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란

신촌극장 젊은 창작자들의 공연이 유쾌하다. 옥탑방 작은 극장에 올라가는 공연들을 챙겨보게 된다. 김상훈 연출 공연의 제목 <AR연계공연셋업; 서울왕립극단 기술융합미래 어쩌구 지원을 받았다고 가정함>공동창작, 김상훈 연출, 극단 음이온·매머드머메이드·허윤경 제작, 신촌극장, 2025.2.13.~2.22., 이하 <AR연계공연셋업>은 ‘엉뚱미’마저 발산한다. 최근 ‘기술과 예술’에 대한 논의들이 많다. AI기술과 로봇기술이 일상화되면서, 그리고 코로나 이후 가속화된 포스트휴먼 논의와 함께 기술 기반 공연들에 대한 관심도 높다. <AR연계공연셋업> 또한 그런 공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연은 관객들의 그런 기대를 엉뚱한 놀이로 바꾸어 놓았다. 매우 연극적인 방식으로.

무서운 왕과 말미잘 시민들

‘AR연계공연’이라고 하지만 무대에는 기술적인 장비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관객들에게 구글 고글을 나누어주거나 증강현실 앱을 안내하지도 않았다. 김은한, 전혜인, 허윤경 배우가 허공을 더듬으며 관객을 맞이한다. “세계를 만지고”공연대본에서 있는 중이다. 그러나 배우들이 들고 있는 핸드폰에 증강현실은 없다. 관객들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무대를 둘러싸고 앉아 있다. 배우들의 핸드폰 속에는 일반 카메라로 촬영하는 영상이 흐를 뿐이다. 관객들은 재빨리 이 공연이 일종의 연극놀이인 것을 알아차린다. 이 공연은 “AR연계공연…을…가정”한 것이다. 관객들은 웃음을 장착한다. 언제든 버튼을 누를 준비가 된다.

첫 번째 배우 은한이 등장해 자신을 소개한다. 자신은 서울왕립극단 소속 배우라고 한다. 물론 아니다. 서울왕립극단은 없으니까. 그런데 왕립극단이라니? 이 공연의 세계관은 왕정시대인 것일까? 실제로 배우는 무대 한쪽 위를 가리키면서 그곳을 바라보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그곳에 왕이 있다고 한다. 그곳을 바라보는 것은 불경한 행위이다. 게다가 왕은 엄청난 빛을 내고 있어서 쳐다보면 눈이 불타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무시무시한 왕이다. 관객들은 배우의 안내에 따라 이마에 손그늘을 만들어 왕의 빛을 피하는 훈련을 한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등장한 두 번째 배우 윤경은 은한에게 핸드폰을 들이대며 관객들은 지금 은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윤경이 들여다보는 핸드폰 증강현실 속 은한은 팔도 눈도 없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아 저 지금 팔이 없는 상태인가요?” “네.” 관객들의 웃음이 터진다. 윤경은 자신 또한 마찬가지 상태라고 곤란해한다. 은한은 핸드폰으로 윤경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수긍한다. 나중 장면에서 확인되는 윤경은 등에 지느러미가 달린 어떤 존재이다. 그렇게 공연장은 팔다리가 없는 말미잘 같은 강장동물과 등에 지느러미가 달린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들이 떠다니는 곳이 되었다.

온갖 악성 코드, 피싱앱까지 전자정보 기반 앱의 홍수 속에서 걱정과 피곤을 달고 살아가던 관객들은 배우들의 어설픈 아날로그 증강현실 놀이에 웃음을 터뜨린다. 극중 세계관에 들어가게 된다. 무서운 왕과 말미잘 시민들이 있는 세계를 배우들의 낙관적이고 무심한 태도의 연기를 통해 안전하게 즐기게 된다. 배우들의 연기는 재현이 아니다. 재현은 핸드폰 속 증강현실 속에 ‘있다 치고’, 관객들의 눈앞에 있는 배우들은 배우 자신으로 서 있다. 말미잘이 되어야 하고, 등 뒤의 지느러미를 활짝 펼쳐야 하는 고난이도 연기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침착하다. 최근 밈으로 유행하고 있는 ‘칠가이CHILL GUY’의 초연함이 느껴진다. 칠가이의 초연함은 극도로 피곤한 현실세계를 반영한다. 이들은 99막 99장의 연극을 만들기 위해 1000년 동안 셋업 중인 공연의 작업자들이다. 이들의 극도의 피곤함과 초연함이 동시에 이해된다.

왕은 죽어가다

극의 설정은 이렇다. 서울왕립극단에서 서울을 구원할 연극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완전한 연극을 만들기 위해 내용을 계속 추가하다 보니 개막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은한은 32막 38장을 만들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이어 삼대째 공연을 만들고 있다. 자기 세대에도 이 공연의 셋업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어떤 장면의 등장인물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한다. 현재도, 미래도 유예되고 있다. 세 번째 배우 혜인은 과거 사람들이 믿었다는 ‘핑크빛 미래’에 대해 그게 핑크빛이든 파란색이든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 혜인은 열리지 않는 어떤 문 앞에서 독백을 연습하고 점검을 마친다.

증강현실이라는 기술적인 메타포를 동원하고 있지만, 공연은 부조리극의 형식을 띠고 있다. 마지막 장면의 은한의 독백은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 <왕은 죽어가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왕은 283세이고, 학살자였고, 법 위에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왕은 죽어가고 있다. 왕의 명령에도 태양은 뜨지 않고, 지진으로 벽이 갈라지고 있다. 출생률은 제로이고, 젊은이들은 떼 지어 망명하고, 이공대학은 폐쇄되었고, 장관들은 물에 빠져 죽었다. 제1 왕비 마그릿은 공연이 끝나는 한 시간 반 후면 왕은 죽는다고 예고한다. 그러나 왕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점성학자이자 사형집행인인 시의는 화성과 토성이 충돌하고, 어제 저녁까지는 봄이었지만 오늘은 11월이 되었다고 이상 징조들을 계속 보고한다. 왕과 제2 왕비 마리는 부정한다. 모두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군대는 마비되었다. 체포 명령을 받은 근위병은 입을 벌린 채 굳어버렸다. 지난 12월 밤의 이야기가 아니다. <왕은 죽어가다>의 내용들이다.

왕은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제2 왕비가 사라지고, 근위병이 사라지고, 시녀도 사라졌다. 이오네스코는 무대기술 조작으로 이들이 갑자기 사라져야 한다고 지시하고 있다. 제1 왕비는 왕의 죽음의 예식을 거행한다. 제1 왕비는 명령을 내리고 왕은 실행한다. 장총도 기관총도 내려놓고, 손가락 안에 쥐고 있던 쌀알갱이만한 나라도 내려놓는다. 왕은 제국을 지나, 칠백칠십 개의 북극을 지나, 파란색을 지나간다. 그리고 문을 연다. 아무것도 없는 무대 위에서 왕은 보이지 않는 죽음의 문을 연다. <왕은 죽어가다>의 왕의 환각상태는 신촌극장의 AR 증강현실로 제시된다. 관객들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우적거림만 보인다. 벌거벗은 임금님에 대한 오래된 우화가 우울한 부조리극으로, 끝없는 현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AR공연으로 재각색되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신촌극장에 드디어 왕이 온다. 관객들은 눈을 감아야 한다. 극장은 암전된다. 관객들은 강제로 눈을 감은 상태가 된다. 암전 속에서 은한과 윤경과 혜인은 왕이 지나가는 한참 동안을 기다린다. 세 사람은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 큰 무대를 왜 계속 만들었지?” “그런 걸로 어떻게 서울을 구하지?” 세 사람은 무대를 부수기 시작한다. 한참 지나 다시 조명이 들어왔을 때 관객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그러나 그 사이에 하나의 제국이 부서졌다. 칠백칠십 개의 빙하도, 영화관도, 대학교도, 병원도, 교회도, 꽃집도, 튀김덮밥집도, 신촌극장도, 서울도, 왕도, 연극도 없다. 제국을 넘어, 칠백칠십 개의 빙하를 넘어, 신촌극장을 넘어, 서울을 넘어 끝없이 공간이 확장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왜 이 공연이 가상현실VR, Vertual Reality이 아니라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을 고집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가상현실은 컴퓨터 안의 ‘나’와 ‘세계’가 모두 가상이지만, 증강현실은 가상의 이미지를 덧붙였지만 여전히 ‘현실의 나’와 ‘현실의 세계’를 다룬다. 우리의 현실을 떠나지 않는다. 이오네스코의 상상력이 도착한 이곳은 낯선 가상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진짜 현실이다. 우리의 부조리한 현실이다.

김옥란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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