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현

2023년 8월 국립극단은 서계동을 ‘잠시 떠나’기로 정리되었다. 2026년 서계동 복합문화시설이 완공되면 다시 돌아온다는 기본계획에 따라 공사 기간 내에는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로 이전하고 명동예술극장도 그대로 운영하기로 했다.1 문체부의 밀실 행정과 소통 부재 문제에 대해 연극인들의 항의와 대책을 위한 회의가 열리기도 했고, 국립극단 전용극장을 요구하며 공공성과 문화정책 비전이 부재한 수익성 우위의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조성계획을 반대한다는 공론이 조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사천리 기획대로 국립극단은 13년간 머물렀던 서계동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2024년 3월 19일 언론을 통해 ‘연극계도 국립극단의 국립극장으로의 이전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면서 국립극단을 서계동이 아닌 장충동 국립극장으로 이전시키도록 하겠다는 문체부 발표가 나왔다. 게다가 한국자유총연맹 본부 자유센터를 문화예술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20년간 임차하고, 상호협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업무협약식도 가졌노라는 메시지가 하달되었다. 자유센터 건물의 단계적 임차를 통해 연습실과 공연장 그리고 무대장치 분류센터로 리모델링해 공연예술산업의 거점이 되게 하고 자유센터와 국립극장을 합쳐 ‘남산공연예술벨트’를 조성하겠다는 것이 요지다.2 연극계는 침묵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헌정사 초유의 계엄령 사태가 터졌다.

국립극단의 공연 장소 약사(略史)

1950년 국립극장의 창립과 함께 그 유일한 전속단체로 국립극단은 설립된다. 총독부가 지은 부민관을 기반 삼아 두 편의 공연을 올리지만, 곧 이은 한국 전쟁으로 인해 대구 피난길에 올랐다가 1957년 환도 이후로는 명동 시공관에 자리를 잡는다. 처음에는 서울시와 함께 사용하다가 1962년 국립극장 전용 극장이 되었던, 지금의 명동예술극장이 그곳이다. 1973년에는 남산 국립극장 건립으로 국립극단도 이전하여 국립극장의 전속극단이 된다. 이후 2010년 국립극단은 기존의 극단원을 해체하고 재단법인으로 독립하여 기무사 소송대 부지였던 서계동으로 이전한다. 2015년엔 명동예술극장까지 흡수 통합하게 된다. 그리고 2023년, 국립극단은 서계동에 복합문화공간을 지으면 다시 들어오기로 하고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나 돌연 15여 년 전 내몰리듯 나와야 했던 남산 국립극장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문체부의 일방적 통보가 언론을 통해 고지된다.3 돌아보건대 그간 여러 운영체계의 변화 속에서도 국립극단은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 ‘자율’적 능동체가 될 수 없었고 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75년사가 무색하게 세대를 넘어 국립극단을 기억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자리’조차 박탈당한 채, 무기력한 상태에 놓여있다.

친일과 일민주의 그리고 반공 우익이라는 계보

긴 시간 국립극단의 활동 역시 당대 이데올로기와 정책 기조에 순응적 태도를 유지했다. 인정 가능한 범주의 독재체제가 아닌 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에도 관행 속에서 세계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지 못했으며, 세기를 건너 재단법인으로 재출범하고 예술감독 체제를 갖춘 상태에서도 블랙리스트 실행 주체가 되었다. 그 파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민족예술의 발전과 연극문화의 향상 그리고 국제문화의 교류 촉진’을 설립목적으로 둔 국립극장의 창립과 함께 국립극단은 창단되었다. 초대 극장장은 유치진, 창단공연은 그의 <원술랑>이었다. 불과 몇 년 전 친일연극인이었던 유치진은 해방 후에는 미군정에 편승하여 그들 수요에 맞는 연극인 결집의 선봉에 서고, 한국 전쟁 때는 반공을 강조하는 기민함으로 남한연극의 아버지로 등극하였다. 자유총연맹의 전신인 반공연맹 최고위원을 지낸 것도 우연한 이력이 아니다. <원술랑> 역시 이승만 정권이 정부수립 후 반공주의와 함께 전 국민의 통합을 위해 국시로 삼았던 일민주의를 배경으로 한다. 통시적으로는 식민통치 시기 이광수의 친일 작품 ‘元述の出征(원술의 출정)’과 대중극단인 반도가극단과 극단 태양이 행한 <花郞道(화랑도)>를 결말만 바꿔 전유한 것이었다. 김유신이 아닌 ‘김원술 모티프’는 식민과 해방을 가로질러 정치적 이념의 선전을 위한 일종의 아지프로극으로 자주 소환되었다. 즉 식민시기에는 제국담론 전파의 일환으로, 해방 후에는 민족예술의 전아(前芽)를 상징하는 화랑사극으로 재기획 된 것이다. 또한 <원술랑>은 국립극장 개관 공연작이라는 사실을 의식한 흥행과 대중의 취향을 노린 결과물이기도 했다.4

1973년 장충동 남산국립극장 신축과 함께 한 국립극단의 개관공연은 <성웅 이순신>이었고 이후에도 ‘이순신’은 연극 소재로 줄곧 호출되어야 했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유신체제 이후 본격적으로 문화예술에 개입하여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하고 1973년 10월에는 ‘문예중흥선언’을 하는데, 그 이념적 기조는 국가주의와 민족문화 담론이었다. 이러한 기조는 긴 시간을 관통하며 변주, 유지되었다. 1980년 전두환의 쿠데타를 시작으로 1988년 해금 조치까지 긴 혼돈의 시기를 지나 1990년대에 이르면 창작극 발굴을 주도하기도 하고, 2000년대에는 책임운영기관으로 변신하여 예술감독을 선임하는 등 국립극단은 운영방식의 변화를 꾀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료주의적 운영체제의 근간을 바꾸진 못했다. 그런 점에서 표면상 2010년 서계동 국립극단의 새로운 체제는 동시대적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였다. 국립극장 전속극단이 아닌 재단법인으로 변모한 공공제작극장의 예술감독 체제는 과거의 보수성과 결별하고 예술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살리는 국립극단 본연의 정체성을 획득하는 한 계기가 되리라는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출발부터 시작된 불통은 끝내 불신으로 점철되어버렸다. 서계동 부지 13년간의 결과 역시 국립극단은 국가 권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언론을 통한 선() 공포, 무력감과 패배감을 유도하는 폭력적 의사결정

재단법인 국립극단은 2010년 7월 15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2003년부터 논의됐던 국립극단 법인화의 실질적인 출발은 2009년 10월 문체부의 ‘국립극단 법인화 추진계획’이 발표되면서부터다. 이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국립극단은 재단법인으로 전환된 셈이다. 현장예술가들은 의견 수렴과 그에 합당한 방법론에 대해 협의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것이라고 판단 했지만 유인촌 장관은 일방적으로 조선일보 2010년 1월 14일자 “국립극단, 죽느냐 사느냐 고뇌는 끝났다”라는 보도기사의 인터뷰를 통해 고용 승계없이 단원을 해체, 재구성할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라 2010년 1월 28일 국립극단 단원 해고가 통보되었고, 2월 1일 국립극단 정리추진단이 구성되어 4월 30일에는 국립극단 단원 전원 해고라는 수순을 밟게 된다. 해고통보 이후 개인과 단체 등 각계의 국립극단 법인화에 대한 성명서가 발표되었고, 급기야 2010년 4월 28일 문체부의 ‘재단법인 국립극단 설립 계획 설명회’가 마련된다. 하지만 이는 이미 기정사실화된 국립극단 법인화에 대한 문체부의 해명의 자리일 뿐이었다.5 그렇게 국립극단은 재단법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서계동 부지로 이전하게 된다.

이러한 밀어붙이기식 폭압적 결정은 이명박 정부에 이어 또다시 윤석열 정권의 문체부 장관 자리로 컴백한 유인촌의 행보 속에서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이젠 반대로 서계동 부지를 떠나라는 통보였다. 서계동 부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은 긴 시간 은폐된 채로 있다가 2022년 5월 공청회를 통해서야 연극계에 처음 알려졌다. 2012년 4월 ‘서계동 열린문화공간 활용방안연구’를 시작으로 2013년 12월 건립 기본계획과, 2015년 6월을 마지막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보고까지 실시 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을 주었다.6 이후 2022년, 갑작스레 맞이해야만 했던 공시의 결론은 여하간 국립극단은 서계동 부지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어진 공청회는 역시나 무효했다. 서계동 부지를 수익사업용 복합문화시설이 아닌 공공재로서 공공성을 확대하고 예술의 질적 수준을 향상하도록 하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가차 없이 묵살 당했다. 더 황당한 것은 국립극단이 서계동을 떠난 지 불과 7개월이 채 안 되는 2024년 3월 19일 유인촌이 언론사 기자들을 통해, 서계동이 지어지면 국립극단도 그 안에 둥지를 틀 것이라는 애초의 고지와 달리, 남산 국립극장으로 국립극단을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과정은 없었다. 예술가도 시민도 배제된 채로 국민의 세금으로 관리되는 국립극단 이전에 대한 의사결정의 주체는 오로지 유인촌 자신, 문체부의 공권력이었다.

회귀한 냉전극우, 문화예술 예산으로 써포터즈를 자처하다

그러한 ‘배제’의 틈을 비집고 무엇이 들어왔나. 2024년 3월 19일 유인촌 장관은 자유센터 건물 대관을 위시한 남산예술벨트 조성과 관련하여 한국자유총연맹과의 업무협약도 함께 마쳤다.7 윤석열 정부는 시민단체는 물론 과학계의 연구개발 보조금에 대해서도 ‘카르텔’로 규정하며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거나 없앤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2023년, 자유총연맹의 보조금만은 이전보다 더 늘려놓아 문제점으로 지목된 바 있었다. 2023년 3월, 자유총연맹은 5년 전 정관에 도입한 ‘정치적 중립’ 조항을 삭제하여 사실상의 정치개입을 선언한 것은 물론 6월에는 극우 유튜버 20여 명을 자문위원에 위촉하여 현 정부의 ‘호위’ 역할을 자임하는 정치 조직화를 마쳤다. 예의 극우 유튜버들은 자문회의에서 자신들의 “벌금 같은 것도 지원해주면 좋겠다”8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유인촌은 협약식에서 자유센터 공간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상징적 장소”로서 의미가 남다르기에, ‘자유롭게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생각들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중요한 장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앞서 민생 토론회에서 대통령님께서 직접 오늘 이 자유총연맹의 문화벨트 관련해 직접 발표를 하셨고 또 사실은 우리 예술인들이 굉장히 오래전부터 자유총연맹 공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면서, 바로 “그것이 이루어진 순간”이라고 깊은 감회를 토했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캠프에서 일했던 자유총연맹 총재 강석호 는 “한국자유총연맹이 70주년을 계기로 100년을 바라보며 재정자립 같은 현안들을 갖고 있었는데” 다행히 유인촌 장관님이 이러한 제안을 해주셔서 속으로 굉장히 좋았다고 화답했다.9

보도대로라면, 한때는 보수적 반공단체에서 민주시민단체로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윤석열 정부 3대 관변단체 중 하나로, 냉전 극우 이데올로기를 재생하는 기관이 된 자유총연맹이 20년 동안 안정적인 임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문체부 예산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고 계엄사태로 인해 앞은 불투명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유총연맹이 거두어들인 임대수익금은 대체 어디에 소용되는 것인가? 그 무엇보다 대체 누가 자유센터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사용하길 원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문화예술을 위해 써야 할 국민 세금으로 특정 정치세력을 써포트하고 시대착오적 망령, 냉전 극우의 부활과 재활에 쓰여 역행을 도모하고 분열과 혼돈을 획책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자유총연맹이라는 극우 이념단체와의 협약 속에서 ‘국립’극단은 그로부터의 예술은 과연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 그 또한 의문이다.

김숙현

연극의 변방과 ‘어떤’ 공동체에 관심이 많다.


  1. “국립극단, 서계동과 잠시 이별…홍대 대학로 아트센터로 이전”, 연합뉴스, 2023, 8. 4. ↩︎
  2. “남산 자유센터, 2026년까지 ‘공연예술창작센터’로 바뀐다”, 서울경제, 2024. 3.19. 대담, “수백 번의 현장 마다 않은 유인촌 “문화 선진국 한국, 예산으로 힘 실어야””, 머니투데이, 2024. 8. 26. ↩︎
  3. 앞선 3월 7일 연극계 인사 몇몇과 유인촌 장관과의 현장 간담회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남산에 ‘공연예술 벨트’ 조성한다…공연예술창작센터 신설” 연합뉴스, 2024. 3. 19. ↩︎
  4. 김병길, 「유치진 작 원술랑의 문예사적 위상에 관한 재고」,『한국근대문학연구』23(1), 2022, 30쪽. ↩︎
  5. 최윤우, “국립극단은 어떻게 법인화 되었나”, 『연극평론』 통권 63호, 2011, 108-111쪽. ↩︎
  6. 김옥란,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에 대한 두 가지 쟁점”, 『공연과이론』, 가을호 통권 87호, 2022, 102쪽. ↩︎
  7. “자유총연맹 등 3대 관변단체 보조금 26억 늘어 ‘231억’” 경향신문, 2023.8.14. ↩︎
  8. “김건희 여사 ‘초청’ 유튜버들, 자유총연맹 자문위원 위촉···“벌금 지원” 요청”, 경향신문, 2023.7.18. ↩︎
  9. 보수단체 ‘자유총연맹’과 20년 임차계약 맺는 문체부…‘남산공연예술벨트’ 조성”, 서울신문, 2024. 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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