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구
앵커 그러니까 “이제 한화만 잘하면 된다”,1 어제 나온 소감 중에서 이 말이 가장 좋았다는 거죠?
패널 그렇습니다. 오늘 중계방송에서는 ‘이제 잘 치기만 하면 된다’ , 이렇게 나왔더라고요.
앵커 이제 잘 치기만 하면 된다!
패널 네. 사실 한화가 투수진은 좋거든요. 점수 내주는 것만 생각하면 리그 4위예요.
앵커 가을 야구 가도 되겠네요.
패널 맞아요. 그런데 타격은 10위…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이럴 수는 없는 거죠.
앵커 올해는 달라질 거라고 그렇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패널 약속이야 매년 했고요.
앵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한화 이글스 얘기는 좀 있다가 다시 해보기로 하고요. 어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파면한 이유 중에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권력’이란 말이 있었어요. 이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던데요.
패널 그거는 사회계약설이라는 게 있어요. 들어보셨을 텐데요.
앵커 고등학교 다닐 때 사회 시간에 배웠죠.
패널 맞습니다. 계몽주의 시대 유럽에서 왕의 권한은 신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이란 게 있잖아요. 군주주권 이론이죠. 이걸 반박한 국민주권 이론의 토대가 되는 학설이에요. 가령 홉스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데, 국가가 만들어지기 이전을 ‘자연 상태’라고 불러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상태죠.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국가’를 만드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주권을 위임하는 계약을 맺었다는 거죠. 일종의 위임계약이죠. ‘신임’이 믿고 맡긴다는 말이잖아요.
앵커 아, 그러니까 자연 상태에서 원래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 그러니까 대통령이나 국회에게 주권이라는 권력을 믿고 맡겼다, 이런 말이군요.
패널 맞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 물건을 맡길 때는 잘 맡아달라는 뜻이 담겨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회계약설은 자연스럽게 저항권 사상으로 이어지는 거죠.
앵커 그러니까 주권도 잘 맡아달라고 국가에 믿고 맡겼다, 그런데 그 신임을 배반했다, 그런 말이군요.
패널 맞습니다. 믿고 맡긴 뜻을 배반하였다면 이를 다시 찾아오는 것, 즉 ‘파면’이 당연 하다는 것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권력’이라는 말 속에 담겨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단지 국가권력에 대해서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고,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조직이라면 크든 작든 어디서나 같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아, 그게 그렇게 되나요?
패널 그렇습니다. 구성원의 뜻이 존중되지 않는 조직 어디서나 ‘파면’은 가능한 거죠. 꼭 수장이 아니더라도요. 자기가 맡은 직분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거죠.
앵커 그게 어디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웃음) 생활세계의 민주주의가 더 어려운 거 아닌가요?
패널 용산만 바뀐다고 될 일은 아닌 거죠. 아무튼 어디에 문서로 규정이 되어있든 되어있지 않든 그런 권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다, 그런 생각을 갖는 게 중요한 거죠. 그걸 깨달았을 때 우리가 ‘계몽되었다’라고 합니다. ‘개몽되었다’가 아니라. (웃음)
앵커 개몽이요?
패널 개꿈이었다는 얘기죠. 4-4, 5-3, 뭐 이런 걸 기대하는 거요.
앵커 그런데 최근 몇 달 동안 우리가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 대한민국이 뭔가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이랄까요.
패널 관료들 말이죠? 최상목이나 한덕수 같은…
앵커 네.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단 말입니다. 헌법재판소가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이 위헌이 라고 결정한 뒤에도, 심지어 대통령이 파면된 뒤에도 임명을 안 하고 있단 말이죠. 그런데 탄핵도, 처벌도 하지 못하고…
패널 맞습니다. 정권이 어느 쪽으로 바뀌든 실질적으로 나라의 운영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관료들이죠. 연극 <당선자 없음>에서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막후에서 역할을 했 던 조선 총독부 출신 관료들을 예로 들어 ‘멸종되지 않은 화석’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화석이라는 거는 숨겨져 있었다는 의미고, 멸종되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모습이 이 정도라고 할 수 있겠죠.
앵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패널 그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헌법이나 법률이 아니라 ‘비공식 가이드라인’이기 때문 아닐까요?
앵커 비공식 가이드라인이요? 그게 뭐죠?
패널 2014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에 작성해서 보고했던 블랙리스트 실행 계획 문서에서 제가 가져온 표현입니다. 공식적인 심사 과정에서 ‘비공식 가이드라인’을 통해 배제하겠다는 계획이었죠.
앵커 그러니까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신지?
패널 관료들이 정부를 운영하는 ‘비공식적인 기준’이 있다는 거죠. 헌법과 법률에서는 허용 되지 않는, 가령 정치적인 거는 절대 안 돼, 이런 거요. 일종의 사상검증이랄까요. 그런 걸 일상적으로, 습관적으로 하는 거죠.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해서 요즘 하는 거는 좀 뭐랄까? 예전에 비하면 큐레이션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더라고요.
앵커 큐레이션요?
패널 네. 그렇게 말하는 고위 공무원도 있더라고요. 하여간 마은혁 후보자도 결국 공산주의자라서 안된다고 사상검증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임명을 안 하고 버티는 게 문화 체육관광부가 그때 했던 블랙리스트, 사실 그때 모든 부처가 하고 있었잖아요.
앵커 그랬죠. 수사결과 다 나왔고, 법원에도 증거로 다 제출됐지만 사실 덮은 거잖아요. 문체부 빼고는…
패널 그때 정무수석실에 있었던 데이터베이스, 결국 그거 못 찾았어요. 전 부처를 관리 하던 DB인데…
앵커 그랬죠. 그런데 민주당 법률위원회가 십 년 전 미르재단 만든 거 가지고 최상목씨 고발했던데요.
패널 그거야,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안 하니까 그런 것 같은데… 정말 끝까지 갈까요?
앵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하여간 아까 얘기로 돌아가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도 ‘반 국가세력’을 척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거였잖아요.
패널 그게 아직 그대로라는 거죠. 대통령이 파면되고 난 후에도… 그리고 그게 한덕수나 최상목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거죠. 대한민국은 공식적인 의사결정 이면에서 ‘비공식 가이드라인’을 통한 의사결정 과정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거죠. 그리고 그게 사실은 구성원의 신임을 배신하는 행위라는 거죠. 어느 조직에서든지요. 저는 그런 뜻으로 읽었습니다.
앵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게 변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변하지 않는다.
패널 맞습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다른 행정부처들도, 다른 조직에서도, 생활세계에서도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다, 그런 생각입니다.
앵커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요?
패널 그렇다고도 볼 수 있죠. 우리가 이번에 배운 것 중에 하나가 절차적 권리 아닐까요? 대통령에게만 보장되는 줄 알았던 절차적 권리, 사실 그게 모두에게 보장되어 있었다는 거잖아요. 우리가 있는 줄도 몰라서 그랬지, 힘들더라도 적절한 절차를 지켜야 한 다는 거, due process of law라는 거를 배웠죠.
앵커 적법절차!
패널 맞습니다. 그게 필요한 거죠.
앵커 그래서 한화 이글스는 오늘도 1-5로 지고 있는데… 류현진이 나와도 안 되는군요. 정말 잘 치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패널 잘 치면 좋죠. (웃음) 그런데 잘 친다는 게 뭘까요? 안타가 많다고 이기는 건 아니거든요.
앵커 그렇죠. 집중력 있게 터져줘야 점수가 나죠.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김기천 배우의 “이제 한화만 잘하면 된다”는 대통령 파면 소감을 듣고, 코로나19 시기 메이저리그가 멈췄을 때 생각이 났어요. 미국의 야구팬들이 야구가 보고 싶어서 한국의 KBO 리그를 보다가, 한화 이글스 팬들에게서 야구 보는 방법을 배웠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한화 이글스 팬들은 팀이 계속 꼴찌를 맡아놓고 야구를 해도 늘 야구장을 찾잖아요. 10점 차로 지고 있어도, 경기장에 비가 내려도, 시즌 꼴찌가 확정되었어도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응원을 하잖아요.
패널 응원하는 팀을 바꿀 수는 없잖아요. 야구를 안 볼 수도 없고. 그건 수십 년 동안 함께 했던 시간을 잊겠다는 건데…… 야구를 못한다고 그럴 수는 없는 거죠. 이기는 건 포기했으니, 안타 하나만 때려도, 1루 한 번만 밟아도 즐거워하는 거죠.
앵커 그래서 한화 팬들에게서는 사리가 나오거나 암세포가 발견되거나 둘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군요. 결국 중요한 건 팬심일까요?
패널 팬심이라기보다는 주인의식 같은 거겠죠. 선수들만 한화이글스는 아닌 거죠. 정치인이나 관료들만 대한민국의 주인이 아닌 것처럼요. 정치나 삶이 야구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요.
앵커 ABS (자동볼판정) 시스템이 이제 거의 자리 잡은 거 같죠?
패널 그렇습니다. ABS가 가장 공정한 판정은 아니겠지만, 심판의 볼 판정에 대한 시비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야구처럼 정부 운영도 그렇게 될까요?
패널 글쎄요. 야구처럼 보는 눈이 계속 많아지면 ‘비공식 가이드라인’은 점차 사라지고 법치 행정이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요?
앵커 그렇게 될까요?
패널 그렇게 돼야죠. 한화가 우승하는 것보다도 쉽진 않겠지만요. 그렇다고 아직 봄인데, 가을 야구를 포기하기엔 이르지 않나요?
앵커 근데 벌써 포기한 것 같은 그 목소리는 뭔가요. 아무튼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사이, 놀라서) 아, 그런데 한화가 9회초 2아웃 이후에 역전했네요. 문현빈 선수가 3점 홈런을 쳤어요.
패널 정말이네요. 연타석 홈런인데요.
앵커 이 선수 지금 가장 젊은 타자 아닌가요?
패널 맞아요. 그런데 설명이 재밌네요. 절실함이 만들어낸 한 방! 이런 날이 있네요. (웃 음)
앵커 즐거운 봄날 되세요. 이제 벚꽃도 피었는데!
이양구
제목이 너무 익숙해서 읽은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던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