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구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는데, 너무 먼 얘기처럼 느껴질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나고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말했다. 그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곱씹어 보는 모양이었다. 기후 위기 시대 미래의 우리들 처지가 사실 노아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했던 말이, 노아가 살아오는 동안 겪어야 했던 고통을 지우는 말이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모양이었다. 실은 나도, 괜한 질문을 한 게 아닐까 후회하며 걷고 있던 터였다.

그냥 조용히 듣기만 할 걸, 괜한 질문을 했다. 1부 공연을 보는 내내 차올랐던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2부 대화가 시작되자마자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노아가 외국인이 아니라, 태어난 시점에서 이미, 대한민국 국민이었음을 확인하는 헌법소원을 검토해 보신 적이 있나요?”

<노아의 나라> – ‘나라란 무엇이며, ‘국민은 무엇인가

서울변방연극제에서 <노아의 나라>1를 한다기에 나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이야기를 다시 해석한 이야기가 나오려나 생각하고 극장에 갔다. 그런데 노아는 대본을 쓴 작가의 이름이었다. 그는 미등록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이제껏 한국에서 살았다. ‘모어’인 한국어로 글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글로 돈을 벌면서 생활하고 싶은 꿈을 지닌 젊은 작가였다. <노아의 나라>는 그가 쓴 자기 이야기였고,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꿈꾸는 나라를 그린 이 작품으로 극작가로 데뷔한 것이다.

무대 가운데에 테이블 하나가 있을 뿐 특별한 무대 장치 같은 것은 없었고, 조명과 음향으로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정도의 연출에, 한국인 배우 양대은이 연대기로 서술된 모놀로그를 중심으로 노아를 잘 재현했고, 일부 장면에서 작가가 상대역으로 잠깐 출연하여 재현의 ‘당사자’를 보여주었다.

이야기는 노아의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인 현재까지를 연대기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의 ‘줄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자랐으나, 부모의 혈통에 따라 국적을 부여하는 속인주의(혈통주의) 국적법 원칙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노아가 5살 때 ‘불법체류자’였던 아버지가 체불 임금을 주지 않는 사장에게 항의하자, 사장은 아버지를 신고하여 강제추방되도록 했다. 그렇게 어린 노아는 역시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인 어머니와 한국에 남게 되었다.

노아가 17살 때, “한국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국내 체류하고 국내 중,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우”를 대상으로 한 ‘국내 출생 불법 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 대책’에 따라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해 심사를 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들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숨어 지내던 어머니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되었고, 결국 어머니는 추방에 이르게 되었다. 노아의 이야기는,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노아가 희곡이나 연극 장르를 더 잘 알아서, 훨씬 더 ‘극적’인 플롯을 구사하였다 하더라도 이 질문이 던진 무게에 무엇을 더 얹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됨은 누가, 어떻게 승인하는가

부모가 미등록 체류자라고는 하지만, 노아는 대한민국 영토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면서 살았고,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UN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까지 진학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까지 대한민국 국적 부여를 거부하는 국적법 2조라면, 이 법이 헌법에 합치된다고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이 되려면 당연히 출생 당시에 부(父) 또는 모(母)가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건 국적법 2조가 그렇게 정하고 있는 거고, 헌법 2조 ①항은 그저,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라고만 되어 있다. 그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을 정한 법률이 ‘국적법’이다. 그러니까 ‘관객과의 대화’에서 내가 던진 질문은, 대한민국 영토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에서 부모가 모두 미등록 외국인인 경우, 구체적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국적 부여를 거부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헌법 제37조 ②항 단서)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평등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헌법재판소에 질문해 보자는 것이었다.

국적법 2조가 대한민국 영토에서 태어난 아이 중, ① 부모가 분명하지 않거나 ② 국적이 없는 경우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고, 대한민국 영토에서 발견된 기아(棄兒)의 경우,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하여 혈통주의(속인주의)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노아의 경우와 소위 ‘원정 출산’의 경우를 동일하게 볼 수 있을까.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하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미등록 외국인 자녀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대한민국 국적 부여를 거부하는 국적법 2조가, 여전히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질문을 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급히 찾아본 결과 국적과 관련한 헌법소원은 이중 국적과 관련된 경우가 많았고, 노아의 경우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지위를 확인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는 사례를 찾지는 못했다. 그러니 아마도 노아는 애초에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청구인 적격’부터 없다며 각하 당할 수도 있겠지만,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한 번 구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인데, 괜한 소릴 했다는 자책을 하며 영등포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 얘기하는 거야 얼마나 쉽나.

그런 소송을 냈다가 도리어 표적이 될지도 모르지.

단속이 더 심해져 다른 ‘불법’ 체류자들에게 돌멩이가 날아갈지도 모르지.

국적법탄생의 뒷이야기

식민지 36년 동안 국내외를 떠돌던 조선인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며 가장 서둘러 만들어야 했던 법 중 하나가 국적법이었다. 1948년 5월 11일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미군정의 요청에 따라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를 제정하여 국적법이 제정(동년 12월 20일)될 때까지 적용했는데, 이 임시조례의 당면 목적은 뜻밖에도 적성재산(敵性財産, vested property)을 몰수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몰수의 대상이 되는 일본 ‘국적’을 명확하게 할 필요에 있었다.2

이 임시조례 제5조는 당시 ‘대한민국 국민’이 된다는 것이 필요에 따라 얼마나 편의적으로 결정될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제5조 – 외국의 국적 또는 일본의 호적을 취득한 자가 그 국적을 포기하거나 일본의 호적을 이탈한 자는 단기 4278년 8월 9일 이전에 조선의 국적을 회복한 것으로 간주함.” 그러니까 임시조례가 시행된 1948년 5월 11일 이후 일본 호적에서 이탈한 자는, (미군정이 소위 ‘적성재산’을 몰수하는 기준일로 정한) 1945년 8월 9일 이전부터 조선국적자인 것으로 간주하여 그의 재산은 몰수 대상인 ‘적성재산’에서 제외하도록 하였던 것이다.3

임시조례를 바탕으로 국적법을 제정하는 과정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1948년 12월 20일 국적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대한민국 국민’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법 제정 과정에서 ‘최초 한국인’의 경계를 어디로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한인’으로 하자는 수정안과 경쟁한 끝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표현이 국적법에 자리 잡게 되었다.4

그런데 단일민족의 특성을 보존하기 위해 부계혈통주의(속인주의)를 기본으로 채택한 국적법이 출생지주의(속지주의)를 병행하기로 하였던 까닭은 다시 한번 귀 기울여볼 만하다. “완전히 혈통주의만 한다고 할 것 같으면 現下 만국과 통상하고 교통하는 이런 때에 너무 편협하지 않을까 해서… 속지주의를 가미한 것입니다.”5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말이다.

국적법이 제정된 지 80년이 다가오고, 국내 체류 외국인이 270만 명이나 되는, 만국과 통상하고 교통하는 이런 시대에, 노아의 경우에까지 대한민국 국적 부여를 거부하는 국적법 2조는 너무 편협하지 않은지? 노아의 경우라면 속지주의를 가미해서 해석해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닌지? 이렇게 한 번 물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 ‘국적법을 다시 묻는다.

“그런 게 결국은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을 더 강화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겠지.” 옆에서 걷던 그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세계시민을 지향해야 할 시대에, 수많은 ‘불법체류자’들 중에서 노아의 경우만을 떼어서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후 기적같이 승소한다고 한들 그게 그리 대단한 일일까. 그러나 한편 혈통주의에 작은 틈을 내는 일이 될지도 모르지.

공연을 보는데 어느 순간 비가 내렸다. 처음에는 음향인 줄 알았는데, 물방울 듣는 소리가 바깥에서 내리는 비였다. 성서의 방주 속 살아남은 노아들은 바깥에서 들리는 빗소리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상의 모든 생명이 쓸려가고, 신에게 선택받아 살아남은 그들이 꿈꾼 ‘노아의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른 사람’의 현실이 은유로 바뀌느라 공연은 내게서 자주 끊어졌다. 사실 무대 위에서 내가 만난 사람은 돈이었다. 머니가 아니라 사람 이름 돈.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IMF 구제금융 사태가 한국을 휩쓸었을 무렵 나는 우연히 그를 만났고,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이지만 같은 집에서 살았다.

신체 건강한 그는 공사현장에서 인정받는 조공이었다. 워낙 힘이 좋고 일까지 잘하는 데다, 성격까지 좋아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다녔다. 나는 그와 가까워진 탓에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온 그의 친구들과도 만나, 그들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고 치맥을 함께 먹기도 했다. 주변에 합법적 체류 기간을 넘기고도 돌아가지 않기로 한, ‘불법체류자’들이 참 많을 때였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단속’이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잡혀갔는데 돈만은 논두렁으로 도망쳤다고만 들었다. 그 뒤로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3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무심하게도 살았지.

굳이 손을 들고 책임질 수 없는 질문까지 해본 것은, 아마도 그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내가 만났던 친구 중 누군가 비슷한 처지의 사람과 결혼을 하고, 자녀가 태어나고 자랐다면, 내가 어떻게 그 아이가 한국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나.

기왕 인용한 위 책은 1343년 영국 의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외국에서 출생한 자녀들이 토지를 상속하는데서 겪는 어려움’에 관한 법적 해결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 100년 전쟁 중이었고, 영국 귀족과 용병들이 바다 건너, ‘국왕의 지배영역 바깥’인 프랑스 땅에서 식솔들을 데리고 참전 중 태어나는 아이들의 ‘상속능력’이 문제 되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고서 전쟁에 계속 참여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문제는 결국 본래 ‘영국 왕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리적 범위’를 뜻하는 ‘ligeance’(주로 법률 용어로, 관할권을 의미하는 ‘영토’라는 뜻)의 의미가, 지리적 개념을 뛰어넘어 (국왕에 대한) ‘충성과 신뢰의 유대관계’를 지칭하는 용어로 바뀌는 방식으로, 해외에서 출생한 자녀의 상속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6

요컨대 법적 개념이란 것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법이란 것도 변화한 현실에 맞게 수정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노아는 외국인이 아니라, 출생 당시부터 한국인이었음을 요즘 신뢰가 높아진 헌법재판소에 물어보면 어떨까, 공연을 보는 동안 들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어버렸던 것이다.

나라를 잃고 떠돌던 사람들이 36년 만에 다시 국가를 세울 때 정립했던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법적 관념 혹은 법감정이 80년이 다 되도록 그대로 있는지, 아니면 이제는 변했다고 봐야 하는지? 나는 노아가 우리 사이에서 한 번도 외국인이었던 적은 없다는 감정이 들던데, 나만 그런 건지.

*) 이 글의 제목은 극작가 막스 프리쉬의 ‘노동력을 데려왔더니 사람이 왔다’는 말을 바꾼 것이다.

이양구

제목이 너무 익숙해서 읽은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던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쓰고 연출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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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 서울변방연극제 참가작.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 제람×노아 <노아의 나라>. 2025. 9. 6~7. ↩︎
  2. 명순구·이철우·김기창. 『국적과 법, 그 기원과 미래』.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2009, 42쪽. ↩︎
  3. 같은 책, 44~46쪽. ↩︎
  4. 같은 책, 56쪽. ↩︎
  5. 같은 책, 59쪽. 재인용. 제1회 국회속기록. 제118호. 국회사무처. 1948. 12. 1. 1149면. ↩︎
  6. 같은 책, 22~2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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