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도
탄핵 정국 속에서 유인촌 문체부 장관의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달 2월 19일에 문체부는 느닷없이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등 5개 국립예술단체의 행정을 통합 운영하는 ‘통합 사무처’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어떤 공론화의 과정도 없이 나온 문체부의 발표에 예술계는 경악했고 각 예술단체들의 독립성, 자율성, 예술성이 침해당할 것이 분명하므로 반대 성명이 잇따랐다. 심지어 2011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국립예술단체의 효율적 통합 운영방안 마련 연구」 보고서에서는 국립예술단체들 간에 통합의 타당성이 낮다고 분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보고서는 2008년에 취임했던 유인촌 장관이 추진하던 정책에 의해 수행된 것이라 한다.1
3월 5일에 문화예술단체들이 국회 소통관에서 국립예술단체 통합을 졸속으로 추진한 문화체육관광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자 같은 날 유인촌 장관은 “반대하면 안 하겠다”며 정책 철회 가능성을 언급했다. 여당에서조차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으면서 굳이 이렇게 추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2는 비판이 제기된 결과로 보인다.
유인촌의 통합 전횡은 과거에도 있었다
유인촌은 2008년 4월에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현 정부의 조직개편 흐름에 맞춰 소속기관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과 예산절감 방안을 마련하겠다”3는 폭탄 선언을 통해 문체부 소속 35개 기관 및 산하단체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 입장을 밝혔다. 4 구조조정의 대표적인 결과로 탄생한 기관이 한국콘텐츠진흥원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당시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한국게임산업진흥원, 문화콘텐츠 센터,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디지털콘텐츠 사업단 등 5개 기관을 통합하여 2009년 5월 7일에 설립되었다.
2008년 9월에 유인촌은 또 일방적으로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은 무용 전용극장, 명동예술극장은 연극 전용관으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아르코예술극장에서는 1981년 개관 이래 연극, 뮤지컬,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중요한 작품들이 공연되었다. 당시까지 아르코극장에선 연극 공연이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연극의 메카 대학로에서 연극인들의 고향과 같은 아르코극장 대극장을 무용전용으로 전환한다는 일방적 발표에 연극계는 격하게 반발했다.
2010년 7월 16일에는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등 대학로 일대 6개 공연장을 통합 운영하는 한국공연예술센터(HanPAC)가 출범했다. 아르코예술극장이 한팩에 흡수되면서 기존의 예술감독제도가 폐지되었고, 아르코예술극장의 기획력은 현저히 낮아졌다.
국립극단에 대한 전횡
2009년 10월에 유인촌 장관은 갑자기 ‘국립극단 법인화 추진계획’을 발표했었다. 2010년 1월 14일 조선일보 기사 「국립극단, ‘죽느냐 사느냐’ 고뇌는 끝났다」에서 유인촌 장관은 “장민호‧백성희 두 원로단원만 종신단원으로 남고 나머지 단원들은 공개 오디션을 통해 재평가받게 될 것”5이라고 밝혔다. 유인촌의 급작스런 행보에 국립극단은 물론 온 연극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1월 28일에 국립극단 단원들이 해고 통보를 받았고, 2월 1일에는 국립극단 정리추진단이 구성되었다. 국립극단 노조도 성명서를 통해 반대 의사를 강력히 표명했으나 문체부는 4월 28일에 일방적으로 ‘재단법인 국립극단 설립 계획 설명회’를 개최했고, 6월 18일에 재단법인 국립극단 이사회가 구성되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유인촌은 국립극단을 다시 남산으로 복귀시키겠다고 한다. 2009년에도 공론화 과정은 없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남산으로 복귀시키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한 바 없다. 이와 관련된 한 기사에 의하면 원로 배우 박정자가 2024년 2월 초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최된 ‘2024 설맞이 음악회’에서 축사를 요청 받고 “국립극단이 다시 국립극장으로 들어올 수 있는 날을 연극인들의 꿈과 염원을 담아 요청드린다”6고 발언한 바 있다. 박정자를 위시한 원로연극인들이 뜻이 그렇다 한들 그것이 연극계 전체의 바람일까.
국립극단의 서계동 시대는 낡은 가건물에서 초라하게 시작되었지만 점차 남산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창작극들을 제작했다. 젊은 창작자들에게 국립극단의 문턱이 현저히 낮아졌고, 관객들의 평균 연령대도 상당히 젊어졌으며 관객점유율도 많이 올라갔다. 원로 연극인들이 과거의 향수에 젖어 남산 복귀를 희망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남산 복귀가 국가의 통제 시스템에 갇혀 퇴행적인 결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유인촌 장관이 국립극단을 서계동으로 끌고 내려올 때는 장차 그 부지에 새 극장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2022년에 연극계는 국립극단이 그 부지에 새로 조성될 서계동 복합문화시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날벼락 같은 뉴스를 접했다. 연극계가 거세게 저항하는 가운데 문체부는 서계동 복합문화시설 내에 최소 2개 이상의 극장을 국립극단이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최근에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은 “연극전용 극장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7고 말을 바꿨다.
한편 2024년 3월 19일에 유인촌은 자유센터 건물을 임차해 가칭 ‘국립공연예술창작센터’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자유총연맹이 소유한 자유센터 건물은 현재 민간에서 임차해 사용하고 있는데 문체부가 이 건물을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임차해서 연습실, 공연장, 무대장치 분류센터로 만들겠다고 한다. 국립공연예술창작센터에 들어서는 공연장은 국립극단 전용극장이 될 수 있을까? 문체부가 이것저것 정신없이 발표하면서 국립극단의 영역이 넓어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 국립극단에게 선명하게 약속된 비젼은 없다. 취임 2년차를 맞는 박정희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별 걱정이 없는지 “국립극단이 연극 예술 활성화를 위한 핵심적·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 정책에 발맞춰 나갈 것”8이라고 한다.
문화한국 2035, 국립예술단체 단계적 지방 이전
문체부는 3월 6일에 ‘문화한국 2035’를 발표했는데 그 핵심은 지역문화균형 발전이다. 내년에 서울예술단이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이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립극단,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현대무용단 등 국립예술단체들의 지역 이전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란다. 역시 공론화 과정은 없었으며 해당 예술단체들과의 협의도 없었다. 발표 당일에 서울예술단은 “단원들과 제대로 논의 없이 이뤄진 발표”9라며 반발 했다. 유인촌은 3월 6일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 질의에서 심지어 “정말 반대하면 안 할게요. 국립단체에 그렇게까지 관심 없어요”10라고 망발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윤석열에 이어 유인촌이라는 또 하나의 괴물을 본다. 그는 자신이 문화예술에 대해 최고의 전문가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탄핵 인용을 목전에 두고 서둘러 아무 정책이나 알박기하려는 그의 몸부림은 처절하고 구질구질하다.
김미도
연극비평을 쓰고 한국연극사를 연구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 장지영 선임기자, 「〔단독〕 “국립예술단체 통합 타당성 낮다” 문체부 보고서」, 국민일보, 2025.3.4.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7822357&code=61171211&cp=nv ↩︎ - 임석규 기자, 「유인촌 장관 “국립예술단체 통합, 반대하면 안 하겠다”」, 한겨레, 2025.3.5.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85477.html
↩︎ - 이문영 기자, 「문화부 35개 기관 고강도 구조조정」, 서울신문, 2008.4.21.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0421015006
↩︎ - 한윤정 기자, 「유인촌 문화부 장관 “산하기관 기능조정‧통폐합”」, 2008.4.20.
https://www.khan.co.kr/article/200804202311005 참조.
↩︎ - 박돈규 기자, 「국립극단 ‘죽느냐 사느냐’ 고뇌는 끝났다」, 조선일보, 2010.1.14.
https://art.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14/2010011400497.html
↩︎ - 이강은 기자, 「〔단독〕 국립극단, 14년 만에 ‘고향집’ 돌아온다」, 세계일보, 2024.2.29.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229515751?OutUrl=naver
↩︎ - 박병희 기자,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개발 본격화」, 아시아경제, 2025.2.6.
https://view.asiae.co.kr/article/2025020613534787863 ↩︎ - 김현식 기자, 「“남산예술벨트 구심점으로 새 도약… 국립극단, K연극 부활 이끌 것”」, 이데일리, 2025.3.6.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39846642100696&mediaCodeNo=257&OutLnkChk=Y ↩︎ - 「문체부 “국립예술단체 지방 이전, 국가 균형 발전에 필요”」, 국민일보, 2025.3.6.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7834346&code=61171211&cp=nv ↩︎ - https://www.facebook.com/kimjaewon553/videos/2147880655669361?locale=ko_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