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란
모두예술극장을 찾는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모두예술극장은 장애예술인의 창작환경을 만들고 장애인의 예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023년 10월 개관한 국내 첫 ‘장애예술 공연장’이다. 공연 시작 전 로비에서는 장애인 관객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관객, 연극인 관객들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최근 장애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다. <위태로운 움직임Precarious Moves>마이클 투린스키 기획·안무·텍스트·가사, 안나 그레젤 제작, 모두예술극장, 2025.5.1.~5.3.은 오스트리아의 신체장애 예술가 마이클 투린스키Michael Turinsky의 일인 퍼포먼스이다. 장애의 몸과 움직임에 대한 자기 성찰적 이야기를 장애 정치와 미학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사회주의는 휠체어를 타고서만 올 수 있다
무대 바닥에는 하얀 비닐 매트가 깔려있고, 흰 배경막 롤이 내려져 있다. 단순한 무대이다. 흰 배경막은 자막으로도 활용되고, 장면전환을 위한 배우의 등퇴장을 가리는 막으로도 활용된다. 공연이 시작되면, 배경막 뒤에서 바퀴가 달린 카트를 밀면서 퍼포머가 등장한다. 휠체어를 탄 퍼포머이다. 흔들리는 카트 위에서 화분과 유리병이 달그락거린다. 쏟아지면 깨질 것 같은 화분과 유리병을 의도적인 소품으로 선택했다. 위태로운 등장이다. 그러나 퍼포머는 명랑하다. “하이!” 반갑게 인사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온 소품을 소개한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토닉워터예요. 물론 저는 진을 더 좋아하지만. 근육 유지에 도움이 되니까요.” 가벼운 농담에 관객이 함께 웃는다.
“아, 잠깐만요. 금방 다시 돌아 올께요.” 그는 퇴장했다가 이번에는 종이 한 장을 들고나온다. 이번 작품을 위해서 공산주의를 향한 연애편지를 써볼까 했다고 말이다. 자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당선언』에, 특히 ‘실제 운동real movement’으로서의 공산주의에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움직임movement에 제약이 있는 몸’을 뜻하는 장애disability, 그리고 공산주의의 ‘운동movement’을 단숨에 엮는다. 한없이 가볍게, 마치 농담처럼. 그러나 그의 말은 느리고 부정확하다. 관객은 그의 말에 더 집중한다. 그리고 그의 생각의 흐름에 점차 동참하게 된다.
그는 농담을 이어간다. 편지를 쓰는 일은 너무 유행이 지난 일이고, 대신 트위터를 써볼까? 삐, 삐, 삐, 부저가 울리고 중단. 그럼 스페인의 생태사회주의 철학자 호르헤 리히만의 말을 인용하면서 공연을 시작해볼까? “사회주의는 자전거를 타고서만 올 수 있다.” 저는 이렇게 말할게요. “사회주의는 휠체어를 타고서만 올 수 있다.” 우, 우, 우, 스스로 효과음을 내면서 중단. 괜히 아는 척하다 낭패 볼 일 있나요? 저는 장애와 안무에만 집중할게요. 지적인 유희가 현란하다. 아찔할 정도다. 관객들은 이미 투린스키에게 꼼짝없이 매료당한다.
‘장애’ 혹은 ‘크립’에 대한 질문
투린스키는 안무가이다. 그리고 철학자이다. 기존의 장애의 몸과 움직임에 대한 전복적 태도로 ‘크립 안무crip choreography’라는 자신만의 용어를 만들어 작업해오고 있다.1 이 공연에서도 묻는다. “장애인disabled 또는 크립crip이라는 정체성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안무와 연결될까요?” 이 장면에서, 퍼포머는 작은 상자를 하나 들고나와서 쏟는다. 기차놀이 장난감 세트의 나무 조각들이 쏟아진다. 장애 혹은 크립에 대한 질문은 나무 조각들을 맞추면서 이어진다. 유아들의 소근육 훈련 혹은 재활훈련에서 보아오던 끼우고 맞추기 활동이다. 퍼포머는 온 신경을 집중해 나무 조각을 조립한다. 잘 움직여지지 않는 손은 반대쪽 손이 붙잡아서 방향을 조절한다. 고도로 집중하지만, 몸은 통제되지 않는다. 그대로 노출한다. 무대 위에는 장애인의 움직임과 이동을 보조해주는 활동보조원도 없다.
“저에게 ‘크립’이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저항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그동안 ‘크립’이라는 말은 금기시된 용어였다. ‘신체적·정신적으로 제약 있는 몸’이라는 뜻을 가진 ‘장애인’이 중립적이고 공식적인 표현으로 사용되는 반면 ‘크립’은 비하의 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말로는 ‘불구’ 혹은 ‘병신’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 공연의 한국어 자막에도 ‘장애(인)’과 달리 ‘크립’은 영어 표현 그대로 ‘크립’이라는 말로 신중하게 번역(?)되었다. 다른 한편 성소수자 운동에서, 마찬가지로 비하의 의미를 가졌던 ‘퀴어queer’가 급진적인 의미로 재전유되어 일상적·이론적 용어로 정착된 것처럼, ‘크립’ 또한 저항적 의미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2 그러나 이 공연에선 그런 입장이 채택되지는 않았다.
질문을 던지는 투린스키의 몸짓에서 순간, 공옥진의 춤이 겹쳤다. 공옥진의 일인 창무극, 일명 ‘병신춤’은 1970·80년대 힘없고 억눌린 자들의 슬픔을 해방적 웃음의 에너지로 풀어주며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장애인을 비하한다는 비난에 부딪쳐 춤추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3 결국 무대에서 공옥진의 병신춤은 더 볼 수 없게 되었다. 공옥진의 춤이 지워진/삭제된 무대에서 장애의 몸에 대한 성찰의 장 또한 같이 지워졌다. 장애/비장애(인)의 문제는 이분법적 구분의 분리된 영역에서, 개별적·의료적·정책적 대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투린스키가 자신의 안무를 ‘크립 안무’라는 저항적인 명칭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오랫동안 부정된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크립 안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병신춤’이다.
‘크립’에 대한 질주하는/횡단하는 상상력
안무가로서 투린스키는 몸과 움직임에 대해서 고민한다. “어떻게 내 몸짓이 당신의 몸짓과 만날 수 있을까요? 제가 당신을 지나치게 침범하지 않고, 당신도 나에게 과하게 개입하지 않은 채로요.” 퍼포머는 잠시 객석을 향해 요청한다. “이 종이로 종이배를 접는 방법을 아는 분이 계신가요?” 『공산당선언』이 적힌 종이를 가리킨다. 관객 한 명이 손을 든다. 그리고 무대에 내려선다. 이전의 퍼포머의 움직임과는 다른 정확도와 속도로 종이배가 접힌다. 감사의 박수와 함께 관객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퍼포머는 입으로 종이배를 옮겨 접시에 담긴 물 위에 띄운다. 그리고 조용히 숨바람을 분다. 종이배가 움직인다.
다른 속도에 대한 감각의 환기는 2장에서 극대화된다. 강렬한 붉은 조명과 함께 전자음악의 반복적인 리듬이 무대를 채운다. 그리고 퍼포머는 빨간 포르쉐 유아용 전기자동차를 타고 등장해서 무대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서서히 속도를 높여 무대를 빙빙 돈다. 최대 시속 13km의 속도다. 물론 이 속도는 퍼포머가 스스로 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아용 전기자동차는 보호자가 리모컨으로 조정할 수 있다. 퍼포머가 운전을 즐기면서 부르는 노래 또한 음정과 발음에서 기계의 도움을 받았다. 흡사 포스트휴먼 장애담론에서 말하는 기계적인 보철기구를 통해 증강된 신체능력을 가지게 되는 기계인간, 사이보그의 모습도 연상된다.
“저는 운전하고 있어요. 저는 기어다니는 사람이에요. 저는 구르는 사람이에요. 저는 누워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자신의 장애 정체성을 담담히 드러내는 노래는 한 편의 시처럼 관객들의 마음속을 깊이 파고든다. “저는 인간이에요. 저는 할 수 있어요.” 마지막 모습은, 슈퍼카를 탄 슈퍼맨의 모습이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의 두 눈이 밝혀지고, 어둠 속으로 서서히 후진하면서 퇴장한다. 2장 내내 강한 전자음악이 극장 전체를 진동시켰다. 시와 같은 노래의 정서적 울림이 아니었다면 다소 어리둥절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3장에서 퍼포머는 다시 맨몸으로 무대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몸통을 돌리고, 팔을 흔들고, 상체를 일으키고, 일어선다. 동작은 단순하다. 두 팔의 가동범위가 다르고, 일어서서 걷는 모습도 불안정하지만, 이것이 투린스키의 춤이다. 이 공연에서 온전히 춤에 집중하는 장면이다. 마지막 15분 정도의 시간을 오로지 몸의 움직임만으로 채운다. 교정되지 않은 그대로의 몸을 보여준다. 기계-슈퍼맨의 모습도, 무언가를 극복하고 일어서는 ‘슈퍼불구’의 모습도 아니다.4 그저 바람이 불어오면 흔들리는 종이배처럼, 한 줄기 시원한 바람처럼 무대와 객석을 가로지르는 움직임만이 있을 뿐이다. 이 공연의 1장은 나무, 2장은 숲, 3장은 바람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이 공연에서, 투린스키는 장애예술의 유쾌한 질주를 보여주었다. 기존의 넘어설 수 없었던 경계를 횡단하며 질주하는 모습을 통해 장애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김옥란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 마이클 투린스키 홈페이지(https://www.michaelturinsky.org/en/bio.html, 검색일:2025.05.10.) ↩︎
- 이와 관련하여 김도현은 장애인 이동권투쟁 초기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버스를 타자>(박종필, 2002)에 담긴 장애인이동권연대의 박경석 공동대표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래, 우리는 병신입니다. 병신이라도 당당한 병신이길 원합니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오월의봄, 2019, 293쪽. ↩︎
- 공옥진의 생애사와 ‘병신춤’에 관해서는 김현정, 「공옥진의 일인창무극 연구」,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28~50쪽; 공옥진 춤의 한국연극사적 계승에 관해서는 김옥란, 「재담의 연극적 전통과 엄인희 극작법」, 『한국문학연구』 60,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9, 261~263쪽. ↩︎
- 앨리슨 케이퍼는 장애인이 하기에 너무 어렵다고 여겨지는 어떤 위업을 달성하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 정형화된 장애인 서사를 ‘슈퍼불구’ 서사라고 지칭하며, “슈퍼불구의 이야기는 장애를 각고의 노력과 인내를 통해 극복해야 할 무언가로 묘사하는 장애의 개별적/의료적 모델에 크게 의존한다.”(앨리슨 케이퍼, 이명훈 역,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오월의 봄, 2023, 355쪽)고 비판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