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란

근현대극 공연에 변화가 보이고 있다. 함세덕의 <고목>전인철 연출, 극단 돌파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2024.3.26.~3.31.과 차범석의 <활화산>윤한솔 연출,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2024.5.24.~6.17.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고목>은 해방기 좌익연극의 대표작이고, <활화산>은 1970년대 국책사업으로 올라간 새마을연극이다. <고목>이 좌파 프로파간다라면, <활화산>은 우파 프로파간다, 곧 목적극이다. 지금까지 함세덕과 차범석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며 반복해서 공연되던 <동승>과 <산불>이 아니다. 한국연극사, 그리고 한국근현대 역사에 대해서 비로소 제대로 대면하고 있는 공연들이다.

<고목>은 함세덕이 일제 말기 《국민문학》에 발표한 단막극 <거리는 쾌청한 가을 날씨町は秋晴れ>1944.11.를 해방 후 3막극으로 개작해 《문학》1947.4.에 발표한 극이다. <거리는 쾌청한 가을 날씨>는 함세덕이 1942년 1년간 유학했던 일본 전진좌 배우들을 염두에 두고 일어로 쓴 전시 총동원 체제에 협력하는 내용의 극이다. 배경도 도쿄이다. <고목>은 일제 잔재 청산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원작은 친일극이고, 개작은 좌익 목적극이다.

함세덕은 1947년 후반 월북했다. <고목>은 월북 이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다. 마치 남한에서의 활동을 정리하듯이 월북 직전 희곡집 《동승》박문출판사, 1947.6.도 발간했다. 함세덕은 희곡집 후기에서 “나는 8·15를 계기로 완전히 이 작품들이전 작품들: 필자의 세계에서는 탈피하였다”1고 선언하고 있다. 김재석에 의하면, 1947년은 이미 남한에서 좌익연극 활동이 불가능한 때였고, 함세덕은 친일 세력이 다시 부상하는 남한 정치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작품 속에서도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말한다.2 작품 속에서 이승만을 연상시키는 오각하가 거듭 언급되는 이유이다.

극단 돌파구의 <고목>은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들어 있는 문화예술인 16명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망우열전’에서 2023년 입체낭독공연으로 먼저 선보인 작품이다. 함세덕은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을 따라 서울로 내려오다 신촌 부근에서 수류탄 오발사고로 사망했다. 그가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는 사실은 1991년 연구자 노제운에 의해 뒤늦게야 알려졌다.3 함세덕은 월북 이후에도 북한이 아닌 남한의 현실을 다룬 작품들을 썼다. 결과적으로 남한에서는 좌익계열 연극인으로 금지 작가가 되고, 북한에서는 북한연극에 기여한 바가 없다는 이유로 잊힌 작가가 되었다.4 함세덕은 남북한 양쪽에서 지워진 작가가 된 것이다. 1987년 해금 이후 월북 작가 작품이 복권되고 <동승>이 공연되었지만박원근 연출, 극단 연우무대, 1991. <고목>을 무대에서 보기는 힘들었다.

<고목>은 빈 무대로 시작한다. 근대극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기와집이나 담장은 없다. 빈 마루바닥 무대를 사각의 검은 벽이 둘러싸고 있다. 조명기 배턴도 내려져 있다. 조명기가 올라가면 공연이 시작된다. 무대 앞에는 검은 흙더미 하나가 쌓여 있다. 친일 지주 박거복 집안에 3대째 내려오는 고목을 검은 흙더미로 대신했다. 근대 사실주의극을 현대 미니멀리즘 공연으로 표현하면서 이 작품을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읽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거복김정호 배우과 거복처이진경 배우가 톱으로 나무 둥치를 자를 때도, 벌목꾼 초국조영규 배우이 도끼로 나무를 자를 때도 모두 흙더미 위에서 진행한다. 윤군수안병식 배우가 오각하 일행의 자동차를 배웅하다가 흙탕물이 튀었다고 말하며 들어올 때도 흙더미를 덮어쓰며 퉤, 퉤, 거리며 희극적 장면을 만든다. 또한 흙으로 표현된 고목은 해방기 남북한 최대 이슈였던 토지개혁의 ‘땅’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거복은 목에 스타킹으로 매단 혹으로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주고, 13살에 창경궁 나인으로 들어가 중전마마를 모셨다는 거복의 노모김은희 배우는 사극 속 가체머리를 하고 나온다. 거복의 딸 수국윤미경 배우은 한달 전부터 오각하 환영회장에 깔 방석에 애국가를 수놓아 갔지만 서양 생활을 오래하신 오각하께서는 방석을 못 알아보고 흙발로 밟고 지나가버려 울상이 되었다. “독립을 하면 뭘 하겠소? 땅두 안 노나 준다는데….” 북한처럼 소작인에게 땅을 무상으로 나누어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오각하의 연설회장을 찾았던 사람들은 실망한 채 돌아온다. 남한보다 먼저 실시된 북한의 토지개혁을 프로파간다하기 위한 장면들이다. 프로파간다이지만 당시 민중들의 관심사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장면들이다.

공연의 현재적 관점을 뚜렷이 보여준 장면은 오각하 연설회장의 함성소리를 2층 객석에서 일반인 관객들이 고함을 지르게 한 것이다. 공연팀이 미리 섭외한 대학생 관객들이다. 극중 등장인물들이 오각하 연설회장에서 돌아올 때 이들도 우루루 함께 무대 위에 올라가 무대를 에워싸고 극을 지켜본다. 오각하 연설회장에 다녀온 인물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무대에 들어오고, 거복은 오각하에게 실망하고 돌아온 사람들과 일대 설전을 벌인다. 그리고 거복은 애국당 간부들로부터 정치후원금 명목으로, 가족들과 청년단원들로부터는 수재민 구제금으로 고목을 기부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수세에 몰린 거복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흙더미 위에 앉아 악을 쓴다. “공산당에선 내 땅두 이렇게 뺏어갈 거다!” 거복이 끝까지 타협하지 않는 태도에서 해방 이후 80년이 되도록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이제는 남북도 모자라 동서로 갈라져 분열과 불신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지금 여기의 현실이 곧바로 환기될 수밖에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쓴 거복을 사이에 두고 무대 위에 오른 젊은 관객들과 관객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공연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으로 함세덕의 <고목>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활화산>은 1970년대 대표적인 국책사업인 새마을연극이다. 1974년 2월 이해랑 연출, 국립극단에 의해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주인공 정숙 역할에 손숙, 남편 상석 역할에 장민호, 할머니 심씨 역할에 백성희 등 호화 캐스팅에, 120여 명이 출연하는 대규모 작품이었다. 1974년 4월에는 15개 도시 순회공연을 비롯하여 텔레비전으로도 방송되었다. 정부에 의해 대대적으로 홍보된 것이다.

<활화산>은 경상북도 월성군 안강읍 옥산마을 새마을지도자 김영순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차범석은 희곡집 후기에서, 실존인물을 직접 취재하면서 “해방 후 20여 년 동안 버림받아온 농촌의 비애”를 접하면서 극작의 “불씨”를 얻었다고 고백하고 있다.5 그러나 공연은 ‘활화산’처럼 타오르지는 못한 듯하다. 산만하고 지리한 연출로 “신파조까지 풍기는”6 공연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활화산>은 차범석의 대표작 목록에도 올라있지 않다. 동일한 프로파간다 공연이지만 함세덕의 <고목>이 해방기를 대표하는 문제작으로 언급되는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2024년 국립극단 <활화산> 공연은 차범석 탄생 100주기 기념공연으로 기획되었다. 극단 그린피그의 윤한솔에게 연출이 의뢰되었고, 윤한솔 연출은 <활화산>을 공연작으로 선택했다. 연출가 인터뷰에 의하면, 차범석 전집을 다 읽었는데도 다른 장막들은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다.7 반면에 <활화산>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 사실 1970년대와 새마을연극은 먼 과거가 아니다. 지금 기성세대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이는 윤한솔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윤한솔 연출은 1960·70년대 중고등학생 때의 기억은 툭, 하면 맞았다는 것으로 남아있는 폭력성의 세계라고 말한다. 그때 그 시절 툭하면 얻어맞았던 까까머리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그 시절 어른들의 허풍과 광기가 모두 가짜였다는 걸 이미 안다.

이러한 연출 의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무대 위 아이들의 존재이다. 전염병으로 죽은 큰형의 세 아이들을 마치 <맥베스>의 세 마녀들처럼 모든 것을 보고 듣는 인물처럼 설정했다. 세 아이들장호인·박은경·서예은 배우은 공연이 시작하기 전부터 무대에 나와 라디오도 듣고 춤도 추면서 관객을 맞이한다. 방안에서 들리는 대화에도 아이들의 반응을 통해서 논평적 태도를 덧붙인다. 아이들과 함께 이 가족을 지켜보는 또 다른 존재들이 있다. 개구리, 까마귀, 뻐꾸기 등 동물들이 그것이다. 원래 무대지시문의 음향효과로 나오는 부분을 동물 가면을 쓴 배우를 등장시켜 음향효과에 맞춰 펄쩍 뛰거나 푸드덕거리게 했다. 이 동물들은 2부에 나오는 거대한 돼지 동상과 함께 극 전체를 동물 우화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무대는 경상북도 벽촌마을, 대대로 양반가문인 어느 대가족의 이야기다. 큰아들은 전염병으로 죽고, 둘째아들은 전쟁터에서 다리를 다쳐 돌아오고, 셋째아들은 선거바람이 들어 그나마 남아있는 재산을 몽땅 들어먹고 있다. 해방과 전쟁, 선거열풍의 현대사의 순간들을 한 가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정숙강민지 배우은 셋째아들 상석구도균 배우의 처이다. 상석은 또다시 축산조합장 선거에 나가 낙선하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 이노인정진각 배우까지 세상을 떠난다. 시어머니 심씨백수련 배우는 3년 탈상을 해야 한다고 고집이지만, 정숙은 시어머니의 고집을 꺾고 시아버지의 탈상을 49재로 끝내고 일을 하기 시작한다. 돼지축사를 지어 돼지를 키우기 시작한다. 무대에는 1부에 한옥이 들어선 자리를 대신해서 2부엔 거대한 돼지 동상이 들어왔다. 1부와 2부 사이 인터미션 때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 죽은 이노인과 함께 <꿈에 본 내 고향>을 합창한다. 새마을운동 당시 실제 위문공연단의 형식을 모방한 것이다. 모든 인물들이 새마을운동을 상징하는 초록색 작업복을 입었다. 실종되고 죽고 낙오된 모든 분열된 것들을 봉합하고 아름다운 화합의 찬가를 부른다.

공연의 마지막은 선거철만 되면 다리를 놓아준다, 도로를 깔아준다며 선심 공약을 남발하는 국회의원을 비판하며 정숙이 ‘우리끼리 뭉쳐야 한다’고 강변하는 장면이다. 마지막 장면의 무대는 온통 초록색이다. 모든 등장인물과 동물들이 초록색 작업복을 입었다. 무대 전체 조명도 초록색이다. 정숙의 목소리는 녹음된 목소리로 크게 확성되어 들리고, 정숙과 상석은 긴 키스로 감격의 순간을 표현한다. 또 하나의 동상처럼 굳어진 두 사람만을 남겨두고 공연은 끝난다. 인습타파와 정부비판의 신랄함은 사라지고 익숙한 가정 멜로드라마, 곧 신파적 해결로 끝난다. 정숙의 영웅담은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가지 못한다. 여성 농민은 새롭게 새마을 여성 지도자라는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집밖의 다른 공간에 대한 상상력은 부재하다. 정숙은 들려 올려진 채 매달려 있는 집과 돼지와 함께 무대에 남겨져 있다. 그러나 현실 속의 정숙들은 ‘새마을’ 농촌에 남아있지 않고 도시로 갔다. <활화산>은 현실과 괴리된 프로파간다 극으로, 공허한 울림만을 남기고 있다. 윤한솔 연출은 그 장면에서 모든 것을 획일화시키는 전체주의, 곧 파시즘의 그림자를 읽어낸다. 지금 우리 현실에 대한 각성이 담겨있는 통찰이다.

<고목>과 <활화산>을 통해서 전인철 연출과 윤한솔 연출은 지금 우리 시대의 왜곡된 불구성과 파시즘의 기원을 읽어내고 있다. 각각의 시대에 프로파간다 공연들이 드러내고자 했던, 혹은 은폐하고자 했던 맥락을 다시 읽으며 이 공연들을 우리 시대의 공연으로 전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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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란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1. 함세덕,《동승》, 박문서관, 1947, 209쪽. ↩︎
  2. 김재석,「1940년대 후반기 함세덕 희곡 연구」, 『어문학』, 2006, 326쪽. ↩︎
  3. 김성우, 「함세덕의 무덤 앞에서」, 《함세덕 문학전집1》, 노제운 편, 지식산업사, 1996, 17쪽. ↩︎
  4. 김재석, 앞의 글, 345쪽. ↩︎
  5. 차범석, 「작품노트」, 《학이여 사랑일래라》, 어문각, 1982, 273쪽. ↩︎
  6. 기사, 「국립극단 공연 <활화산>」, 『경향신문』, 1974.3.2., 5쪽. ↩︎
  7. 윤한솔·김옥란, 「<활화산> 연출가 인터뷰」, <활화산> 프로그램북, 2024., 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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