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
사람 3 내 친구들, 조문객들이 이상해 보이는 옷을 입고 있거나 장례 예절을 잘 지키지 않더라도 부디 눈총을 주거나 나무라지 마세요. 그 사람들은 살면서 죽음을 너무 많이 보았고, 힘든 일을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누가 치마를 입었든 머리를 밀었든 각자 자유일 테니까. 내 영전 앞에 담배를 내려놓고 술을 마시고 신나게 웃더라도 내버려두십시오. 제발 그대로 두십시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를 겁니다. 그리고 나는 담배를 영전 앞에 내려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워할 겁니다.
발인 날 누가 관을 들든, 상관하지 마십시오. 이런 것까지 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원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길을 배웅하게 해주세요. 아무도 그걸 원치 않는다면, 그냥 그대로도 괜찮습니다. 사람들마다 죽음을 마주할 때 대응하는 방식은 다른 거니까. 상황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만약에, 혹시라도 내가 자연사나 사고사가 아닌 방식으로 죽는다면, 사람들이 내게 화를 낸다고 함께 화내지 마세요. 그들에겐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나는 살아남고 싶었고 그래서 평생 모든 것을 회피하며 살았으나, 죽음 앞에서는 당당하길 바랍니다.
– 이은용, <유언장 혹은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중에서
숱이랄 것도 없는 가느다란 머리털 위에 작은 리본 모양의 핀이 퍽 위태로이 달려있었다. 아기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한번 쓱 쓸어 머리카락을 모으고는 그 위에 핀을 조심스레 다시 배치했다. “장군감이라는 둥, 씩씩하게 생겼다는 둥, 하는 말을 자꾸 들으니까”라며 그는 멋쩍게 웃었다. 그렇다. 아기에게 전하는 덕담조차 젠더화되어 있는 것이다. 백일이 채 되지 못한 아기는 불편한지 머리를 흔들며 몸을 뒤척였다. 어린 시절 나는 첫눈에 여자아이인지 남자아이인지 잘 구별되지 않았다. 연년생으로 셋을 내리 낳아 길러야 했던 엄마는 우리 모두를 동그란 바가지 모양 머리로 자르고 신축성이 좋은 판탈롱이나 반바지에 긴 양말을 신겨 나가 놀게 했다. 다른 자매들도 그런 질문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늘 어딜 가든 “너는 남자 애니 여자 애니?”라는 질문을 받았다. 하드 값을 달리 받으실 것도 아니면서, 내가 골라 놓은 책을 안 파실 것도 아니면서, 어른들은 참으로 착실하게 그 질문을 해댔다. 눈앞의 꼬마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알아야 마음이 편한 것이다. 젠더 규범성에 맞지 않는 외양과 태도를 한 채 중간에 애매하게 서 있는 존재는 백일 된 아이건 9살짜리 꼬마건 다 불편한 것이다.
“읽기 어려운” “인식되지 않는” “혼합된” 존재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틀에 어떻게든 상대를 욱여넣으려 한다. 그래야 그를 알 수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그리고 그럴 때야 비로소 자신과 나란히 놓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저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에요.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요. 근데 왜 호르몬 하는 거예요? 그냥 사는 사람도 많은데. 더 애매해지고 싶어서요. 매끈하게 구분되고 싶지 않아서요. 왜 일부러 어렵게 살아요? 그게 제가 정확해지는 방법이어서요.
– 호영, <전부 취소>(읻다, 2024), 31쪽
고 이은용의 희곡집에 실린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6편의 단편 희곡이 모여 구성된 장막극이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쓰였고 다루는 이야기도 등장인물도 다르지만, 또 각 단편으로도 힘 있는 이야기지만, 모여 한 편으로 구성되었을 때 더 아름답게 읽힌다. 그의 “유쾌하고 다정”이은용 희곡집에 수록된 극작가 고연옥의 ‘서문’ 중에서한 언어가 마음을 꼭 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작품의 사이사이 작가는 작품에 대한 일종의 노트를 남겼다. 모두 “문”과 관련된다. “당신은 어떻게 이 경계를 넘게 되었나요?” “당신의 육신은 그 경계의 어디 즈음에 있나요?”(15) 문을 지키는 이들은 질문을 쏟아낸다. ‘문(門)’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입(口)’들을 통과해야 한다. 그를 세워둔 채 문지기들이 쏟아내는 ‘문(問)’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긴긴 질문 끝에도 문은 잘 열리지 않는다. 경계를 넘어 저쪽으로 갈 기회는 여간해선 주어지지 않는다. “당신은 자신에 대해 긴긴 설명을 거친 뒤 어느 쪽에도 들어갈 수 없다는 답을 듣는다.”(50) 그러나 주인공들은 낙담하지 않는다. 계속 문을 두드리고, 때로는 월경하고, 때로는 변신한다.
희곡의 힘은 이 작품이 매일의 죽음과 불안과 불완전함을 껴안아 만든 문장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에서 온다. 그 힘으로 문을 두드리고, 그 힘으로 판타지를 펼쳐 보인다. 그 힘으로 웃음도 만들어 낸다. 당신도 같이 웃자고 초대한다. “너에게 웃을 자격을 허하노라.”(40)
극장에서, 연극 안에서, 작가가 행복했기를 바란다. 이 세계에서는 늘 환대받았기를. 경계에 서 있는 것도 문을 여는 것도 닫는 것도 선택하는 것도 선택하기를 거절하는 것도 여기서는 한없이 자유로웠기를.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리를 분명히 하는 데 있어 참정권은 기본이다. 그런데 그 기본권 중의 기본권을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행사하기를 꺼린다. 성별이 드러나는 신분증이, 그 때문에 받을 질문과 의심 가득한 눈빛이, 나아가 일어날지도 모를 소동이, 그 당연한 권리를 종종 가로막는다. 질문 없이, 의혹 없이 문은 잘 열리지 않는다. 3월 31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다. 우리 사회에 동료 시민으로서 트랜스젠더가 있음을 드러내고 이들의 존엄과 권리를 지지하면서 혐오와 차별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담은 날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DEI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 정책 폐지를 명하고, 독검댕 곰팡이가 겨울철 습기 흡수하듯 그런 암시들을 먹고 혐오 세력들이 퍼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유쾌하고 다정한 언어”로 맞서야겠다고 다짐한다.
희곡집 앞에 붙은 작가의 제사(題詞)가 오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는 여기 있다.
하지만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아,
내가 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______________
*) 작품 출처 : 이은용,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제철소, 2023)
**) 본문에서 큰따옴표를 써서 인용한 문장은 모두 이은용 희곡집에서 가져온 것이며 괄호 안의 숫자는 책의 쪽수다.
이진아
비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에 비평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