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도
자주 가게 되는 극장이 좋은 연극을 많이 하는 곳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돌이켜보면 2010년대에 가장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극장은 남산예술센터(드라마센터)였다. 남산예술센터가 서울예술대학과의 임대차 종료로 문을 닫은 후, 요즘 가장 자주 가는 극장은 아르코예술극장이다. 그런데 아르코예술극장은 2010년대에 자주 가지 않았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극장의 성격과 ‘기획력’ 및 예술감독(또는 전문 극장장)의 존재 유무라고 본다. 창작극의 산실로서 극장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젊은 창작자들을 과감히 끌어들였던 남산예술센터는 단연코 2010년대에 가장 사랑 받았던 공공극장이었다.
서울문화재단은 옛 동숭아트센터 내에 대극장을 리모델링하여 ‘쿼드’라는 이름으로 개관하면서 남산예술센터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 것처럼 떠들었지만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 3월 30일에 역시 서울문화재단이 관리하는 ‘서울연극창작센터’가 새롭게 개관했다. 주로 ‘창작과정’의 활동을 지원하겠다고 건립된 서울연극창작센터의 운영 방안에 대해서는 연극 현장과 공론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안에 두 개의 극장이 새로 생겼지만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남산예술센터가 보여주었던 관객 흡입력이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연극학자는 드라마센터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나
1세대 연극학자 중 한 사람인 유민영은 1998년에 출간한 [근대극장 변천사](태학사)에서 드라마센터 초기 운영과정에 나타난 유치진의 독주에 대해 당시의 정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했다.
연기자들의 이탈에는 재정적 문제 외에도 여러 가지 내부 갈등이 있었다. 가령 당초 결합할 때의 이질적 요소의 혼합이라든가 유치진의 독주 등에 대한 반감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근대극장 변천사], 435쪽.)
드라마센터의 레퍼토리를 신랄하게 비판한 신문 기사들을 인용하기도 했다.
상연 작품 6편 중 재상연 작품이 5편일 뿐 아니라 더구나 그 중의 4편은 드라마센터의 주체세력이라는 구 신협(新協)이 일찍이 상연한 것이었다. 세계연극의 신조에 민감하면서 실험적 의욕을 보여야 할 연극의 전당 드라마센터가 신작을 상연하지 못하고 여러 해 전 신협이 걸어온 발자취만을 뒤따라 가는 것은 어쩌자는 복고 취미일까?(한국일보, 1963.1.6. [근대극장 변천사] 435쪽에서 재인용.)
그러면서 국립극장처럼 레퍼토리 선정위원회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유치진 한 사람에 의해 신진 연출가의 길이 막혔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영화스타들을 이용하여 관객동원을 꾀한 것은 드라마센터의 타락이라는 것이다.([근대극장 변천사], 435~436쪽.)
그런데 지난번에 미국의 연극인 노리스 호튼씨가 다녀갔지. 그 분은 드라마센터 건립기금을 대준 록펠러 재단의 요청으로 우리나라 연극계를 살피러 왔었지. 결과는 퍽 실망인 모양이야. 록펠러 재단에서 드라마센터에 기금을 대준 것을 후회하고 있는 듯해. 무슨 뜻인데? 아마 록펠러 재단에서는 드라마센터가 기대했던 대로의 역할을 못하는 데다 어느 특정인이 사유화한 듯한 인상을 받은 모양이야. 호튼씨도 비슷한 말을 조심스럽게 하더라잖아. 그런 오해 받을 만도 하게 되었지.(한국일보, 1966.7.21.[근대극장 변천사] 440쪽에서 재인용.)
유민영은 결정적으로 유치진의 한국일보 인터뷰 내용 중 “드라마센터는 절대로 사유화되지 않습니다. 우선 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관절 그 건물이 사복을 채울 만한 건더기가 됩니까?”(한국일보, 1966.9.1.)라는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다.([근대극장 변천사], 440~441쪽)
유민영의 입장 선회는 ‘한국연극의 아버지’라서?
유민영은 2015년에 출간한 [한국연극의 아버지 동랑 유치진](태학사)에 이르러 유치진의 드라마센터 사유화를 정당화하고 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한 가지는 동랑의 재산이라는 것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심씨(沈氏) 가문의 재산이었다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싶다.(중략) 솔직히 그녀가 아니었다면 드라마센터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그리고 뒤에 록펠러 재단에서 온 돈은 겨우 1만 5천불이었으므로 그들이 지원한 것은 모두 5만 5천 불에 불과하다. 당시 환율이 1불에 50원이었으므로 5만 5천 불이라야 275만원에 불과하지 않은가. (중략) 따라서 드라마센터가 전적으로 록펠러 재단의 돈으로 세워졌다는 세간의 낭설은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한국연극의 아버지 동랑 유치진], 564쪽.)
한국연극사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한 사람의 서술이 이처럼 180도 달라진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유민영은 앞선 책과 입장이 달라진 이유나 근거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 유치진의 드라마센터 사유화를 옹호하고 있다.
유치진은 자서전에서 당시 환율을 130:1로 계산했다는데 유민영은 50:1로 보고 있다. 한편 김옥란은 제1차 ‘공공극장으로서의 드라마센터 정상화를 위한 공개토론회’(2018.4.12.)에서 최근 공개된 미국측 자료들을 바탕으로 「아시아재단 서류를 통해 본 드라마센터 지원과 건립과정」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 의하면 1962년에 아시아재단이 밝힌 드라마센터 총 건립 비용은 대략 150,000달러인데 미국에서의 지원이 총 97,400달러이고 한국의 현지 자금 조달 비용이 52,600달러로 파악되었다. 유치진은 록펠러 재단의 지원금을 받을 때 유리한 환율 조건을 얻기 위해 제 3자 전달 방식을 추진했다. 유치진의 한국연극연구소 출연금이 2천만 환이었으므로 김옥란은 환율을 최대 380:1까지 추정했다.([유치진과 드라마센터], 59~61쪽 참조.) 한국 현지 자금 조달분 52,600달러는 총 건립비용의 약 35%에 해당하는데 여기에는 한국연극연구소의 2천만 환 외에 드라마센터 부지(구 과학관) 대금이 포함되므로 총 건립비용인 150,000달러 중 유치진의 출자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더 낮아진다.
유민영은 유치진이 130:1이라고 밝힌 환율을 왜 50:1로까지 낮추어 제시했을까. 환율을 고의로 낮게 잡아 미국으로부터의 원조 금액을 축소하고, 유치진의 출자금은 과장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설사 유치진의 재산이 더 많이 투입되었다 하더라도 공공극장으로 건립된 극장의 사유화가 정당해질 수 있는가.
[한국연극의 아버지 동랑 유치진]의 맨 앞에는 “이 책을 동랑 유치진(돈 보스코) 선생님과 심재순(데레사) 여사님의 영전에 바칩니다”라는 헌사가 있다. 영전에 바치기 위한 책이니 신랄한 비판은 극도로 삼가고 허물조차 미화해야 했을까. 한국연극사 연구에 온 생애를 바쳐온 원로 학자가 왜 역사를 왜곡하는 책을 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서울예술대학이 그에게 ‘석좌교수’의 자리를 허락해서인가. 더구나 “유덕형 총장의 열성적 뒷받침과 기록에 나타나 있지 않은 사실을 꼼꼼하게 증언해준 유인형‧안민수 교수의 도움”으로 이 책이 집필되었다 하니 적어도 드라마센터 부분에 대해서는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공공극장으로서의 드라마센터 정상화를 위한 연극인 비상대책회의’의 활동은 무의미했나
2018년 초 드라마센터의 건물주인 학교법인 동랑예술원(서울예술대학)이 갑자기 남산예술센터를 다시 서울예술대학이 사용하겠다면서 서울시에 임대차 계약 조정을 요청해왔고, 이에 분개한 연극인들이 들고일어나 2018년 4월 1일에 ‘공공극장으로서의 드라마센터 정상화를 위한 연극인 비상대책회의’(약칭 ‘공공정비’)를 결성했다. 이후 공공정비는 국가기록원을 등을 통한 방대한 자료 조사와 수차례의 공개토론회를 거치면서 2019년 6월에 단행본 [유치진과 드라마센터-친일과 냉전의 유산](연극과 인간)을 발간했다. 이 책은 치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유치진의 드라마센터 사유화 과정을 상당 부분 입증했다. 이러한 증거 자료들을 가지고 서울시를 비롯하여 기획재정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드라마센터를 공공극장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들을 경주했다. 그 모든 자료들을 2022년에 [공공정비 자료집](연극과 인간)으로 발간했다.
이 두 권의 책은 자기모순으로 얼룩진 유민영의 주장과 맞서는, 또한 서울예술대학의 반성 없는 태도와 길항하는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다. 드라마센터를 연극계로 환원하기 위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미도
연극비평을 쓰고 한국연극사를 연구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