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은
빠른 속도로 체감되는 기후 재난의 일상화 앞에서 “끊임없이 팽창하는 경제 낙원”팀 잭슨, 전광철 옮김, 『성장 없는 번영』, 착한가게, 2015, 56쪽 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느껴진다. 기후 위기는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이고, 이미 담론의 장에서도 뜨거운 주제이다. 그러나 도무지 해결의 고리를 찾지 못할 것 같이 거대한 문제로 다가와 기후 우울의 상태에 도달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적 생활양식과 밀착되어 있고, 직업·계층·지리·젠더 등에 따라 체감할 수 있는 위기의 수준이 상이하기 때문에 해결 방식을 상상하기란 쉽지가 않다. 또한 그린워싱, 기술 해결주의와 같이 기존의 산업, 권력의 구도 내에서 생태 위기가 또 다른 소비의 촉진제로 전이되거나 안이한 이슈로 소비되는 상황을 목도하기도 한다. 급진적으로 정비의 시간을 앞당겨 그동안 우리가 좋은 것,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했던 모든 것들이 어떻게 행성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했는지 살피고 산업과 소비문화, 생활양식, 삶에 대한 태도의 전반적인 ‘전환’을 도모해야 할 시기이다.
비판적 생태연극의 한국적 맥락
1990년대 이래 생태학적 사고를 연극과 퍼포먼스 비평, 극작, 제작, 학문 분야에 적용하는 흐름이 나타났다.1 우나 차우드리(Una Chaudhuri)는 연극에 있어서 생태비평을 본격화하며 에코드라마(Ecodrama) 개념을 이론화하였고, 테레사 메이(Theresa J. May)는 생태적 문제와 인종·계급·성별의 교차성으로 문제를 심화시켰다. 메이는 풍경 미학과 낭만주의를 벗어난 생태 비평적 접근을 역설하며, 미학에 있어서 헤게모니적 가치와 주류 서사의 강고함이 가렸던 파괴와 제노사이드,생태 학살과 불공정에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다음 목록은 연극에 있어서 생태 비평적 접근을 이론화했던 메이가 동시대 ‘생태연극(Ecodrama)’의 전망을 가늠하기 위해 작성한 질문지이다.
연극에 묻는 몇 가지 환경 관련 질문(Some Green Questions to Ask a Play)2
• 연극은 그 시대와 장소의 환경 문제를 어떻게 반영하거나 참여시키는가(심지어 ‘배경’으로라도)?
• 연극의 ‘세계’에 존재하는 생태적 조건을 암시하는 단서는 무엇인가? 그 조건들은 인종, 계급, 성별의 표현과 어떻게 교차하는가?
• 연극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특정 역사적 맥락에 뿌리를 둔 철학적 패러다임을 어떻게 반영하는가?
• 연극은 기술이 인간, 동물, 식물, 땅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표현하거나 복잡하게 만드는가?
• 연극은 땅의 인간적 착취를 정당화하는 지배적 서사를 전파하거나 전복하는가?
• 장소와 인간은 어떻게 상호 침투 가능한가? 공연은 개인과 생태적 공동체의 경계를 어떻게 흐리게 하는가?
• 공연의 공간성이 관객, 공연자,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공간의 사용이 생태학적 ‘공동체’ 개념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 동물이나 다른 비인간적 몸은 수사적 또는 은유적 장치로 어떻게 활용되며, 이러한 것이 재현될 때 무엇이 드러나는가?
• 신호체이자 매체로서의 몸은 생태적 정체성이 협상되는 경계지대로서 어떻게 기능하는가?
• 이 퍼포먼스는 우리로 하여금 자연 세계와의 관계나 자아 또는 공동체의 정의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가?
• 생산의 물질적 수단(자원/노동 사용)과 그 생태적 함의(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는 무엇인가?
• 생산의 역사적 순간의 물질-생태적 조건은 무엇이며, 이는 인종, 계급, 지리, 성별과 어떻게 교차하는가?
생태연극의 한국적 판형으로 1980년대 공연되었던 반공해마당극이 있었다. 현재 우리가 ‘환경운동’, ‘기후정의운동’ 등으로 이해하는 활동은 한국에서 1980년대 초부터 활성화된 ‘반공해운동’을 기원으로 한다. 이 활동은 탈춤·미술·마당극·노래 운동 등 예술을 매개로 반독재투쟁에 연대하는 집단들과 연계되면서 연극적 생산물로 이어졌다. 산업화로 인한 오염과 토착적 생활양식의 변화가 극화되었던 이 ‘반공해마당극’에는 테레사 메이가 던진 질문의 한국적 판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산업화 시대의 농촌은 어떻게 내부 식민지화 되는가, 농약과 공장의 오염물질은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기술중심주의는 어떠한 방식으로 당시의 제국주의적 풍토와 연결되었는가, 생명사상은 어떻게 개발주의의 행보에 현실적이고 철학적인 방식으로 제동을 걸어야 하는가, 벼와 돼지 등 비인간적 생명체는 어떻게 그리고 왜 극화되어 생태적 함의를 드러내는가. 이 질문은 기후재난 시대 더욱 악화된 현실 앞에서 우리가 만들고 마주쳐야 할 환경/생태/기후 정의 연극의3 전망과도 연결된다.
1980년대 한국의 개발주의와 느린 폭력의 극화
극단 연우무대는 <허연 개구리>(1983), <부러진 노를 저어 저어>(1983)를 창작하고 공연했다. 또 대학 탈춤반 연합활동을 기원으로 한 놀이패 한두레는 <청산리 벽폐수야>(1981/1983), <계화도 땅풀이>(1984)를 창작했다. 이 작품들에는 해안 어촌 지역에 건립되었던 산업 단지의 오염과 농촌 지역의 도시로의 수탈과 농약 문제 등이 담겼다. <청산리 벽폐수야>는 ‘여천공업단지’의 진해화학을 상대로 낸 피해보상 소송사건을 배경으로 했고, <허연 개구리>는 농약의 위해성을 상징하는 죽어 몸을 뒤집은 개구리의 이미지와 “합리적 농사 경영”의 기치를 성실하게 시행하는 한 농민의 아이가 농약을 먹고 죽게 되는 사건의 비극성을 연결했다. <부러진 노를 저어저어>는 온산 공업단지에 펄프·비료·정유 공장이 생긴 후 지역의 생태계가 훼손되고 주민들이 피부병, 신경성 질환 등을 겪고 거주환경의 변화를 겪어야 했던 과정을 담았다.
‘공해풀이 마당굿’이라는 이름으로 연행되었던 극단 연우무대의 <나의 살던 고향은>은 국가 주도의 개발주의가 어떠한 방식으로 구체적인 생태적 삶의 파괴로 이어졌는지를 고발했다. 이 마당굿은 특정 공업단지와 농촌 사례를 극화하고 핵물질과 공해물질을 재현하거나 관리자를 풍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압축하고 전형화했다.
이처럼 반공해마당극은 전지구적인 정치·경제 구조에 대한 비판, 생활과 실존의 차원으로 침습하여 들어오는 근대적 개발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구체화 된 성찰을 담아냈다. 특히 통일·농민·노동·학생·여성·공해 문제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된 것이라는 것, “산업재해, 직업병과 공해는 원래 한 뿌리”조홍섭, <공해와주민운동>, 『(부정기간행물) 공해 -삶이냐 죽음이냐』, 형성사, 1985, 242쪽 라는 당시 반공해운동, 생명운동의 인식 지평을 반영했다. 또 반공해 인식이 담긴 일련의 극들은 특정 지역민의 보상 운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생태적 파괴에 맞서 싸우는 이들로서 대표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들 작품의 풍자적이고 비극적인 형상에는 토착적 풍경 안의 자연 환경·인간의 몸·생활 문화 등에 가해지는 인간적이고 환경적인 비용과 “장기적으로 대지에 스며드”는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었다. 롭 닉슨이 구조적 폭력과 함께 시간의 장기 지속성과 폭넓고 복잡한 범주의 폭력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제시한 “느린 폭력”의 개념과도 맞닿은 것이었다.4
토착적 지혜와 비인간 자연에 관한 감수성
민중운동의 맥락에서 1980년대 마당극을 논할 때 탈춤이나 풍물과 같은 민속적 형식의 활용, 민중의 건강성에 대한 맹목적 기대, 과거의 삶에 대한 회귀적 태도라는 본질주의적 접근법과 재현의 양상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일련의 반공해 마당극들은 단순한 환경 파괴가 아닌 이면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한편 지역민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겪어야 했던 생활의 침탈성을 핍진하게 형상화했다. 이 과정에서 생활의 조건에서 연동된 인간·비인간 자연·물질의 상호관계성과 토착적 지혜를 가시화하고 그것이 파괴될 때의 고통을 핍진하게 드러냈다.
반공해운동의 입장에서 창작된 것이 아닌 광주, 제주의 작품인 <함평고구마>(1978), <돼지풀이>(1980), <태ᄉᆞᆫ땅>(1983) 등에서도 농작물·생물·거주지의 생명성과 존재론적으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농민들의 생태론적 생활 감각이 형상화되고, 이들의 삶에 가해졌던 개발주의 폭력의 실감은 어떤 것인지가 생생하게 담긴 바 있다.
1980년대 마당극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볼 수 있는 <밥>(1985)은 대리 집회의 성격을 기반으로 했던 대학 초청 순회공연의 레퍼토리로 큰 인기를 끌었다. ‘광주여 광주여’라는 대형 걸개가 걸린 대학 노천 광장에서 연행되곤 했던 이 연극은 당시 반독재 투쟁의 저항적 정동을 잘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그런데 실제 <밥>의 내용은 자연농법의 중요성·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향아설위 사상·경제적 평등 의식을 반영한 공생공존의 사상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그 사상적 토대는 저본 『밥』의 토대인 ‘원주 보고서’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1982)에 있었다. <밥>에서 농부가 자연물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순진한 우화로 보기는 어렵다. 또 이 마당극은 승자독식의 경쟁적 세계관을 내면화한 도시인을 비판했고, 순환론적 세계관과 (순수)증여, 호혜적 관계를 강조했다.
듣기, 복잡계를 살피기, 함께 고발하고 아파하기
자본주의적 근대에 대한 적응과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도전이 숨 가쁘게 공존했던 한국의 1980년대, 일련의 반공해마당극은 농생활에 기반한 사회에서 산업화된 사회로 전환될 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를 인간, 비인간 생물, 대지·강·바다·하늘 등이 공생하는 생태적인 지평에서 담아냈다. 이 반공해마당극들은 반독재 민중운동의 패기가 곳곳에서 대안적이고 대항적인 상상력과 실천을 만들어냈던 특정 시간의 산물이다. 시간 차를 두고 다시 이 작품을 들여다보아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작동하고 있는 가장 취약한 곳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이를 구조의 문제로 사유하며, 예술이라는 도구로 가시화하여 공유하려 했던 열망이 귀하게 다가온다.
폭염과 폭우로 이전과 다른 여름을 겪고 있는 2025년, ‘생태·기후 정의 연극’은 어떻게 다음 걸음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질문하게 된다. 불평등한 기후 위기를 겪는 대표자-증언자의 목소리를 듣고 모순의 교차성을 검토하며 가시화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마당과 극장은 따져서 묻고, 고발하는 장소이자 애도하고 함께하는 장소였다. 자국의 쓰레기와 오염 산업을 타국에 외주화하고 있는 선진국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초도시화 된 공간과 생활환경을, 국토의 과잉개발을, 현재 수준의 생활양식을 가능하게 하는 생산의 물질적 조건을 대면해야 할 시기이다. 게릴라성 폭우가 내릴 때 배달을 해야 하는 플랫폼 노동자, 급격히 악화되고 변동성이 커진 기후 상황 속에 해마다 새로운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농부, 화력발전소가 폐쇄되었을 때 일자리를 고민해야 하는 노동자, 그리고 기후 재난 속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삶과 새롭게 연결되는 마당과 극장을 기대해 본다.
박상은
한국 현대 문학/문화사 연구자. 장소, 몸짓, 소리, 언어, 이미지가 함께 의미를 만들어내는 순간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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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학술지 『상허학보』 68호에 게재된 논문 「공해와 불온: 1980년대 초중반 마당극과 생태주의」(2023.6.), 학술지 『한국현대문학연구』 71호에 게재된 논문 「접합하는 생태—1980년대 중후반~1990년대 초중반 반공해·환경 마당극과 민족민주운동·생명담론·환경운동의 지형」(2023.12), 학술지 『한국연극학』 제90호에 게재된 논문 「한국의 1990년대 이후 환경 담론과 기후 정의의 문화정치-시위 퍼포먼스, 마당극을 중심으로」(2025.8)의 일부를 발췌, 수정한 글이다.
- 우나 차운드라와 테레사 메이의 공연학과 생태비평 관련 연구 및 저서 목록은 이 논의를 바탕으로 에코드라마터지를 개념화하여 적용한 리사 워이나르스키의 저서(Lisa Woynarski, Ecodramaturgies: Theatre, Performance and Climate Change, Palgrave MacMillan, 2020)를 참조함. ↩︎
- Theresa J. May, “Beyond Bambi: Toward a Dangerous Ecocriticism in Theatre Studies”, Theatre Topics 17(2), 2007, p.105. ↩︎
- 전 지구적 기후 위기의 상황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연극은 에코드라마(ecodrama), 그린씨어터(green theater) 등으로 명명되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개념어로 ‘환경연극’, ‘생태연극’, ‘기후/기후 정의 연극’이 가능하다. 비판의 범주·운동의 방식·사상적 배경 등에 따라 용어가 선택될 수 있다. ‘환경연극(environmental theatre)’의 경우 생태비평적 관점와 중첩되는 지점이 있지만, 연극의 제작 및 공연 환경과 관객과의 관계 설정에 관한 리처드 쉐크너(Richard Schechner)의 개념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기후/기후 정의 연극’은 기후가 본격적인 문제의 틀이 된 동시대 작품들에 적용 가능하다. 본 글에서 다루는 반공해 마당극의 경우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 시기의 환경문제를 다루면서 생명사상의 영향을 받았고 생태비평적 전망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생태연극’으로 지칭하는 것이 적절하다. ↩︎
- 롭 닉슨, 김홍옥 옮김,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 에코리브르, 202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