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여섯 번째 작품 <노란 빛 사람들>이 7월 25일과 26일, 노무현 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상연되었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세월호 참사의 시간을 겪은 엄마들로 구성된 창작집단이다. <그와 그녀의 옷장>2016,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2017, <장기자랑>2019, <기억 여행>2021, <연속, 극>2023에 이어 <노란 빛 사람들>까지, 이들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세월호’란 고유명사에 침전해가는 애도의 의미와 삶의 미덕을 연극으로써 끊임없이 길어 올린다. 이번엔 ‘빛’이다. 몸을 감싸 안는 온기와 열기로 존재를 가늠케 하는 빛. 저마다의 색으로 부서져 내려 무지개가 되곤 하는 빛. 이러한 빛의 성질은 연대의 형태와 닮아, <노란 빛 사람들>은 공연 내내 관객의 마음을 은은하고 온화한 빛으로 물들였다.

해야 할 일을 하게끔 하는 원동력

<노란 빛 사람들>은 앞선 작품들과 조금 다른 색깔을 띤다. 그동안 당사자의 위치에서 이야기했다면, <노란 빛 사람들>은 연대하는 이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총 세 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 ‘광장에서’는 19살 혜림이 29살 기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혜림은 광화문, 안산, 팽목항, 이태원 참사의 시간을 거치며 “세상이 안 보여주면, 내가 보여줘야지. 안 말해주면, 내가 말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자가 된다. 세월호 가족들과 연대해온 10년이란 시간은 혜림의 삶의 방향을 분명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혜림’이라는 인물은 경기신문의 임혜림 기자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녀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4.16세대’라고 칭했다.1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학생들과 동 세대인 이들은 연달아 ‘이태원 참사’의 시간마저 경유했는데, 어쩌면 어느 세대도 가닿을 수 없는 공허함과 상실감이 4.16세대에게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에서’의 혜림과 경기신문의 임혜림 기자는 멈추지 않는다. 임혜림 기자는 이태원 참사를 통해 이것이 ‘우리’의 일일 수도 있음을 감각하고, ‘광장에서’의 혜림은 세월호 참사 가족과 이태원 참사 가족이 함께하는 모습에서 ‘연대’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는다.

극 중의 혜림은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관한 탄핵안이 가결되는 순간을 찍는다. 이내 실제 임혜림 기자가 시민들을 인터뷰한 영상이 무대 전면의 스크린에 상영되며 이야기는 마무리되는데, 여러 지점에서 ‘연대의 확장’을 포착하게끔 한다. 세월호 가족과의 연대로부터 시작된 혜림의 삶의 방향은, 어느새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향한 연대로 나아간다. 더불어 영상 속 인터뷰이들은 “국민의 승리”이자 “조카를 위해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주려고” 노력한 것임을 전하며 ‘함께 하는 삶’의 의의를 짐작하게 한다. ‘광장에서’는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허물며, ‘오늘’이 있기까지 쌓여온 시간을 톺아 나를 추동하게 만들었던 알맹이를 되새기게 만드는 공연이었다.

따끈한 주먹밥이 남긴 것

두 번째 에피소드는 ‘주먹밥 예쁘게 만드는 방법’이다. 무대에서는 4.16약속지킴이 도봉 엄마들이이하 도봉엄마 모여 주먹밥을 만든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함이다. 이들은 관객들을 자원봉사자로 상정하며 말을 건넨다. 김장 행사, 연탄 나눔 봉사, 기억순례, 진도 기억의 숲 나무 관리 등 세월호 가족과의 시간을 들려준다. 뒤늦게 도착한 도봉엄마 모임의 대표는 시대가 변하고 세대를 거치면서 집회의 문화 또한 새로워졌음을 언급한다. 그는 오늘날 청년 세대들의 연대 행위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등장한 스무 살 ‘무지개’가 곧 그러하다. 그녀는 주먹밥으로써 연대를 실천하게 된 인물이다. 세월호 부스에서 받은 주먹밥은 그녀에게 뜻 모를 책임감을 불러일으켰고, 남태령 집회에 다녀오게 된다. 주먹밥을 만들며 연대의 가능성을 깨닫기도 한다.

‘주먹밥 예쁘게 만드는 방법’ 또한 실존하는 4.16약속지킴이도봉모임을이하 도봉모임 바탕으로 창작되었다. 도봉모임은 2014년부터 세월호 가족들과 연대하는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는데, 공연은 그중에서도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었던 활동을 주목하고 있다. 작품은 ‘연대의 형태와 가능성’이라는 의미를 ‘주먹밥’으로써 상징한다. 제각각의 쌀알이 따뜻할 때 뭉치듯, 서로 다른 개인이 마음의 온기만을 지닌다면 언제든지 뭉칠 수 있음을 전한다. 나아가 그 주먹밥을 먹은 이들 또한 세월호 가족의 식구食口가 되어 연대의 범위가 무한히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태극기+성조기+ 노란 리본=?!

마지막 에피소드는 ‘수상한 동행’이다. “보수의 심장! 보수의 최후 보루! 보수의 성지!”인 대구에 “감히”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을 받는 “대구 사람들”이 나타났다. 배낭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매고 다니는 애국보수시민 70대의 ‘만섭’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들을 수상히 여긴다. 2014년 이후로 이들의 활동을 주목하는데, 만섭의 심정은 불만과 자긍심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2024년 세월호 10주기에 만섭은 노란 리본을 나눠주는 대구 사람들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 어떻게 가족이 될 수 있느냐는 그의 질문에 ‘곁’을 내어주면 된다는 답이 돌아오고, 어느새 그의 가방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오래도록 이들을 감시하는 것에 쓰였던 카메라로 만섭은 세월호 가족들과 대구 시민들을 위한 사진을 찍어준다.

무대에는 만섭 이외에 ‘희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여러 명의 배우가 희나로 분하여 만섭을 친근하게 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철의 경적 소리가 울리는 부분에서 ‘수상한 동행’이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의 이야기임을 짐작하게끔 한다. 공연은 실제로 활동 중인 대구4.16연대를 바탕으로 하였다. 대구의 2.18안전문화재단은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에서 세월호 가족들을 만났고, 이후 세월호 가족과 연대하는 활동을 지속하면서 여러 단체의 합류로써 대구4.16연대가 생겨났다. 대구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참사는 인재로 인한 안전 문제라는 점에서 궤를 함께했다.

공연은 이와 같은 참사가 정당 정치의 견해를 넘어선 공동의 문제의식이자 삶의 가치와 관련된 화두임을 주지시킨다. 이 지점은 만섭과 그의 가방을 통해 상징적으로 전달된다. 만섭은 대구지하철 참사로 희나를 잃었기에 대구 시민들의 세월호 참사 연대 활동을 고깝게 본다.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이 잊혀가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마음 깊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후 세월호 가족들과 대구4.16연대 사람들이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자 만섭의 복잡한 마음은 조금씩 풀어진다. 만섭의 가방에는 애국보수의 상징인 태극기와 성조기, 세월호 참사 추모의 상징인 노란 리본이 함께 달려, 정당 정치를 뛰어넘은 연대 의식을 보여준다. 연대는 곧 “곁”이라는 단어로써 만섭의 마음에 안착한다. ‘수상한 동행’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존재들을 배척하기보단 이해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공동선을 위한 연대에는 대상에 한정이 없음을 가늠하게 한다.

빛에 물들 듯 번져가는 연대의 확장

<노란 빛 사람들>은 여섯 개의 큐브 박스와 전면의 대형 스크린으로 무대를 구성하였다. ‘광장에서’는 각 박스가 개별로 놓여 카메라 거치대 혹은 의자로 사용되었고, ‘주먹밥 예쁘게 만드는 방법’에서는 박스를 일렬로 붙여 테이블로 활용하였다. ‘수상한 동행’에서는 박스를 양쪽으로 세워 마치 지하철의 기둥처럼 사용하였고 무대 왼편에 의자를 두어 지문낭독자의 자리를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간단한 움직임으로써 연극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공연이 진행되었다. 배우들은 다양한 역할을 맡아 개성 있는 연기로 작품의 재미를 더했다. <노란 빛 사람들>은 연대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므로, 배우들이 배역과 거리두기가 가능한 까닭에서인지 무대 위 배우들의 모습으로부터 연기를 즐기는 감각이 전해졌다. 능청스러운 연기를 자연스럽게 해내어, 희곡에 담긴 의미와 말맛의 재미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어느새 점차 희곡, 연기, 연출 등 창작집단으로서의 전문성을 갖춰가고 있었다.

객석은 여타의 공연에 비해 유연한 분위기였다. 소위 ‘관크’관객 크리티컬라 불릴만한 일들을 <노란 빛 사람들>에선 오히려 허용하고 권장하였다. 예컨대 관객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집회 장면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손뼉을 쳤고, 배우들의 질문에 마음껏 답하며, 소리 내어 웃기도 울기도 했다. 공연을 관람하는 것 자체가 곧 연대의 행위가 되어 갔다. 공연의 서사가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허물면서 연대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면, 형식적으로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와해하여 관객이 배우들과 연대하는 경험을 하게끔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순간은 ‘빛’의 번짐이었다.

빛은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띠며 관찰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관측된다. 모두 근본적으로 빛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달리 존재하더라도 서로를 향해 찬란히 번져간다면, 어쩌면 우린 어느새 같은 빛깔을 내고 있지 않을까. <노란 빛 사람들>이 던진 연대의 메시지는 극장 너머까지 넘실대었다.

장윤정

알면 알수록 모르겠고, 쓰면 쓸수록 어렵다. 즐거워지자고 한 일은 어느새 늘 진지해진다. 글과 삶 사이의 거리를 줄여보고 싶은데 마음만큼 쉽지 않다. 그저 쓸 뿐이다.

  1. 이명익 기자, 「임혜림 <경기신문> 기자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87」, 시사IN, 2024.4.2.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6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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