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주

2018년 2월 연극계 미투 운동은 가해자와 그의 폭력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묵과했던 많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가해자들이 사라진 뒤1 연극인들은 안전한 창작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술성과 창작자의 윤리성은 별개’라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며, 가해자들을 옹호하고 무대에 복귀시키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2 과연 작품과 창작자는 개별적으로 봐야 하는지, 피해자들의 상처는 치유되었는지, 안전한 교육, 창작 환경이란 어떻게 실천이 가능한지, 법적 책임과 사과나 반성이 같은 의미인지, 개별 프로덕션뿐만 아니라 공공 극장에서는 어떤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지, 우리 내부에 오히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우리가 ‘예술적’이라며 연극사에 기입해 놓은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려 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알면서도 묵과해 온, 비판하면서도 그 나름의 의미와 작품성을 찾아주려 노력했던, 혹은 그저 찬사를 해온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다시 보려 한다.3 한때 ‘거장’으로 불렸으나 성폭력 가해자로 드러난 이윤택이 연출한 <햄릿>은 이 글에서 다시 읽을 ‘불편한’ 텍스트다.4

이윤택은 자기 작품에 “원작의 순수성”5을 담았다는 자신감을 표현한다.6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달리 이윤택의 <햄릿>은 여성 캐릭터의 ‘처녀성’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며 여러 문제를 드러낸다. 이 글에서는 ‘처녀 선망(virgin envy)’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 작품의 여성 혐오적 맥락을 파헤친다. 처녀 선망은 프로이트의 ‘남근 선망(penis envy)’에서 따온 용어로 간단하게는 ‘처녀성에 대한 환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7 사회에 따라 정도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순결한 처녀에 대한 환상이 있으며 성에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일수록 순결한 처녀에 대한 선망은 더 높게 나타난다. 여성 순결에 집착하는 경향은 부계 중심의 혈통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남성들의 혈통 확인 욕망과 부와 명예를 유지하려는 불안에서 비롯된다. 이 개념은 이윤택의 <햄릿>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8

전쟁 대신 치정, 남근 중심의 ‘연극 만세!’

셰익스피어의 원작 <햄릿>은 덴마크 왕국을 둘러싼 국내외의 정치적 음모와 전쟁의 위협 속에서 펼쳐지는 비극이다. 원작 1막 1장은 보초병들의 대화로 시작되며, 선왕의 유령 출몰과 노르웨이 왕자 포틴브라스의 진군 소식이 동시에 전해진다. 이런 국가적 위기라는 배경은 극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처럼 햄릿의 고뇌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부패한 국가와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이윤택의 <햄릿>은 이 모든 배경을 단칼에 잘라낸다. 전쟁과 정치적 갈등은 최소화하고, 햄릿 왕가 내부의 갈등, 특히 클로디어스와 햄릿이라는 두 남성 사이의 경쟁에 집중한다.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와 연인인 오필리어의 처녀성은 작품의 핵심 갈등요소다. 원작에서 거트루드의 재혼은 복잡한 정치적 의미를 띠지만, 이윤택의 무대에서 그는 단순히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윤택의 <햄릿>은 선왕의 장례와 클로디어스-거트루드의 결혼식을 한 무대에서 연이어 보여준다. 이는 장례식의 눈물이 미처 마르기도 전에 결혼식의 기쁨으로 넘치는 거트루드의 비도덕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연출이다. 붉은 드레스와 조명,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몸짓은 그의 음탕함을 강조하고, 클로디어스와 선왕 유령을 같은 배우가 맡아 햄릿이 클로디어스의 아들이라는 암시를 강화한다. 이렇게 되면 햄릿은 혼외자가 되고. 그의 복수 동기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원한에서 어머니의 정절 훼손에 대한 분노로 변질된다.

정치적 서사가 지워진 자리에 남은 건 남성들이 여성의 성을 두고 벌이는 경쟁이다. 클로디어스와 햄릿은 왕위가 아니라 거트루드와 오필리어의 순결을 두고 다투며, 햄릿의 광기와 살인은 거트루드와 오필리어의 처녀성에 대한 집착으로 설명된다. 이윤택은 “연극 만세!”를 외치며 정치적 맥락을 무화시키고 연극적 유희를 강조하는데, 그 과정에서 작품은 순결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치정극으로 변질되고 만다. 더 문제는 이 작품에서 여성은 그저 성적 존재로만 그려진다는 점이다. 무대 중앙 파여 있는 무덤부터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며,9 (남근의 상징인) 햄릿이 무덤을 들고 나며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연출을 보여준다. 결국 무대 전체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거대한 은유로 작동하며, 여성은 이야기의 주체가 아니라 남성 서사의 배경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뒤틀린 혈통과 뒤틀린 복수

이윤택 연출의 <햄릿>에서 클로디어스는 “난 네 아비다, 햄릿. 널 사랑하는 네 아비.”라며 자기가 햄릿의 친부임을 알린다. 거트루드와 불륜 관계였던 것이다. 햄릿은 이와 같은 출생의 비밀에 혼란스러워하며 어머니의 성적 부도덕함을 책망한다. 처녀성에 대한 오랜 역사적 관심은 친자 관계 확인 욕망에서 발현되었다.10 햄릿에게 어머니의 처녀성이 누구에 의해 훼손되었는가가 자기 아버지를 확인하고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데 중요한 문제다. 만약 자기 아버지가 클로디어스라면 햄릿의 존재는 부정의 증거가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그는 점차 폭주한다. 이쯤되면 선왕의 복수에 과연 뜻이 있는지, 정숙하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비난과 처벌이 목적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햄릿의 광기는 어머니의 침실에서 극에 달한다. 무대 위에서 햄릿은 어머니에게 “더러운 여자!”라고 외치며 노골적인 성적 폭력을 가한다. 어머니를 침대에 눕히고 바지를 내리며 강간을 시도하는 연출은 보는 이에게 충격을 준다. 근친상간은 “가부장적 권력의 남용”이며 “자신을 도덕적 질서의 수호자로 내세우는 남성들에 의해 자행된다.”11라고 할 때, 이 장면은 햄릿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듯이 가부장적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어머니의 몸과 순결을 단속하려는 행위로 읽힌다. 이처럼 이윤택은 햄릿의 복수 동기를 정치적, 사회적 목적이 아니라 여성의 순결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으로 바꿔놓는다. 햄릿의 이러한 행위는 거트루드의 이전(/현) 소유권자인 선왕(/의 모습을 한 클로디어스)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멈춘다. 폴로니우스에 이어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까지 살해한 이윤택의 햄릿은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단지 증오에 사로잡힌 살인자의 형상으로 남는다.

순결이라는 이름 아래 파괴된 여성들

오필리어는 이윤택의 연극에서 가장 처참하게 희생된 인물이다. 원작에서 그의 광기와 죽음은 아버지의 죽음, 햄릿의 배신, 오빠의 부재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윤택 연출은 클로디어스와 오필리어의 성관계 장면을 삽입하며 그의 비극적 운명을 오직 ‘처녀성 상실’ 때문으로 만든다.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우스는 처녀인 딸을 어디에 파는 게 유리한지 저울질하고, 클로디어스와 오필리어가 동침하는 그 옆에서 수발을 드는 등 딸을 상납하는 추악한 포주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연출은 오필리어라는 인물을 오직 남성들의 욕망과 경쟁에 희생되는 ‘도구’로 전락시킨다. 그는 생각과 감정을 가진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남성들의 관계를 공고히 하거나 갈등을 증폭시키는 ‘상품’으로 다뤄진다.

클로디어스와 오필리어의 (강간으로 보이는) 육체적 관계와 오버랩되는 햄릿의 존재론적 독백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는 어머니에 이어 연인까지 클로디어스에게 빼앗긴, 성적 경쟁에서 패배한 남성의 치졸한 자기 연민으로 읽히게 된다. 이는 <햄릿> 원작 및 이윤택의 의도에서도 벗어나는 해석으로 이 작품의 일종의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윤택은 오필리어의 “백치미”와 방탕함을 언급하며12 그를 성녀와 창녀의 이중적인 모습으로 해석한다. 이윤택에게 성녀와 창녀, 순결함과 방탕함은 반의어가 아니라 동의어이다. 여성을 오직 성적인 존재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결국 오필리어의 광기와 죽음은 클로디어스에게 순결을 빼앗기고 햄릿에게 버림받은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햄릿의 “수녀원으로 가!”라는 외침 이후, 흰 옷을 입은 오필리어와 붉은 옷을 입은 거트루드가 한 무대에 빛과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이 연출은 두 여성이 결국 ‘성적 존재’라는 동일한 본질을 가진다는 이윤택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되돌아보아야 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찬사

이윤택의 <햄릿> 각색은 원작의 구조까지 흔들어 놓는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햄릿의 실존적 고뇌 뒤에 정치적 음모와 세대 교체의 비극을 담고 있지만, 이윤택의 무대에서는 여성의 순결에 대한 의심과 집착이 모든 행위의 동기가 된다. 그 결과 비극적 주인공 햄릿은 여성의 처녀성에 집착한 폭력적 남성으로 축소되고, 작품은 삼각관계의 치정극이 되어버린다. 문제는 이런 연출가의 상상력이 1990년대 연극계의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여성 연극’이 힘을 얻던 시기를 지나, ‘남성 연극’의 부활을 찬양하던 백래시 속에서 이윤택의 <햄릿>은 남성성의 위기와 남성을 위협하는 현대의 여성성을 드러낸 무대로 호평을 받았다.13 그 시대의 성차별적 인식을 잘 드러낸 셈이다.

과거의 평론들은 이 작품에 드러난 여성 혐오를 지적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훌륭하다는 식으로 마무리했다.14 그런 선택적 눈감기가 바로 그를 ‘거장’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때의 평론가와 연구자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여전히 그의 작품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느냐고.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 뒤에 숨겨졌던 불편한 진실들을 직시해야 한다. 이윤택의 <햄릿>은 단지 한 연출가의 일탈이 아니라, 연극계가 여성 인물을 어떻게 축소하고 대상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오필리어와 거트루드가 단순히 순결과 타락의 이분법 속에서만 존재하는 무대, 여성 캐릭터가 남성 간 갈등의 매개로만 소모되는 무대는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다.

이 작품을 다시 꺼낸 것은 단순히 이윤택 개인을 단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연극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여기까지 왔는지를 성찰하기 위해서다. 1980~90년대 여성 연극의 부흥, 연극계의 백래시, 그리고 오늘날 페미니즘 리부트와 미투 운동 이후 이어지는 가해자의 복귀 시도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재독해다. 우리가 무심코 찬양했던 ‘거장’의 무대가 사실은 얼마나 기울어져 있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이윤택의 <햄릿>은 우리 연극계와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여성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그런 과거를 똑바로 마주하고 앞으로 어떤 무대를 만들어갈 것인지 선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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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유연주의 논문 「이윤택 <햄릿>의 처녀 선망과 여성 혐오」(『철학·사상·문화』 45, 동국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2024, 261~282쪽)를 요약·재구성한 것이다. 논문은 아래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099643>

유연주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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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실 가해자들은 한순간도 사라진 적이 없다. 이름을 지우든 바꾸든 해서라도 계속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피해자를 겁박하든 그와 합의하든 하여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가해자들은 죄책감 없이 너무나 잘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웹진 ACTiO가 던졌던 질문, “연극공동체가 수용할 수 있는 가해자의 복귀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복귀는 우리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문제는 그들의 복귀로 인해 창작환경이 다시 안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2. 2024년 ‘<두 메데아> 사태’로 불린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였던 김소희가 주연 배우로, 부산 한 ‘교육 극단’ 대표이자 단원들을 대상으로 다수의 성범죄를 벌여 피의자 조사를 받고 있는 안OO이 그래픽디자이너로 <두 메데아> 공연에 참여하는 문제를 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연극인과 관객들은 ‘보이콧운동’을 벌였고 이는 공연 취소로 이어졌다. 2024년 3월 연극인과 관객들은 이런 움직임을 ‘백래시’로 규정하고 ‘대학로X포럼’을 기획하여 논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포럼에서 확인한 것은 여전히 가해자들은 반성하지 않고, 함께 하는 창작자들을 힘들게 만드는 존재라는 것이다. 대학로X포럼 참여자들은 ‘연극계 미투운동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미투 운동의 의의를 잊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아카이브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s://metoo-theater.tistory.com>
    ↩︎
  3. 그동안 그런 실천적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먼저 무용, 문학, 영화, TV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여성신문』의 연재 칼럼 ‘기울어진 극장’, 연극비평집단 시선의 기획 ‘삐딱한 시선’, 윤단우와 ‘허사이트’의 비평 작업 등이 있다. 이들은 문화 예술 작품을 비판적으로 다시 들여다보며 페미니즘적 독해를 시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편 창작자들의 비판적 작품도 무대에 오르고 있는데 윤상은 안무·출연의 <죽는 장면>(2018~2020), 이오진 작·연출의 <콜타임>(2022)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죽는 장면>은 18~19세기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발레 작품 중에서도 현재 지속적으로 공연되는 작품에서 사랑 때문에 미치고 결국 죽어버리는 여성 주인공들을 탐색한다. <콜타임>은 오태석의 작품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패러디를 통해 기존 남성 중심적, 위계적인 연극계의 관행을 비판한다. 이런 활동이 계속 이어져야 하며 이 글도 그 연장선에 있다. 윤단우 외, 『여성신문』, 2017.08.30.~2018.12.13.; 연극비평집단 시선, 『월간 시선』 19~39호, 연극비평집단 시선, 2019.02.21.~2020.12.31.; 연극비평집단 시선, 『우리가 선택한 좌석입니다』, 1도씨, 2020.; 윤단우, 『기울어진 무대 위 여성들』, 허사이트, 2021.; 윤단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 허사이트, 2024.
    ↩︎
  4. 이윤택은 <햄릿>을 1996년 초연 이후 꾸준히 반복 공연하고 여러 번에 걸쳐 대본과 연출론을 출판하면서 자기의 대표작이자 연희단거리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매김시켰다.
    ↩︎
  5. 이윤택, 「연출가의 입장에서 본 셰익스피어 극의 번역 문제」, 『연극』 7, 2014, 68쪽.
    ↩︎
  6. 이윤택의 <햄릿>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꼽히는 것이 이윤택의 창작이 아님을 밝힌 이영미의 평론이 있다. 이 평론에서는 오필리어의 장례식 장면, 클로디어스와 오필리어의 간통 설정은 <마로위츠 햄릿>에서, 오필리어와 레어티즈의 근친 관계로 설정한 것은 조광화 작 <오필리어>에서 이미 제시된 부분이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확실히 이 작품은 이윤택의 순수 창작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영미의 논의에 충분히 동의하면서도 이 글은 부분적인 장면 차용을 거쳐 완성된 이윤택의 작품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여성 혐오의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영미, 「<마로위츠 햄릿>을 보면서 이윤택 <햄릿>을 생각한다」, 『뉴미디어저널』, 1997년 2월호;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 『’90년대 연극평론 자료집(V)』, 평민사, 1999 참조. ↩︎
  7. 조너선 앨런·크리스티나 산토스·아드리아나 슈파르, 이혜경 옮김, 「처녀선망: “우리를 애태우는 처녀의 이중성”」, 『우리는 처녀성이 불편합니다』, 책세상, 2019, 10~13쪽 참조.
    ↩︎
  8. <햄릿>의 공연은 ‘Asian Shakespeare Intercultural Archive(A|S|I|A)’ 웹사이트(http://a-s-i-a-web.org)에 올려진 2009년 버전을, 대본은 『햄릿과 마주보다』(도요, 2010)에 실린 것을 참조하였다. 대사 및 장면 인용은 모두 공연 영상에서 가져왔음을 밝혀둔다.
    ↩︎
  9. “자궁이다. 글로벌이기도 하지만 무대가 이렇게 덮여 있다가 열리잖아요. 여자의 그…… 음부로 봤어요. 이래 열면서 딱, 왕비가 서 있거든요.” 이윤택은 자궁과 음부를 혼동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여성을 그저 성기 하나로 대체해서 보는 이윤택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인터뷰다. 김남석, 『난세를 가로질러 가다』, 연극과인간, 2006, 358쪽.
    ↩︎
  10. Hanne Blank, Virgin: the Untouched History, New York: Bloombury, 2007.
    ↩︎
  11. Judith Warner, ‘Pure Tyranny’, New York Times, 2008.06.13; Valenti, Jessica, The Purity Myth: How America’s Obsession with Virginity Is Hurting Young Women, Berkeley, California: Seal Press, 2009, 76쪽에서 재인용.
    ↩︎
  12. 이윤택, 『연극작업-햄릿읽기』, 우리극연구소, 2001, 83쪽.
    ↩︎
  13. 김윤철, 「남성연극이 고개 들기 시작하는 사회」, 『문화예술』, 1997.06;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 『’90년대 연극평론 자료집(V)』, 평민사, 1999, 34~37쪽 참조.
    ↩︎
  14. 이윤택 구속 이후 나온 저서에서도 여전히 그런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저자가 어떤 창작자의 공연 인지 언급하지 않았지만, “천마총”을 상징하는 무대, 공연의 내용과 형태 등을 미루어봤을 때 그가 상찬하는 연극이 이윤택과 연희단거리패의 작업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강태경, 『행간의 햄릿』,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23, 854~856쪽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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