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란
극단 동의 신작이 올라갔다. 공연 포스터에는 철판 위에 쇠못으로 새긴 ‘제비심장’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연극 <제비심장>김숨 소설원작, 강량원 각색·연출, 예술공간 혜화, 2025.4.3.~4.13.은 김숨의 소설을 극단 동의 몸의 언어로 다시 쓴 공연이다. 극단 동은 배우의 신체언어를 중심으로 작업해온 극단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배우의 신체행동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20미터 높이 허공, 폭 40센티의 비좁은 발판 위에서 작업하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용접 불꽃이 쏟아져 내리듯 수많은 말들이 무대 공간을 할퀸다. 그렇다고 함성은 아니다. 구호도 아니다. 이 작품의 노동자들은 니체와 바슐라르와 쉼보르스카의 언어로 말한다. 철학자와 시인의 언어로 말한다. 낯선 노동소설, 노동연극이다.
강철심장, 제비심장
무대는 철상자 안이다. 철상자는 조선소에서 만드는 철배의 조각이다. 2, 3톤 무게의 철판 수십 장을 이어 붙여 큰 철판을 만들고 짜맞추어 높이 20미터, 무게 60톤의 철상자를 만들고, 그 철상자들을 조립해서 연결하면 철배 하나가 만들어진다. 노동자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철상자 속에 들어가 일을 한다. 발판공, 용접공, 샌딩공, 포설공, 단열공, 망치공 그리고 페인트칠을 하는 도장공들이 한데 얽혀 허공에 설치한 비좁은 발판과 계단을 오르내리며 일을 한다. 쇳가루, 녹가루, 유리가루 분진이 부유하고 내려 쌓이는 공간이다. 철상자 하나에 3천 명의 노동자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닌 하청에 재하청인 유령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베트남, 필리핀, 방글라데시, 미얀마, 우크라이나와 같이 먼 데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불법 노동자들이다. 제비처럼 먼 데서 날아온 이들이다. 녹슨 철바구니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대관람차가 있는 남쪽나라 울산조선소 노동자들 이야기다. 김숨 작가는 울산 출신 작가이고, 소설 <철>문학과지성사, 2008에 이어 <제비심장>문학과지성사, 2021에서 조선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곳 철상자는 거대한 철배의 심장에 해당하는 엔진실이다. 그러나 무대 세트는 단순하다. 무대 가운데에 사각 프레임의 구조물이 놓여 있을 뿐이다. 사각 구조물은 바닥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천장에 매달려 있다. 건드리면 흔들리고, 배우들이 기댈 수도 없다. 그런데 가운데 넓은 무대는 비워두고, 사각 구조물과 극장 벽 사이의 좁은 통로만을 연기공간으로 활용한다. 사각 구조물 안쪽은 철상자의 빈 공간이다. 망치와 못과 스패너와 손과 얼굴들이 떨어지는/추락하는/날아다니는 공간이다. 중심 공간은 죽음의 공간이다. 인물들은 결코 중심 공간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배우들은 작업용 사다리와 그네에 올라 벽에 붙어 있거나, 용접을 하면서 바닥에 엎드려 있을 뿐이다.
배우는 단 4명—배선희, 신소영, 유은숙의 여배우 3명, 강세웅의 남배우 1명이 등장한다. 조선소 여성 노동자들 이야기가 중심이다. 소설원작의 관점을 여배우 중심의 공연으로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혜숙유은숙 배우은 용접공 최씨강세웅 배우의 불 감시자이다. 용접 불티가 다른 인화성 자재에 옮겨붙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혜숙은 불이 무섭다. 불을 보면 심장이 ‘제비심장’만큼 오그라든다. 조선소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강철심장을 가진 것은 아니다. 겁에 질린 제비심장을 가진 사람들이다. 여자1배선희 배우과 여자2신소영 배우는 도장공이다. 대부분 폐경했거나, 독한 시너 냄새 때문에 일찍 폐경이 온 50대 여성들이다. 여자1배선희 배우은 조선족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분희다. 분희는 언젠가 TV에서 인간이 되고 싶은 천사에 대한 영화를 보고 천사에 대해 생각한다. 천사가 자기 곁에서 지켜보는 시선을 느낀다. 여자2신소영 배우는 우즈베키스탄 남자와 살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미애다. 미애는 남자의 아내 올가를 위해 기도한다. 그 여자를 위해 기도하면 이상하게도 나를 위해 기도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녹슨 못과 거친 망치질 소리가 울리는 조선소 이야기가 아니라 예리한 철심으로 쓴 것 같은 시적 대사들이 흘러나온다. 배우들은 그네에 올라 작은 붓으로 페인트를 칠하고, 꼼짝없이 엎드려 용접을 하고, 경광등을 들고 마비된 채 대사를 한다. 움직임을 절제하고, 시적 울림이 큰 대사들을 전달하는 말에 집중하고 있다. 철상자 속에는 끊임없이 무언가 떨어진다. 망치, 못, 페인트, 발판, 안전모, 사람, 얼굴, 손…. 그러나 공연은 “하얗게 하얗게 겁에 질린 망치”, “깃털 한 가닥 없이 날고 있는 못 열 개”라고 말한다. 조선소의 하루살이 노동자는 유령이지만, 망치, 못, 철판, 페인트통, 전동드릴, 그라인더, 용접기, 쇳가루, 녹가루, 유리가루, 전선줄, 가위는 있다고 말한다. 관객에게 친절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공연이다. 그러나 모든 공연이 친절할 필요는 없다. 불친절한 언어 속에서 추락하고 부서지는 세상의 조각들을 이어붙이고 있는 누군가의 흔들리는 무쇠 손을 본다. 용접공 무쇠손 최씨는 손을 떤다.
노동자의 몸, 천사의 몸
강세웅 배우는 용접공 최씨 외에 첫 장면에 나오는 ‘사람’ 역할과 마지막에 나오는 ‘천사’ 역할도 맡고 있다. 공연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반복해서 언급되는 또 다른 노동자가 있다. “그 여자 남편은 아직 냉동실에 있어.” 샌딩공 한 명이 철상자 안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았다. “무재해 무사망 392일”의 숫자로 카운트되어서는 안되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첫 장면의 누군가와 마지막 장면의 천사는 어둠 속 한 줄기 빛 안에서 제 몸을 다 드러내지 않는다. 강세웅 배우의 납작 웅크린 몸은 용접공 최씨의 몸, 샌딩공의 몸, 천사의 몸을 겹쳐 놓은 것 같다. 높은 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노동자를 천사의 시선으로, 천사를 노동자의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와 천사를 연결하고 있는 것은 ‘몸’이다.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천사에게, 분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몸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천사에게 몸이 없는데, 눈동자가 없는데 어떻게 인간을 볼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묻는다. 그리고 분희는 마침내 인간이 된 천사를 본다. 분희는 철상자에 혼자 남겨졌고, 공장의 철문은 닫혔고, 밤이 온다. 작년 여름 무더위에도 선미는 혼자 철상자에 남겨졌다. 혜숙 또한 철상자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혜숙은 선미가 여전히 어딘가 철상자 안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선미와 숨바꼭질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샌딩공의 죽음은 선미의 죽음과 분희의 죽음과 이어진다. 천사의 죽음과 이어진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과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몸은 다시 사물과, 동물과 연결된다. 사물로서의 몸―“어디서부터 내 손이야? 어디서부터 망치야?” 노동자의 손은 망치와 연결되어 있다. “내 손이 망치를 들고 있네. 망치가 내 손을 놓아주지 않네. 망치가 내 손을 데리고 달아나네.” 외친다. 동물로서의 몸―혜숙은 들리지 않는 귓속에서 밤새 유리창 창문을 두드리다 죽은 나방 소리를 듣는다. 자옥공연에서는 여자1 배역이 자옥 역할을 함께 맡고 있다.은 몸이 아파 울고 있을 때 앵무새가 다가와 깃털을 하나 뽑아주었다고 말한다. “새가 깃털 하나를 주는 건 전부를 주는 거다.” 혜숙의 나방과 자옥의 앵무새는 날지 못한다. 인간이 된 천사도 날지 못한다. 그러나 까마귀들은 녹슨 못을 물고 난다. 망치는 손을 데리고 난다. 천사의 날개는 망치가 되었다. 그 연결 속에 몸의 세계가 함께 한다.
좁은 철구멍 속으로 몸을 밀어넣는 용접공의 자세, 스카프로 머리를 꽁꽁 싸매서 쇳가루 분진을 표현했던 배우들의 몸, 에어호스를 짊어지고 무거운 작업화로 못처럼 박힌 배우들의 움직임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 심장을 가진다는 것, 손 대신 망치가 주체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 모두 무하마드로 불리는 외국인 노동자들, 고공농성 크레인에 올라간 노동자를 기억하며, 철상자 안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공연의 마지막에 혜숙은 기도를 올린다. “다치지 마. 아프지 마.”
천사의 몸이 던지는 질문은, 노동자는 더 신에 가까워졌고, 신은 더 노동자에 가까워졌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계급보다 더 먼저. 망치와 까마귀와 제비와 앵무새와 천사가 모두 함께 있는 시적 세계, 이는 고통과 죽음 바로 앞에 있기에 노동자들 스스로 숭고해지는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제비심장>에는 이들이 함께 부르는 기도 소리가 있다.
김옥란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