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진
대환 병원을 나와서 집에 오는데 엄마가 타라고 했던 버스가 107인지, 108인지 잘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며) 7인지, 8인지 잘 모르겠어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정류장에 아주 나이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앉아 있었어. 허리가 엄청 굽었어. 난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물어봤어. ‘할머니, 신곡동 가는 버스가 몇 번이에요?’ 그런데 할머니가 귀가 어두워서 듣지를 못하는 거야. 할머니가 손으로 이렇게, 오라고 했어. 그래서 난 엄청 떨렸지만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물어봤어. ‘할머니, 여기서 신곡동 가는 버스가 몇 번이에요?’ 그랬더니 107번이라고 알려줬어. 엄청 친절했어. 내가 손자랑 닮았다고 하면서 주머니에서 사탕도 내줬어. 계피맛이 나는 사탕이었는데, 먹기 싫었지만 안 먹으면 섭섭해 하실까봐 먹었어.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살인자라는 걸 알면 이렇게 친절하지 않겠지? 소리 지르며 도망가겠지? 그래서 사탕 맛이 느껴지지 않았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갑자기 너무 무서웠어. 근데 할머니가 물었어. ‘목에 그건 뭐니?’ 나는 너무 놀라서 사탕을 삼켰어. ‘다쳤니?’ 하고 또 물었어. 근데 나는 대뜸 이랬어. ‘어렸을 때 사람을 죽였어요’ 할머니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어. 난 너무 무서웠지만 도망가지 않았어. 왠지 견뎌야 할 것 같았어. 한참 있다가 할머니가 말했어. ‘그래, 그랬구나’ 할머니는 도망가지 않았어. 난 그게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 처음으로 사람하고 이야기를 한 기분이야.
– 이보람, <소년B가 사는 집> 중에서
14세에 살인을 한 대환은 7년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복역하다 모범수로 1년 6개월 일찍 출소하여 보호관찰 처분을 받는다. 대환의 아버지는 카센터를 운영하고 가정주부인 어머니는 아버지의 일을 돕는다. 보호관찰관은 일주일에 한 번씩 대환의 집에 찾아와 대환의 안부를 묻는다. 대환의 어머니는 관찰관에게 낼 국화차와 쌀과자를 준비한다. 동네 아이들은 대환의 집 앞에 죽은 고양이를 가져다 놓는다. 어머니는 집의 불을 켜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은 가족을 손가락질한다. 저 집 애가 사람을 죽였다고 손가락질한다. 아버지는 대환에게 자동차 정비 일을 가르치려 하지만 엄마는 아들이 공구를 다루는 일을 하는 게 싫다. 너무 싫어서 과일 깎는 과도도 선반에 몰래 숨겨놓는다. 엄마는 아들을 믿지 못한다. 사건 현장의 모습을 재현하는 아들을 현장 검증에 가서 다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말한다. ‘그날 거기에 간 걸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고. ‘터무니없는 아이를 낳았다’고. 어머니에게 오늘의 삶은 과거에 대한 후회의 연장이다. 대환도 마찬가지다.
10년 전 처음 읽었을 때나 지금이나 위의 독백은 나를 무방비하게 울린다. 대환이 긴 침묵의 끝에 비로소 가족들에게 ‘말’을 시작했기 때문일까. 계피 사탕 할머니가 고마워서일까. 아마도… ‘어렸을 때 사람을 죽였어요.’라고 말하는 대환에게서 깊고 오래된 후회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왜 나인지. 나는 어쩌다 내가 되어버렸는지. 왜 현재는 과거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인지. 오래 묵은 후회를 하는 대환의 마음을 아주 조금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환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가기 싫다는 태권도 학원을 억지로 보내서 대환이가 살인자가 된 것은 아닌지 4학년 때 아이의 생일파티를 열어주지 않아서 아이에게 나쁜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반복하여 돌아본다. 그럼에도 대환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손가락질하는 마을을 끝까지 떠나지 않는다. 마치 거기에서 계속 살아 버텨내면 아무 일도 없던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듯. 희곡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붙잡고 살면서도 결국에는 죽음이 아닌 삶에 천착하는 대환과 그의 가족들을 담담하게 그린다. 대환의 누나는 가족들에게 제주도 여행을 제안한다. 그리고 대환 사건의 피해자인 ‘지호’의 가족들이 제주도에 살고 있다고, 가서 사과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단 한 순간도 마음 편히 웃을 수 없는 이 작품은, 그럼에도 관객들을 절망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 같은 태도로 함부로 희망을 말하지도 않는다.
어릴 때부터 나는 유난히 후회가 많던 아이였다. 중학교 3학년 졸업앨범에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써주는 편지글이 있었는데, 편지에 선생님은 ‘속없는 말 해놓고 후회 잘하는 정현이’라고 적어두었다. 평생 남을 졸업앨범에 학생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잘도 써놓은 담임선생님이 원망스럽다가도,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을 담임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리면 짠한 마음이 든다. 속없는 말 해놓고 후회 잘하는 열다섯 살 정현이는 자라서 속없는 말 해놓고 후회 잘하는 내가 되었다.
후회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도 1초 전으로 이 세계를 돌릴 수 없다. 그랬다면 어벤저스 ‘엔드게임’ 이후의 영화는 나오지도 못했겠지. 그것을 모르지 않음에도, 삶은 매 순간 후회의 연속이다. 171번 탈 것을 272를 타서 지각을 하고, 아침에 밥을 한 그릇만 먹을 것을 두 그릇을 먹어서 체한다. 일상적인 후회의 순간들은 매 순간 찾아오지만, 후회의 농도는 내 곁에 누군가를 잃고 나면 가장 진해진다. 그가 떠난 그 순간부터의 남은 시간은 후회 혹은 후회의 연장으로만 이루어진다. 후회한다고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과거의 어리석은 나는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실수를 저지를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나면 조금 나아지지만. 그렇다고 후회가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다.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가르치던 학생의 장례식을 간 적이 있다. 학생은 기말고사 과제로 희곡을 한 편 내놓고 갔다. 좋은 희곡이었다. 아무에게도 더는 읽힐 일 없고 배우의 목소리로 연기될 일이 없는, 좋은 희곡. 이 글을 쓰면서 그 학생과 나, 우리 둘만 아는 희곡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장례식 이후 침대에 오래 누워 있으면서 생각했다. 그곳에 가지 않았으면 슬픔을 덜 묻힐 수 있었을까. 좋은 희곡을 썼던 너는 왜 그렇게 어리고, 장례식을 찾아온 선생님에게 사과하는 너의 부모님은 왜 아직 그토록 젊은가? 장례식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다가, 그곳에 가서 너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으면 또 얼마나 후회하고 스스로를 미워했을까 싶다가, 그러다 문득 너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지곤 했다. 살아있을 때 니가 했던 말을 기억해 내고, 내가 너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을 상상해 보았다.
희곡 <소년B가 사는 집>의 대환의 독백 앞에서 어김없이 눈물이 나는 것은 나의 삶도 후회 위에 얹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밤새 복기를 하고 또 해봐도 돌릴 수 없는 실수의 누적, 그 위에 내 지금의 삶이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후회는 과거를 바꾸지 못한다. 그럼에도 자꾸만 후회를 하는 것은 이렇게 후회를 하고 과거를 다시 조립하다 보면 어쩌면 나의 미래에 이 후회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환은 전혀 모르는 버스 정류장의 할머니에게 과거의 죄를 소리 내어 고백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독자는 기대하게 된다. 어쩌면 대환에게. 중학교에 가서 처음 사귀었던 친구를 죽게 했던 대환에게. 살인자이지만 모범수였던 대환에게. 그동안과 다른 미래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노력한다면, 그 후회에 끝끝내 버티면서 머무른다면, 후에 쌀알만큼이라도 덜 아파하는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더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조금 덜 후회하는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을 붙잡고 다시 대환을 본다.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병원에서 집까지 돌아온 스무 살의 대환. ‘무서웠지만 도망가지 않았다’고 말하는, ‘왠지 견뎌야 할 것 같았다’고 말하는, 후회스러운 스스로의 과거를 견디는 대환.
앞으로도 나는 결국 또 누군가를 잃을 것이고,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에서 내가 다 하지 못한 일들을 생각하며 후회할 것이다. 그렇다.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삶이 아주 싫지만은 않은 것은 아마도 바꿀 수 없는 과거와 실수의 무덤 위에 서 있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이 후회와 애도가 어쩔 수 없이 앞으로도 존재하리라는 것을 아주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의 내가 아무 갱신 없이 또다시 누군가를 잃는다고 해도. 그 미래의 나는 대환의 어머니처럼 ‘불행은 원래 누구에게나 똑같이 이유 없이 왔다가 이유 없이 가는 거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될까, 자문해 본다. 적어도 오늘의 내가 주변에 조금 더 다정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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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출처: 이보람, <소년B가 사는 집>(걷는 사람, 2019)
이오진
호랑이기운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쓰고 무대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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