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
미래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깔린 국경선은 새들의 천국이 되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기에, 새들의 천국이 되었다.
청년과 노인 바이크를 타고 어딘가로 향한다.
암전.
그리고, 조명 들어오면 2명의 청년이 바이크에 올라 있다.
경우와 수창.
경우 나는 비극과 희극의 한 순간의 기적으로 여기에 서 있다.
-김철의, <이카이노 바이크> (원제: <탄뎀 보더 버드(Tandem border bird)>) 중에서
십 오년 전, 제주도에서 열린 마당극 축제가 있었다. 오사카에서 왔다는 일본 극단 MAY의 공연 순서였다. 배우들이 옷걸이에 걸린 의상 한 벌을 들고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말했다. “극단 MAY의 대표이자 배우이자 작가이자 연출인 김철의 씨는 재일 조선인 3세입니다. 국적이 조선이라서 한국에 입국하지 못했습니다. 몸은 오지 못하고 의상만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저희는 오늘 공연을 못 하지만 김철의 씨의 의상과 함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배우들이 의상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야외무대라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고개 숙인 의상이 바람에 흔들려서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무방비로 울고 말았다.
곧바로 무대 뒤로 달려가서 배우들에게 말했다. 김철의 씨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배우들은 당황했지만 전화를 연결해 주었다.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친근한 목소리를 향해 소리쳤다. “형님! 저는 한국의 오세혁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형님의 연극을 한국에 알리겠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다. 왜 얼굴 한 번 못 본 사람에게 다짜고짜 형님이라고 했는지. 그날의 통화 이후 우리는 가까워졌다. 나는 틈만 나면 메일을 보내서 김철의 작가와 극단 MAY 단원들에게 질문을 거듭했다. 놀랍게도 MAY는 김철의 작가를 제외하고 모두 일본인이었다. 자이니치[在日] 창작자인 김철의의 연극에 반해서 입단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한국인인 나보다 더 자이니치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며 다가가고 있었다. MAY라는 극단 자체가 한국과 일본과 자이니치를 이어주는 소중한 다리 같은 느낌이었다.
미래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처럼 조국의 분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선적을 고수하는 재일 조선인들이 있는데. 우리는 무국적자이다. 왜냐하면 우리 할아버지들이 조국을 떠나올 때의 우리나라, 즉 ‘조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적이 없기 때문에 여권을 발급받을 수가 없고, 만약에 가고자 하는 나라가 있다면 ‘여행증명서’ 라는 것을 발급받아 그 나라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한국에 오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은, 우리 재일 조선인들에게 가깝고도 먼 고향이다.
-김철의, <이카이노 바이크> 중에서
메일을 주고받으며 1년이 지났지만, 김철의 작가를 한국에 초청할 방법은 없었다. 희곡낭독회를 하거나 공연영상 상영회를 하면서 조금씩 알리는 방법뿐이었다. 다행히 많은 연극인들이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참석해 주었다. 내가 느끼는 작가 김철의는 정말 독특했다. 그의 희곡은 모두 자이니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자이니치 뿐 아니라 주변에서 함께 인생을 살아온 일본인과 한국인의 이야기도 특유의 따뜻한 애정으로 함께 담아냈다. 서로 다른 세 국적의 인물들이 한 편의 연극에서 어우러지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코미디의 힘이었다. 김철의 월드에서는 서로 반대되는 인물들이 신나게 싸우고 신나게 우정을 쌓는다. 조선학교 학생과 일본학교 학생이, 조선 노동자와 일본 노동자가, 조선 협객과 일본 경찰이, 전력 질주로 쫓고 쫓기기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같은 방향으로 달린다. 그렇게 하나의 길로 달리다 보면 어느새 그들은 알게 된다. 사람과 사람을 갈라지고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란 이름을 ‘국가’라는 이름으로, ‘사회’라는 이름으로,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갈라지고 멀어지게 만드는 어떤 거대한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명기 뭐예요 아저씨.
쿠마타 또 패거리와 함께 싸움하러 가는 거냐.
명기 조선고등학교가 일본학교와 싸우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쿠마타 상대 패거리 중에는 가네모토(金本)、야스다(安田)、도요타(豊田)도 있어.
명기 그래서요?
쿠마타 너, 이 일본에서 동족과도 싸우는 거야?
명기 창씨개명한 그 새끼들은 이제 우리랑 다르잖아.
명기, 가려고 하는 것을 쿠마타가 막아 세운다.
명기 뭐 하는 거야!
쿠마타 돌아가.
명기 나로부터 시작된 문제잖아! 다들 기다린다고! 내가 안 가면 나만 나약한 놈이 되는 거라고!
쿠마타 싸움 피해서 나약한 놈이 되는 거라면, 나약한 놈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야!
-김철의, <이카이노 바이크> 중에서
그로부터 몇 년 후, 전화와 이메일로만 만나던 김철의 작가를 드디어 실제로 만났다. 조선적 자이니치는 여전히 한국에 올 수 없었다. 그들이 올 수 없다면 우리가 가야 했다. 양국의 연극인들이 합심하여 ‘오사카 도톤보리 하나마당’이라는 한일 연극제를 만들었다. 우리 극단 <걸판>을 포함하여 부산에서 제주까지 다양한 연극인들이 오사카로 모였다. 극장에 도착했는데 저 멀리서 김철의 작가가 전력 질주로 달려왔다. 우리를 한 명 한 명 부둥켜안더니 눈물을 흘리며 ‘드디어 만났다’는 말을 반복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처음 만났다.
그 연극제에서는 한국인과 일본인과 자이니치가 일주일간 함께 먹고 함께 자며 연극을 하고, 연극 얘기를 하고, 연극에 대한 꿈을 나눴다. 낮에는 서로의 연극으로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했고, 밤에는 소주와 막걸리와 사케가 함께 잔을 부딪혔다. 철의 형은 거의 매일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해 질문했다. 제주의 바다와 바람을 물어보았고, 서울의 극장과 관객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리고 종종, 자신이 언제 한국에 올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우리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참으로 무력한 마음이었다.
작고 소박하지만 놀라웠던 연극공동체는 일주일 후 끝이 났다.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장으로 떠나는데, 철의 형은 연신 손을 흔들고, 잘 가라고 소리치고, 바닥에 엎드려서 문 틈새로 마지막까지 우리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마도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에, 아주 오랫동안 울었다.
명기 너희들이… 너희들이 우리들의 기분을 알아! 본 적도 없는 고향에 홀려있는 부모에게, 가족과 함께 돌아가고 싶은 땅을 잃어버린 부모에게, 아무 말도 못 하는 나 같은 인간의 기분을 아냐고! 당신 같은 경찰은 조선인을 미워할 뿐이야.
쿠마타 나는 일본인이지만, 조선에서 나고 자랐다!
명기 뭐?!
쿠마타 너 같이 조선인인 척하는 애송이들은 모르겠지만, 나 같은 일본인들은 얼마든지 있어! 아버지가 조선에서 철도 일을 하신 덕분에 여기저기 참 많이도 돌아다녔어. 한때는, 저고리를 입은 여자애를 좋아해 본 적도 있지. 그래서 난 지금도 여러 풍경이 생각나. 뭐 거기서도 고향 일본의 이야기도 들었지만, 패전 후 도망쳐 돌아온 일본은 와륵 뿐이었어! 나에게 고향은, 태어나고 자란 경성이야. 여기저기 다니면서 본 여러 풍경.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야! 근데 전부 불바다가 돼버렸어. 네가 교과서로 배운 그 모습! 귀로밖에 듣지 못한 풍경! 그걸 본 사람은 분명히 있다고!
명기 ……
쿠마타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왜 고향에서 가장 먼 곳으로 도망쳐 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 그리고 왜 고향이 아닌 북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 너의 아버지가 반했던 그 사람이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너는 네 아버지가 지켜낸 비극 속 한순간의 기적이야. 버티며 여기서 살아가고 있잖아! 절대 잡히지 마. 내가 너를 체포하면, 시대가 전부 저주에 걸릴 거야!
명기 ……
-김철의, <이카이노 바이크> 중에서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고, 대통령이 계속 바뀌었다. 드디어 조선적 자이니치의 입국이 허가되었다. 김철의 작가는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올 수 있었다. 고향을 여행하고, 고향의 음식을 먹고, 고향의 초청을 받아서 실컷 연극을 했다. 십 년 전 오사카에서 보았던 자이니치 4세 어린이들이 이제는 청소년이 되어 함께 한국으로 공연을 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김철의 작가의 연극을 보며 울고 웃었다. 그들의 여정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연극인 김철의와 자이니치 연극인들을 발견하고, 기억하고, 애정한다. 우리는 지금도 함께 수많은 도모를 하고 있다.1
___________________
*) 작품 출처 : 김철의, <이카이노 바이크> (원제: <탄뎀 보더 버드(Tandem border bird)>, 김희래 번역, 극단 MAY / 불의전차 제공)
오세혁
쓰고 연출한다. 경계를 넘나들며 다방면의 장르에서 다방면의 사람들을 만나 다방면의 도모를 한다.
_____________________
- 연출가 변영진과 극단 불의전차는 김철의의 연극을 한국에 알린 일등 공신이다. <이카이노 바이크> <청천장단> <세븐>을 비롯하여 지속적으로 김철의 시리즈를 한국에서 공연 중이다. 가장 감격스러운 것은 김철의 작, 변영진 연출의 연극 <장소>가 이번 서울연극제에서 우수상, 연출상, 연기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배우 전원이 연기상을 받았다.)
십오 년 전 바다를 건너오지 못해서 의상만 건너왔던 자이니치 조선인 작가의 연극이, 이제는 한국의 연극제에서 수없이 공연되고 수없이 상을 받고 있다. 정말로 행복한 일이다. 우리의 만남은 멈추지 않는다. ‘대한민국 연극제-인천’에서 열린 연극 워크샵에 김철의 연출이 참여하여 한국 배우들과 작품을 만들었다. 오사카에서 열린 연극 워크샵에 한국연출들이 참여하여 일본 배우들과 작품을 만들었다. 올해 10월에서는 오사카에서 한일연극제가 열리고, 11월에는 서울에서 한일연극제가 열린다. 내년에는 작가 김철의의 희곡집을 한국에서 낼 예정이다. 철의 형은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연극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일본에서 펼치고 있는 연극, 자신이 한국에서 펼치고 싶은 연극, 그리고 언젠가는, 한국인과 일본인과 재일조선인이 함께 만나서 펼쳐내야만 하는 연극. 김철의 희곡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언제나 전력 질주로 달리며 멈추지 않는다. 아마 작가 김철의도 그럴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