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란
이명우 연출의 신작 <삼애: the author’s body>이명우 작·연출, 극단 에게, 예술공간 혜화, 2025.7.25.~7.29.가 초저예산으로 이루어진, 단 5일 동안의 짧은 공연으로 올라갔다. 이 공연에 참여하는 인원은 퍼포머와 스태프 포함 단 6명이다. ‘최애’라는 유행어를 차용해서 ‘차애’, 그리고 세 번째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의미의 ‘삼애’라는 다소 장난스러운 제목을 가진 공연이다.1 그런데 공연전단의 작품소개글은 “<삼애>는 2024년 12월 3일 이후 일상의 ‘중단된 감각’에서부터 비롯됐습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장난스러운 웃음기를 거두게 한다. 그리고 “일상의 틈에 끼어든 불가피한 조치에 대한 화답”, “그날 이후 신체가 어떻게 저항과 생존의 장소가 될 수 있는지 진화를 도모하는 불가피한 공연”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공연은 작가의 몸,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 해체되었다가 다시 조립되고 부활하는 사물들의 기이한 퍼포먼스를 통해 계엄 이후의 상상력을 실험하고 있다.
스핑크스의 문과 계엄의 밤
공연은 전시와 퍼포먼스가 결합된 형태로 진행된다. 예술공간 혜화 극장에 들어서면 로비에서부터 택배용 종이박스들이 마치 성벽처럼 쌓여있는 통로를 지나 객석에 입장하게 된다. 객석 출입구 문에도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다. 전시물에 대한 제목과 설명은 이렇다. “제목 VVIP. 설명. 스핑크스 왈, 여길 통과하는 자 배에 ‘왕王’자가 있을지어다.” 객석 바닥에는 벤치 의자들이 뜯겨 나뒹굴고 선풍기가 분해된 채 놓여있다. 바닥 설치물의 제목은 ‘베드 트랩’, 설명은 “계몽군이 벗기고 간 틱타알릭의 비늘”이다. 틱타알릭은 고생대 멸종 어류이다. 무대 바닥에는 말린 옥수수 알갱이들을 깔아놓고 “클레이모어 대인폭탄”이라고 설명한다. 클레이모어는 금속구슬을 발사하는 대인지뢰의 이름이다. 무대 천정에는 복싱용 마우스피스들이 낚시줄에 매달려 있다. 이 설치물에 대한 설명은 “사라진 많은 인물의 치아를 수집해 놓은 극장의 전리품”이다. 전시물 자체만으로도 계엄의 밤에 대한 서늘했던 기억을 소환한다.
퍼포머는 3명이 등장한다.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명우 본인, 그리고 황순미와 권정훈 배우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연극적인 대화나 장면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이명우는 작가 역할을 맡아 전시해설을 담당하고, “원투쓰리”로 시작되는 시를 읽기 시작한다. 시는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에 대한 단상이지만, 시 첫머리에 반복되는 “원투리쓰리”의 이질적인 구호는 12.3 계엄의 밤을 애써 기억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황순미와 권정훈 배우 또한 행동 전후에 “빵!” 혹은 “Wait!”이라는 구호를 반복한다. 총소리와 군대 제식훈련을 연상시키는 구호들이다. 권정훈 배우는 로비에 있던 종이박스들을 날라 무대 바닥을 채우기 시작하고, 황순미 배우는 무대 한켠에서 종이박스를 벗겨내 여과지를 만들고 말린 옥수수 알갱이를 갈아 커피처럼 내리는 동작을 이어간다. 택배를 나르고, 커피를 마시는 일은 아주 평범한 일상적인 일들이다. 이런 일상적인 움직임들 사이에 “빵!” 소리와 “Wait!” 구호가 끼어들고 무의식적 습관처럼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가 다시 행동을 이어간다.
나뭇잎 군단과 리어왕의 폭풍우
멈추어진 시간과 기억의 잔해들 사이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은 “계몽군이 벗기고 간 틱타알릭의 비늘”이었던 선풍기가 다시 조립되고, 전원을 연결해 바람을 일으키면서이다. 권정훈 배우는 선풍기를 조립하기 시작하고, 그 옆에서 황순미 배우는 우향우 좌향좌 구령과 함께 천천히 좌우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리면서 성대를 긁는 이상한 소리도 낸다. 이윽고 귀에 귀마개를 씌우고 자체 음소거를 한 채 여전히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 옆에서 선풍기 조립이 완료되고 바람이 불어올 때 비로소 지금까지 황순미 배우가 좌우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 선풍기였음을 알게 된다. 황순미-선풍기의 연결/연합 장면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신선한 장면이었다. 감정이 아닌 행위의 작동방식 자체만을 전달하는 연기방법이 묘한 충격을 주었다.
이어지는 ‘염과 염’ 장면에선, 단순한 트릭으로 장면을 전환한다. 공연 초반 작가는 관객참여를 부탁하며, ‘암전’하면 관객들이 눈을 감고, ‘명전’이라고 하면 눈을 떠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이 장면에서 ‘암전’ 지시와 함께 관객이 눈을 감은 사이, 작가는 옷을 벗고 객석 옆쪽에 마련된 종이판지 위에 흰 면포를 덮고 누웠다. ‘명전’ 지시와 함께 관객이 다시 눈을 뜨면, 관객 눈앞 모니터 속에는 마치 시체안치실에 누운 듯한 작가의 죽은 몸이 보인다. 그 옆에서 황순미 배우는 커피 기물을 정성스럽게 닦기 시작하고, 권정훈 배우는 작가의 죽은 몸을 염하기 시작한다. 이미 죽은 작가의 몸이지만 작가의 두 손에 복싱용 핸드랩 붕대를 감고, 작가의 입에는 마우스피스를 끼운다. 그리고 작가의 손에는 마이크를 쥐어준다. 저항하는 몸의 형태를 만든다. ‘비인간 선풍기-인간 배우’가 계속 고개를 돌리는 움직임으로 끊임없이 부정하는/저항하는 몸짓을 만들어낸 것처럼 ‘생명 없는 주검-단단한 화석 같은 몸’으로도 저항의 몸짓을 만들어낸다. 사물들, 곧 비인간과 인간을 연결해 새로운 하이브리드를 만들고, 결국 사물들이 말을 하게 하는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브뤼노 라투르의 ‘혼성물hybrid’, ‘동맹자들’, 사물들이 스스로 말하는 ‘사물들의 의회’, 그리고 그레이엄 하먼의 행위자로서의 ‘준객체quasi-object’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다.2
마지막 장면은 늙은 왕 리어의 이야기다. 눈먼 아비 글로스터는 죽기 위해 도버 해협에 도착하고, 미친 왕 리어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황야에 서 있다. 도버 해협과 황야의 바람소리는 죽어 누워있는 작가가 마이크를 잡고 내는 숨소리로 대신했다. 권정훈과 황순미 배우는 글로스터와 에드가 부자의 장면을 패러디한 장면의 대사를 주고받고, 권정훈 배우는 “불어라 바람아!” 리어의 대사를 외친다. 그리고 작가는 무대 안으로 걸어들어가 도버 해협 지점의 천정에 매달렸다가 쌓아올린 종이박스 속으로 떨어진다. 무대는 종이박스들로 가득 채워졌고, 그 사이에 쌓아올린 종이박스 속으로 떨어진 작가의 모습은 마치 일어선 관처럼 보인다. 한때 권력을 쥔 자의 추락을 보여준다. 황순미 배우는 종이박스 위에 올라서 마치 땅을 다지듯 한 걸음씩 걸음을 옮겨 무대 뒤로 퇴장하고, 권정훈 배우는 무대 뒤쪽 박스에서 초록색 풍선에 바람을 넣어 초록 풍선들이 일어서게 한다. 미친 왕의 죽음 이후, 초록 나뭇잎 군단이 단단한 땅에서 다시 일어서게 한다. 미친 왕의 폭풍우에 맞서는 나뭇잎 군단의 엔딩이다.
이렇듯 이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시라는 형태로 사물들을 무대 위의 행위자로 초대하고, 사물들과 인간 행위자를 연결시켜 비인간과 인간의 연합 가능성의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준 점이다. 이 공연은 멸종된 고대 동물 틱타알릭을 다시 불러내 선풍기로 진화시키고, 옥수수 총알을 커피가루로 갈아 버리고, 선풍기의 바람과 작가의 숨소리를 연합시켜 미친 왕을 날려 보내는 폭풍우를 만들어냈다. 12.3의 중단된 감각으로부터 시작된 공연은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외치고 꿈틀대는 더 소란스러운 세계로 도착하게 했다. 선풍기와 커피와 풍선, 그리고 인간 퍼포머와 관객인 우리는 나뭇잎 군단이 되었다. 스핑크스의 두려운 예언과 계엄군과 총은 나뭇잎 군단으로 뒤덮였다.
김옥란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 작품의 제목 ‘삼애’, 곧 ‘세 번째로 사랑하는 것’은 공연 혹은 예술을 뜻한다. 작가는 이전의 작업에서는 자신의 우선순위를 ‘예술(작업), 나 자신, 인류’로 꼽았지만 최근 작업에선 ‘인류, 나 자신, 예술(작업)’의 순위로 작업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한다.(작가와의 인터뷰, 서울 종로구 동숭동 서울예술인지원센터 미팅룸1, 2025.9.4.) ↩︎
- 부뤼노 라투르, 홍철기 역,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갈무리, 2009.; 그레이엄 하먼, 김효진 역, 『네트워크의 군주: 부뤼노 라투르와 객체지향 철학』, 갈무리, 2019. 참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