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수
쉽게 기억되지 않을 법한 <힐마운트 더퍼스트 센트럴포레 로얄그랜드 스타파크 위례시티>이태린 연출, 2025. 6. 17~6.25, TINC(구 명성교회)라는 긴 공연 제목은 이 연극이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에 관한 이야기일 것임을 짐작케 한다. 이머시브 형식을 표방한 이 연극에서 관객들은 모델하우스 방문객의 지위로 입장하게 된다. 그리고 연극의 첫 장면, 전세를 전전하던 고등학교 국어교사 최선욱이 운 좋게 ‘북위례 힐마운트’ 아파트청약에 당첨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 관객들은 그와 함께 예비입주자가 된다. 일산에 거주하는 선욱이 위례로 이주해야 하는 퍽 쉽지 않은 듯한 상황 따위는 고민되지 않는다. 정직한 노동만으로는 결코 내 집 마련을 꿈꿀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곳이 어디든 청약은 일단 무조건 되고 볼 일이기 때문이다.
마치 아파트 단지를 연상시키듯 세로가 긴 네 개의 탑이 세워진 공간 속에서 관객들은 극장 이곳저곳을 이동하며 아파트가 지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목격한다. 거대한 기중기와 포크레인이 터파기에 한창인 건설현장 이미지가 투사되고, 아파트 골조와 토목공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미니어처의 조립으로 재현된다. 한층 한층 올라갈 아파트를 상상하며 선욱은 들떠있다. 연극은 선욱과 관객들이 예비입주자 단톡방에 가입하게 되면서 ‘로또청약’ 서사로부터 한 발 나아간다. 더 이상 전세를 전전하지 않아도 되는 선욱의 행복감의 자리는 가장 영리한 재테크 수단이자 중산층의 구별짓기 수단이 된 아파트를 향한 집단의 욕망으로 대체되며 갈등이 본격화한다.
QR코드로 안내된 단톡방에 관객들이 핸드폰을 이용해 입장하면 ‘북위례 힐마운트’의 예비입주자들이 맵핑 프로젝션으로 등장한다. 예비입주자들은 집단지성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나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한 전투력으로 무장한 상태다. 그들은 아파트 외관 도색 컬러 변경을 위한 민원제기를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맞닿은 옆 단지 환풍기 시설 위치를 두고 단지 간 격렬한 논쟁에 참여하며, 집값 담합을 위한 행위 및 악성 민원제기에도 앞장선다. 관객들은 일련의 소동에서 동의서를 작성하거나 전자투표에 참여하면서 연극적 상황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다. 세련되고 친절한 모델하우스 직원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이리저리 이끌리며 요구하는 동의들을 무심코 거듭하다 보면… 아차! 나의 분별없는 행동이 집단지성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이기심에 유용한 들러리였음을 깨닫게 된다.
집단지성은 구성원들의 다양성과 독립성이 전제되고 다양한 시각과 가치에 대한 존중이 있는 조건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이 단톡방에서는 소수에 의해 의견이 쉽게 획일화되고, 특권화된 의견에 대한 반박이나 이견 제기는 빈번히 조롱당한다. 익명성을 보장하는 단톡방은 선동과 광기를 위해 최적화된 세팅이다. 아직 채 지어지지 않은 아파트를 두고 오로지 자산상승에만 눈먼 사람들의 대화는 실제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채집된 수만 건의 대화를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 해 구성된 것이라 하는데, 자본아파트에 완벽하게 굴종한 모습은 그 과장됨에 실소가 나면서도 너무나도 현실적인 탓에 공포스럽기마저 하다. 기실 아파트를 둘러싼 논쟁은 줄곧 있어 왔지만, 이제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란 현대적이고 세련된 삶의 방식이라는 사회적 우월감으로 다양한 삶의 가치를 획일화하는 기제이자 부를 대변하는―특히나 서울 신축 아파트는 상류사회의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나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공연의 클라이막스는 ‘북’위례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자체 명칭공모를 하게 된 사건과 관련된다. ‘북’위례 어감을 문제제기한 입대의 대표는 마치 중립적인 언어를 신중히 골라내려는 듯 모호하고 에두른 방식으로 ‘북’이란 명칭을 빼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리 아파트에 한 치의 오점도 남길 수 없다는 듯 이에 발 빠르게 동의하는 입주민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가장 뿌리 깊은 이념적 이데올로기마저 가뿐히 넘어설 수 있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아파트임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채집된 날 것의 대화들이 현기증을 자아낼 만큼 쌓여가던 연극은 마지막에 이르러 다소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추락 사건으로 브레이크가 걸린다. 하지만 아파트 이데올로기는 이 충격적인 비극마저도 발 빠르게 기념비를 세워 영웅화한다. 결국 일련의 소동과 선동 끝에 낙점된 ‘힐마운트 더퍼스트 센트럴포레 로얄그랜드 스타파크 위례시티’라는 괴상한 명칭은 아파트 이데올로기 세력을 과시하기에 충분하다. 아파트는, 얼죽신은, 이데올로기이자 종교이며 유토피아가 되었다.
이제 이 유토피아를 지켜내기 위해 단톡방은 또다시 시끄러워질 것이다. 외부인 통행을 완벽하게 막기 위해 스크린도어가 건의되고, 놀이터에서 입주민이 아닌 어린이를 가려내는 방법들이 고민되며, 적정 매도가격을 리딩하는 입주민들의 선동이 있지 않을지 쉽게 예상해보게 된다. 외부세계와의 완벽한 단절만이 곧 안전하고 평화로운 유토피아로 간주되는 새로운 얼죽신 트렌드와 아파트 이데올로기를 수호하려는 갖가지 선동에 서글픔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리뷰를 쓰는 내내 연일 서울 아파트값의 고공행진이 보도되고도 있다― 청약 당첨 한방으로 신축 아파트에 입성하면 내 인생도 좀 달라지지는 않을지, 또는 저 세계관에 동의하게 되지는 않을지 생각해 본다. 극장을 나오며, 윤수일의 ‘구축’ <아파트>의 존재감을 완벽히 밀어낸 로제의 ‘신축’ <아파트>가 입에 맴돈다. “아파트 아파트~” 일단 주문을 외듯 신나게 외쳐라도 보자.
남지수
연극을 통해 경험하고 배운 것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글을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