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기

서울문화재단이 웹진 <연극in>의 잠정 휴간을 발표1했습니다. 폐간대책위원회의 공개질의서2에 이미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지만, “최종 잠정적 휴간이라는 어려운 결정에 이르게 된 맥락적 사유” 중에 납득 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문제 제기 이후 채 이틀도 되지 않아 1,200여 명에 이르는 분들이 연대 서명에 참여해 주셨고, 그 뜻을 모아 서울문화재단에 공개질의서를 보낸 지 벌써 2주일이 다 되어갑니다. 왜 우리는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한 것일까요? 응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처음에는 하나의 매체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멈춰 세운 서울문화재단의 몰이해에 분노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는 7월 오픈한다는 ‘스파크(Seoul Portal of Artwork Certified, SPAC)’가 웹진 <연극in>의 기능과 역할을 일부 수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라는 내용에 좀 더 주목해 보았습니다. 저는 ‘C’를 미심쩍게 바라봅니다. ‘Certified’는 ‘보증된’, ‘공인된’이라는 의미로 풀이되지요. 오직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창작지원사업 선정작만을 다루면서 “보증되고 공인된 예술작품”의 포털 사이트를 자임하는 서울문화재단의 이 행태를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예술은 누가 어떻게 보증하고 공인하는가

조금 다른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예술이 언제나 그것의 가치,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한 믿음과 함께 만들어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개개 작품이나 예술가의 가치를 규정하고 평가하는 주체, 그리고 그것이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을 만드는 주체는 누구일까요? 당연하지만 그것은 누가 독점하고 싶다고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느 극장의 라인업을 보고 주목해야 할 예술가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SNS의 글들 속에서 보석 같은 작품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어떤 축제의 슬로건을 통해 동시대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인하는가 하면, 연말 베스트 선정작들의 면면에서 한 해의 공연들을 돌아보기도 하지요. 비평과 매체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공의 예술 정책은 말할 것도 없지요. 실상 공공 기관―제도는 어떠한 예술에 누가 어느 만큼의 가치를 부여하느냐와 관련해 가장 막강한 권위를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예술 창작을 위한 공적 지원이 없다면, 현장의 모든 활동 자체가 엄청난 타격을 받을 테니 말입니다.

권한을 나누어 갖기

웹진 <연극in>은 2012년 창간해 지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극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왔습니다. 2-3년 정도 임기에 따라 새로운 편집위원회가 꾸려졌고,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맞춰 매체의 방향성도 달라졌지만, 현장의 예술가와 독자들이 함께 만드는 매체를 표방했지요. 말하자면 누가 예술의 가치,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내는가와 관련해, 그 주체를 수많은 시민들로 확장해 온 것입니다. 소수의 정해진 필자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가 누구의 관점으로 전해지면 좋을지 고민했고, 좋은 작품에 대해 논하는 것을 넘어 연극 창작을 둘러싼 다양한 사유와 실천들을 기록하려 했습니다(물론 “좋은” 작품이란 것이 누구의 어떤 기준으로 “좋은”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이 글에서는 다 다루기가 어려워 뒤에서 조금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런데 ‘스파크’라니요? ‘스파크’는 절대로 웹진 <연극in>의 기능과 역할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정확히 그 반대가 되겠지요. 누구든 예술의 가치를 말하고 그에 대한 믿음을 만들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여럿이 나눠 가졌던 권한을 모두 거둬들일 테니까요. ‘스파크’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만을 ‘보증되고’ ‘공인된’ 것으로 이름 붙이면서, 안 그래도 막강한 서울문화재단의 권위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요.

거버넌스 중단이 의미하는 것

저는 이것이 웹진 <연극in>의 잠정 휴간에 대한 과도하거나 과민한 해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몇 년간 서울문화재단의 행보가 이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문화재단은 웹진 <춤in>의 휴간을 결정했고, 예술청 공동운영단을 해체했으며, 서교예술실험센터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예술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다양한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새어 나올 여지가 있는 모든 창구를 폐쇄해 버리고 있는 것이지요.

거버넌스가 실패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합니다. 민과 관의 협업을 뒷받침할 만한 제도를 충분히 보완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 구축의 과정과 방식, 혹은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협의가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시간이 더디 걸리더라도 토론과 숙의를 거쳐 개선해 나가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미처 그러한 시도도 해보기 전에, 실패라면 어떤 실패인지, 아니, 사실상 실패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보기도 전에, 서울문화재단은 사업 구조 변경과 예산상의 문제 등을 들어 일방적인 중단을 통보합니다.

애초에 거버넌스는 왜 도입되는 것인가요? 일방향적인 하달식의 예술 행정이 포착하지 못하는 현장의 문제가 있기 때문 아닌가요? 예술인권리보장법 제3조 5항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술인은 국가기관등의 예술 정책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고 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권리를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나요?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가

우리는 웹진 <춤in>을 통해 예술가들이 작업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그 고민이 어떤 시도로 구현되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예술청의 여러 프로젝트를 만나면서는 예술 창작의 씨앗이 되는 아이디어에서부터 그것의 공유까지, 예술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연대·연결·확장을 배우기도 했지요. 10년이라는 역사를 쌓아온 서교예술실험센터는 어떤가요. 일상과 사회를 연결하는 예술가들의 섬세하고 촘촘한, 너무나 많은 작업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움직임들이 모여서 “좋은”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재구성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떠한 환경적 변수를 고려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주어진 조건을 창의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러한 것들은 예술창작지원금을 받아 완성하는 한 편의 작품이 목표로 하는 성과와는 다른 방식으로 예술의 가치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들을 멈춰 세운다는 건 단순한 몰이해가 아닙니다. 그 기능과 역할을 정확히 이해했기 때문에 실행할 수 있는, 의도가 분명한 행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보증하고 공인하는 활동을 그만하라는 것 아닌가요? 그 권한은 오직 서울문화재단만이 가지겠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프레임을 잠자코 받아들인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제 예술가는 그저 서울문화재단이 쳐놓은 ‘스파크’라는 울타리 안에서 작품만 만들면 됩니다. ‘서울예술상’을 바라보면서 ‘K-예술’을 선도하는 성공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정진하면 되는 것이지요. 서울문화재단은 권한을 독점하고, 사업 성과를 홍보하면서도 예술가를 길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와 미투 운동을 지나온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권한을 가진 소수의 승인을 바라고 ‘작품만’ 만들었을 때 예술가가 어떤 위기를 마주하게 되는지를요. 그것이 예술 현장과 우리 사회를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요. 그러니 서울문화재단은 응답하십시오. 왜 이 모든 것들을 멈춰 세우고 있나요?

*** 그런데 막상 이렇게 문제 제기를 하면서도, 저는 다시 서울문화재단의 실체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웹진 <연극in>의 기사 하나를 만들기 위해 서울문화재단의 담당자 분들이 얼마나 깊은 애정과 헌신으로 함께해주셨는지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곳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그 어떤 것도 그저 예술가들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함께 해준 시민들, 그리고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서울문화재단 담당자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렇다면, 다시 묻습니다. 이 모든 사안에 대해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할 ‘서울문화재단’은 누구인가요?

김슬기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일상과 연극, 연극과 사회가 만나는 방식 및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공연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하며 이론과 실천을 잇는 연구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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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s://www.sfac.or.kr/site/theater/ex/bbs/View.do?pageIndex=1&cbIdx=1017&bcIdx=136696&tgtTypeCd=&searchKey= ↩︎
  2. https://docs.google.com/document/d/1Fex9PZKCybIjRMGLdQt7uBYvLok2nbpz4QFukHxQ_8g/edit?tab=t.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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