을 전제로 삼아 라이카에 대해, 어떤 동물들의 고통과 죽음에 대해, 그 구체적인 고통이 인간의 예술이 되어버리는 일에 대해 쓴 작가의 말을 연기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그 말들의 통로가 되고 싶었다. 나라는 특징으로 가득한 통로를 거쳐 나온 말들이, 극장에 잠시라도 어떤 진동과 어떤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의 제목은 라이카의 대사를 차용한 문장이다. 라이카는 말한다.
“이거 좀 쑥스러운 (영업) 비밀인데, 가끔 혀 집어넣는 거 까먹은 거처럼 굴 때가 있었는데, 사실 그럴수록 아이들이 귀여워해 줘서 그런 거였어.”(35)
이거 좀 쑥스러운 (영업) 비밀인데, 언제부턴가 나는 발화를 염두에 두고 글을 읽을 때면 글 안에 있는 공간을 읽으려고 하는 편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공간,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간, 단어와 조사 사이의 공간, 자음과 모음 사이의 공간, 한 단어 안에 포개져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공간, 잠시 언어의 모양이 된 질서들 사이의 무질서. 또 다른 (영업) 비밀인데, 연기할 때 종종 ‘사이’라는 지문을 ‘공간’이라는 말로 바꿔서 생각하곤 한다. 말과 말 사이의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그런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항상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공간을 연기로 어떻게 표현할 작정인지 누군가가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다만 말과 말 사이의 결정되지 않은 에너지의 흐름에 놓여보는 일이나 이미 발화된 말들의 운동성이 말하지 않는 동안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느껴보는 일, 다시 말해 불안한 진동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해지는 표현이라 즐겨 사용한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의 요란한 교실에 갑작스럽고 짧은 정적이 생길 때가 있었다. 각자의 속도로 시끄럽게 말하고 있는 모든 사람의 호흡이 우연히 맞아떨어져, 잠깐의 침묵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갈 때. 그럴 때면 시간과 공간이 살짝 흔들리는 것만 같은 미세한 진동이 생기곤 했다. 우리 학교에는 즐거운 괴담이 있었다. 그 정적의 순간,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오른손을 들면 다 같이 4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원래 우리 학교에는 2학년 11반이 있었는데, 다 같이 4차원으로 넘어가 버린 바람에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우리는 4차원으로 가고 싶어 그럴 때마다 열심히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꼭 한두 명이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진짜 4차원으로 가지는 못했고, 4차원의 예고편처럼 느껴지는 그 기이한 진동만을 종종 경험할 수 있었다. 기이한 진동의 공간. 연극에서의 ‘사이’란 나에게 어쩌면 다른 차원을 언뜻 상상하게 하는 개념이며, 나를 떨리게 하는 기이한 진동의 공간이다.
사이. 무엇인가를 듣는다.
이 지문 한 줄의 형태로 누군가가 내게 건넨 말은, 한 줄짜리 말이 아니었다. 여러 존재가 동시에 쏟아낸 질문들. 말을 거는 주체도 하나가 아니었으며 그 말을 듣는 나도 고정된 하나의 주체는 아니었다.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서 라이카는 라이카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러 차례 주어를 바꾼다. ‘나’ ‘개’ ‘나, 라이카’ ‘나, 개’ ‘그 개’ 등등. 주어도 입장도 태도도 고정되어 있지 않은 그 존재의 말을 여러 방식으로 발화하며 통과한 그 순간의 내가, 익히 아는 익숙한 모습으로 고정된 ‘나’이기는 어려웠다. 나는 무대 공간을 떠도는 파편들이 된 감각으로 그 지문의 순간에 도달하곤 했다.
희곡 속 라이카는 라이카의 위상을 스스로 이렇게 저렇게 조정한다. 공연 중 나는 라이카가 라이카에 대해 말하며 취하는 여러 전략을 더 더 더 밀거나 살짝 빼거나 말값 그대로 따라가거나 동시에 여러 전략을 사용하는 등 배우로서의 전략을 조심스레 덧입혀 라이카의 의도를 겹겹이 발화하려 애썼다. 라이카와 함께 쉴 새 없이 중심점을 바꿔가며 말했다. 무엇보다 라이카 역을 맡은 잡종 개 라이카 역을 맡은 인간 배우로서, 라이카는 도착했지만 나는 결코 도착할 수 없는 공간을, 라이카는 해도 되는 농담이지만 나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농담을, 그러니까 우리 사이를 구분하는 힘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운용하던 많은 요소가 얽혀, 또는 어긋나 나와 배역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 것처럼 느껴진 순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독백, ‘모스크바 길거리를 헤매던 잡종 개 라이카의 성공 스토리’라는 긴 독백은 낭만적 상태가 허용되게끔 쓰인 글이 아니었다. 라이카는 나를 불안한 진동의 공간, 수없이 많은 말들의 운동성이 흐르는 공간, 가끔 다른 차원을 얼핏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사이. 무엇인가를 듣는다.
그래서 그 순간, 긴 독백이 거의 끝나갈 무렵 만나게 된 그 짧은 ‘사이’의 순간, 나, 라이카 역할을 맡은 라이카 혹은 그 역을 수행한 배우의 조각들은 무엇을 들었는가. 무대 어디선가 작게 들리는 위이잉 위이잉 소리, 5초 전에 내가 발화한 문장의 여음, 그 문장의 의미로 인해 발생하는 아득한 감정, ‘벨카와 스트렐카’ 역할로 무대에 있는 동료 배우 최순진의 옷자락이 흔들리는 소리, 사진으로 본 그 개 라이카의 모습에서 자연히 연상되곤 했던 로켓 발사 소리, 몇십 마리의 개들이 동시에 짖는 소리, 동시에 떠오르는 여러 얼굴. 동시에 떠오르는 여러 질문. 이 글을 소리 내어 말한 당신은 누구였나요. 누구로서 무대에 서 있었나요. 당신은 구체적이었나요. 당신은 추상적이었나요. 객석에는 누가 있었나요. 당신은 어떤 거리에 있었나요. 너무 멀지는 않았나요. 너무 가깝지는 않았나요. 나보다 네가 더 힘들지는 않았나요. 너의 땀이 나의 땀을 가려버리는 결과를 가져오진 않았나요. 가끔 뭔가를 까먹은 거처럼 굴지는 않았나요. 어떤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요. 어떤 공간을 보지 못하게 하고 싶었던 건가요. 의도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하세요. 통로였나요, 당신은. 당신은 정말로, 정말로 소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나요.
공연 중 갑자기 자의식이 들어 내가 연기를 어떻게 했는지 되짚는 순간이었다는 의미가 절대 절대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과 고통을 연극으로 만드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연극의 무대 위에서 이러한 생각을 듣는 일은, 그 시점의 ‘사이’에 마땅히 가능한 행동이었으며, 정확하게 설계된 연기의 단위였다고 77%쯤 확신한다. 라이카의 긴 독백은 이렇게 끝난다.
라이카 아, 어, 저건, 뭐지? 어? 뭐지, 저건, 아.
아, 저건 (잡종) 개야. 분명 우주선과 함께 타 버렸다고 들었는데. (38)
라이카 혹은 라이카 역을 맡은 잡종 개 라이카 혹은 라이카 역을 맡은 잡종 개 라이카 역을 맡은 성수연은 봐야 하는 것이다. 우주선과 함께 타 버린 줄 알았던 그 개 쿠드랴프카를. 자신이 맡아 연기한 바로 그 대상을. 그렇기에 그 마지막 대사의 직전에 있는 ‘사이’의 공간에서 리허설 기간 내내 숱하게 스스로 던졌던 질문들을 다시 새롭게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라이카도 라이카를 연기하는 배우도 아닌 채 어정쩡하게 무대와 객석 사이를 서성이며 대답한다. 모르겠어요. 사실 다 알 것도 같은데 비밀이에요. 앞으로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계속 말을 걸어 주세요.
사이, 무엇인가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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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출처: 구자혜, 『로드킬 인 더 씨어터』, 국립극단 희곡선5, 걷는사람, 2021.
**) 본문에서 인용한 문장은 모두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서 가져온 것이며 괄호 안의 숫자는 책의 쪽수다.
성수연
연기하고, 만들고, 쓰고, 가끔 연출도 합니다. 명명하기 어려운 진동 안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