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란
김상훈의 신작 <러브미투마로우>김상훈 작, 박해성 연출, 극단 상상만발극장, 미아리고개예술극장, 2025.6.6.~6.15.가 올라갔다. 이번엔 극단 음이온 공연이 아닌 극단 상상만발극장 공연으로 올라갔다. 일명 ‘다세계극장’ 연작의 하나로, 2023년 <미래의 동물>로부터 시작해 올해 <러브미투마로우>를 비롯해서 <공터의 에티켓>이라임 연출, <사물들>조서연 연출, <파린>전성현 작가의 신작들도 예고하고 있다. 극단 상상만발극장의 젊은 작가·연출가들의 릴레이 공연이 기대된다.
너를 응원하기 위해선 도시 하나가 필요해
<러브미투마로우>는 김상훈 작가가 2023년 11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쓴 단편희곡 46편 중 18편을 묶어 하나로 만든 공연이다. 온라인 프로그램북에 링크된 단편모음집에 들어가 보면, 짧게는 1페이지에서 길게는 10페이지 분량의 단편희곡들이 올라와 있다. 프로그램북에는 이 18편의 작품을 어떻게 잘라서 붙이고 순서를 조정했는지 타임라인 구성표까지 제시되어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도시다. 누군가는 도시 외곽을 걷고 있고, 누군가는 모텔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고, 누군가는 높은 곳에 올라 아래로 떨어지면 가슴에 구멍이 뚫릴 것이라고 상상한다. 또 누군가는 TV 속 드라마를 보고 있고, 우연히 지나치는 곳에서 돌아가신 백부님을 만나뵙기도 한다. 늑대가 되고 있는 인간 혹은 인간이 되고 있는 늑대는 원형 탈모증을 고민하며 의사 선생님을 찾고,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은 첫 만남에서 솥밥을 함께 먹기로 약속하고 두 번째 만남에서는 껌을 씹으며 껌종이에서 ‘당신을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발견한다. 낮에 마신 커피도 날 응원하고, 오늘은 하루 종일 모든 사물들이 나를 응원한다. 그리고 여전히 도시 외곽을 걷고 있는 누군가는 이민자 무리가 되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없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잔뜩 걸린 어떤 방에 들어간 듯하다.
무대에는 계단의 한 부분, 무덤의 십자가, 문설주의 한 부분, 탁자, 창틀, 입간판 등이 띄엄띄엄 놓여 있다. 프로그램북의 소개에 의하면, 공연팀은 이를 ‘도시의 흔적들’이라고 부른다. 미아리고개예술극장의 작은 무대에 도시 하나를 지었다. 배우들 또한 특정 배역을 맡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인물을 맡고 있다. 단편희곡의 인물들에게는 1부터 48까지 숫자가 매겨져 있다. 권정훈, 신사랑, 김현, 김슬기, 김중엽, 베튤, 편다솜, 전혜인의 8명의 배우들이 48명의 역할을 맡았다.
오늘이 없는 세대가 내일을 얘기하는 방식
공연은 잘게 쪼갠 장면들을 이어붙이고 변형하면서 증식해나가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공연은 1부 55분, 인터미션 10분, 2부 55분으로 총 2시간 공연이다. 그런데 2부는 1부의 반복이다. 마치 루프 시스템을 연결한 것처럼 1부를 통째로 반복한다. 물론 약간의 변형은 있다. 1부에서 늑대가 되고 있는 인간은 2부에서 인간이 되고 있는 늑대로 나오고, 1부에 나온 백부님은 2부에서는 삼촌이라고 불린다. 1부에서 화분이 된 할아버지는 붉은빛을 띠고 슬퍼하지만, 2부에서는 초록빛을 띠며 기뻐한다. 1부에서 벧엘서점의 위치는 제일인쇄소 옆에 있지만, 2부에서는 제일철물점 옆에 있다. 1부에서 “왜 저를 조롱하는 거죠?” 화를 내던 방문자는 2부에서는 웃음을 터뜨린다. 다소 잔인한 구성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거의 똑같은 공연을 같은 자리에서 두 번 연속 보게 한다.
이는 1부와 2부를 거의 똑같이 반복하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구성법이다. 그래도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1부와 2부 사이에 시간이라도 흐른다. 메마른 나뭇가지에는 나뭇잎이 싹트고, 포조와 럭키는 나이가 들어 백발이 되고 눈이 멀고 실어증에 걸린다. 그러나 <러브미투마로우>의 1부와 2부 사이에서는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는다. 같은 구간, 같은 시간을 동일하게 반복한다. 백부님과 삼촌, 제일인쇄소와 제일철물점 등의 사소한 차이들은 계속 반복되는 시간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 마모된 흔적 혹은 상처처럼 느껴진다. 오늘이 없는 세대가 상상하는 내일의 모습처럼 느껴져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다. 작품의 마지막, 십자가 기둥에 걸어놓은 모자 두 개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어릿광대의 ‘생각하는 모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공연 전체에서 김상훈 작가의 시간에 대한 낯선 감각이 느껴진다. 247년만에 한 번 온다는 개기일식을 바라보며 248년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개기일식을 두 번 볼 수 있겠다고 상상하고, 뛰어내려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되고, 죽어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50년이 지나있고, 도시 외곽 어딘가에 있다는 선생님은 가도 가도 만나 볼 수가 없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역설, 시간과 공간의 무한 분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제논의 역설처럼, 김상훈의 시간은 미래에 가닿기 전 무한히 분할하는, 현재를 초과한, 한없이 늘어난 시간 감각을 보여준다. 그러니 우리의 사랑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부터 사랑하자고 약속하는 것이 된다. ‘러브미투마로우’ 노래 부르지만, 과연 내일은 올까?
사물들의 연극
이렇게 무한대로 늘어난 시간 속에 밀고 들어오는 것은 마찬가지로 잘게 부서진 사물들의 세계다. 할아버지는 화분이 되었고, 껌종이와 커피가 나를 응원하고, 탈모 걸린 늑대인간은 매달 맞는 주사가 너무 아프다. 이 작품 속에는 단지 인간만이 아닌 개구리, 늑대인간, 화분, 껌종이, 커피까지 온갖 동물과 하이브리드들 그리고 사물들의 세계가 밀려 들어와 바글거리고 있다. 김상훈 작가는 프로그램북의 글에서 지금 현재 복잡해지는 세계 속에서 느끼는 방향감각 상실에 대해서 ‘세계가 밀려 들어오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바글대고 득시글거리는 세계에 대해 응답하고 싶었다고 말한다―“밀려 들어오는 세계를 불안이 아니라 사랑으로 대하려면 용기가, 반대로 용기로 대하려면 사랑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김상훈 작가는 전작 <연극 안하기―단단히 경고하기>에서 입센의 <페르귄트>를, <AR연계공연셋업>에서는 이오네스코의 <왕은 죽어가다>를 다시 쓰며 메타연극적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도 짧은 단편들마다 다양한 작품들을 인용 혹은 패러디하고 있다. 카프카와 베케트, 알프레드 자리와 이탈로 칼비노,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발트의 <이민자들>, 찬쉐의 <신세기 사랑 이야기>의 작품들은 물론 나사의 개기일식 중계방송, 이언 보고스트의 『에일리언 현상학, 혹은 사물의 경험은 어떠한 것인가』의 철학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그리고 현란한 독서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에서 객체들, 낯선 사물들, 곧 ‘에일리언’ 세계의 현상학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언 보고스트의 책은 최근 포스트휴먼 사물연극의 독법으로 김상훈을 적극적으로 다시 읽게 한다.
이 공연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각자 분절된 시간과 공간에 흩어져 동시다발적 대화를 이어가던 배우들이 한 벤치에 조르르 앉아 있었던 장면이다. 죽은 백부를 만나는 장면과 연인이 만나는 각기 다른 두 장면을 동시에 진행하는 장면이다. 조르르 함께 모여 있어도 각자 있고, 또 각자 있으면서도 함께 있었던 장면이다. 불안한 것들을 연결하며 서로 안부 인사를 건네게 하고, 247년만에 한 번밖에 안 오는 개기일식이지만 3백 년을 사는 나무의 시선으로 개기일식을 바라보게 하고, 지금 현재의 불안의 시간을 3백 년 동안 긴 시간으로 늘리면서도 나무처럼 슬퍼하고 기뻐하는 시간을 배우게 한다.
1900년대가 2000년대로 앞자리 숫자가 바뀌고, 이전 세대가 느끼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삼백 년 동안의 고독이 되었다. 과거 백 년, 현재 백 년, 미래 백 년의 감각. 1900년대 초의 혁명의 시대는 너무 멀고, 2000년대는 이미 와 있다. 신자유주의의 압박을 ‘공적 우울’앤 츠베트코비치, 『우울: 공적 감정』, 마티, 2025이라는 말로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다. 고도를 기다리던 긴 시간은 이제 인간의 시간을 너머 나무의 시간이 되어야 견딜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일까? 사물들의 연극은 단지 인간 너머의 시간에 대한 상상력일 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견디고 기다리고 약속해야 하는 지금 세대의 절박한 감각으로 보인다. 이 공연에서, 그리고 김상훈의 최근 공연들에서 느끼는 감각은 바로 이것이다. 절박한 답답함.
김옥란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