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선

한국의 공공예술 정책은 매년 새로운 간판을 달고 등장한다. 신진예술가 지원, 국제교류 활성화, 예술·기술 융합, 도시 문화 브랜딩 등, 표면적으로는 모두 ‘생태계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생태계를 돌보는 대신 지속적으로 교란시키고 있다. 정책의 목적은 제각각이지만 그 안에는 공통된 구조적 문제가 있다. 예술가를 행정의 대상 집단으로 규정하고, 국가가 상상한 틀 안에서만 움직이도록 요구하며, 브랜딩 중심의 관료적 발상이 창작 현장의 자율성을 잠식하는 것이다.

매해 가을, 한국의 예술 생태계는 많은 국제 행사와 작품들로 북적인다. 공공 지원기관들은 다음 해를 위한 새로운 사업과 변경된 제도를 소개하며 잠시나마 ‘잘 돌아가는 생태계’의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가을 내내 지워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이 정책과 프로젝트들은 정말로 예술 생태계를 돌보고 있는가?” 겉으로는 다른 사례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두 같은 질문 ‘예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향한다.

미래 예술가를 위한 시대착오적 발상

서울문화재단이 신설한 ‘서울 커넥티드’는 예술대학 전공자의 역량을 실제 창작현장과 연결하겠다는 취지를 내세운다. 그러나 예술대학 전공자만을 ‘예비 예술가’로 규정한 출발점 자체가 협소하며, 동일한 학교·학과 출신으로만 팀을 구성해야 하고, 지도교수의 서명을 필수 조건으로 둔 방식은 2025년 정책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퇴행적이다. 이미 동시대 예술 생태계는 학교 밖에서도 다양한 경로로 예술가가 등장하고, 장르 간 이동과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정책은 이 흐름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구시대적 구조를 강화하며 예술가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위축시킨다. ‘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교수와 학생 사이의 위계를 다시 호출하는 방식은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예술의 경계를 넓히기는커녕 좁히는 구조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지속가능성

아마존 열대우림의 도시 벨렝에서 열린 최근 COP30에서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데 실패했음을 공식 선언했다. 공연예술계에서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시어터 그린북을 비롯한 여러 실천이 확산되고 있고, 지난달 홍콩에서는 한국·대만·일본·싱가포르·홍콩 등 아시아 지역의 실천이 공유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예술계의 공공영역에서 지속가능성 논의는 놀라울 만큼 미약하다. 코로나 시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연구사업을 진행했고,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아트코리아랩(Art Korea Lab, AKL)에서도 공연예술 분야 탄소 감축을 위한 2년간의 연구가 이뤄졌다. 그러나 정작 다음 행보나 실행을 위한 다음 해 예산은 배정되지 않았다. 연구는 ‘성과 보고서’로만 처리되고 정책 변화는 없었다. 결국 지속가능성을 논의하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정책’만 남았고, 탄소 감축을 위한 연구가 오히려 행정적 탄소만 추가로 배출했을 뿐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가능성은 단순 정책 의제가 아니라 예술계 구조 전환을 요구하는 중심 가치임에도, 공공기관은 변화를 현장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지속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정책적 욕망이 만들어낸 아트마켓과 페스티벌의 기능 혼종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는 국내 작품 공모를 중단했고, 서울아트마켓은 팜스초이스를 국내와 해외 유통을 분리해 운영했다. 두 변화 모두 사전 공유가 전혀 없었으며, 심지어 팜스초이스 공모는 다소 늦게 공개되었다. 국내용 팜스초이스는 아트마켓 종료 후 스파프 기간에 관객에게 소개되었지만, 국내/해외 유통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은 기준도 모호할 뿐 아니라 작품 간 불필요한 위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였다. 또, 스파프가 자체 국내 공모를 하지 않으면서, 축제를 통해 소개되는 한국 작품의 수 역시 크게 제한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마켓과 축제를 운영하는 동일 기관 내부에서 두 사업을 통합하려는 행정적 효율성과, 하나의 브랜딩 아래 묶어내려는 정책적 욕망이 자리한다. 2005년에 시작해 올해로 20년을 맞은 서울아트마켓은 예술과 시장의 결합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존재하던 시기에 출발했다. 이후 마켓은 단순한 해외 진출 창구를 넘어 다층적 협력과 교류가 일어나는 플랫폼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 팜스의 지향은 다시 초기의 ‘한국 작품 해외 수출’ 중심의 관점으로 회귀하는 듯 보이며, 운영의 외주화는 마켓 프로그램의 전문성을 약화시키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역시 지난 20년간 민간조직위원회, 예술위원회, 그리고 현재의 예술경영지원센터로 운영 주체가 여러 차례 이동했다. 이 변화들 역시 ‘효율성’을 명목으로 한 제도 통합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팜스와 스파프의 새로운 통합 단계가 시작된 듯 보인다.

그러나 통합을 논하기에 앞서 근본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예술감독을 계약직으로만 두고, 축제를 기획·운영할 전문 인력을 구조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국제 페스티벌을 운영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이 질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통합 시도는 또 다른 혼종과 혼란을 만들어낼 뿐이다.

어텀페스타와 브랜딩 행정의 포섭 구조

서울문화재단이 신설한 ‘어텀페스타’는 10–11월 서울에서 열리는 공연들을 하나의 브랜드로 묶는 방식이다. 이는 공연 활성화보다는 기관의 브랜드 강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서울예술상’과 같은 제도와 마찬가지로, 예술가와 작품을 재단의 바구니에 다시 정렬해 넣는 방식이다. 예술 생태계는 자연스러운 흐름, 다층적 관계, 자율성 속에서 구축된다. 그러나 브랜딩은 이 흐름을 행정적 언어로 덮어버리고, 기관 중심의 구조만 확장한다. 결국 브랜드 안에서 협력사업과 특정 작품들이 더 두드러지게 되며 홍보에서도 위계가 발생한다. 예술 도시는 예술가가 만드는 것이지, 기관의 브랜딩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외에도 생태계 교란 사례는 다수이다. 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의 K-GO 해외 우수 플랫폼 리스트는 전 세계 공연예술·시각예술 플랫폼을 ‘우수’라는 이름으로 서열화한 대표적 사례다. 2024년 현장에서 위계화의 문제와 폭력성이 지적되었음에도 정책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예술–기술 융합을 위한 실험실을 표방한 아트코리아랩(AKL)도 마찬가지다. AKL이 출범하자 아르코의 예술기술 창작지원사업은 돌연 중단되었고, AKL은 ‘제도화된 공공기관형 코워킹 스페이스’로 자리 잡았다. ‘랩’이라는 이름만 남고 실험과 혁신이 빠진 채, 또 하나의 제도적 틀로 변질된 것이다.

정책은 매년 새로운 프로젝트를 찍어내며 생태계를 활성화하겠다고 하지만, 생태계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생태계는 시간, 관계, 자율성, 지속적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다. 현재 정책은 생태계를 가꾸기보다, 해마다 새로운 구조를 던져 넣어 흐름을 끊고, 혼란을 만들고, 위계를 강화하며,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예술을 위한 정책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이미 존재하는 생태계의 방식과 흐름을 존중하고, 관찰하고, 조건을 제공하고, 필요할 때는 물러나는 태도가 필요하다.

생태계는 이름을 붙인다고 활성화되지 않는다. 스스로 자랄 수 있는 조건을 만들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박지선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공연예술 기획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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