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란
최근 포스트휴먼 담론 관련 비인간 연극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인공지능, 로봇, 동물, 미생물, 무생물이 등장하는 비인간 연극은 기존의 인간 중심 연극과는 다른 연극적 재미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인형극 또한 비인간 연극의 새로운 흐름으로 추가할 만하다. 인형극 공연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2023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공연된 아일랜드 극단 데드센터Dead Centre의 <베케트의 방>, 2024년 우란문화재단에서 공연된 벨기에 극단 포커스&샤리와테Focus&Chaliwaté의 <디망쉬>, 그리고 2024년 혜화동1번지 8기 동인 페스티벌에서 나란히 선보였던 창작집단 여기에있다의 <열차>와 트렁크씨어터 프로젝트의 <김치찌개 웨스턴>, 이지형의 일련의 인형극 <청소년기를 바탕으로 한 창작과정이 인형작업자의 창작과정에 미치는 영향>2024과 <기존의 인형들>2018~2025 연작 등이 그 예이다.
연기하는 인형, 퍼펫
<베케트의 방>과 <디망쉬>는 오랫동안 인형·오브제·움직임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오던 단체들의 공연이다. 이에 비해 한국연극에서 인형극은 낯설다. 인형극은 어린이극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성인 관객을 위한 인형극 공연 또한 드물다. 물론 우리에게도 인형극 전통은 있다. 꼭두각시놀음과 박첨지놀음이 그것이다. 그러나 거의 전승이 끊어진 상태이다.1 <열차>의 사물-인형, <김치찌개 웨스턴>의 손가락-인형, 이지형의 사람-인형은 우리의 전통 인형극이기보다는 유럽의 인형극, 곧 퍼펫puppet 공연의 문법으로 만들어진 공연들이다.
퍼펫이 새로운 공연의 가능성으로 대중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영국 국립극장NT의 <워호스>2007 이후이다. 조광화는 연극 <파우스트 엔딩>2021과 뮤지컬 <벤자민 버튼>2024에서 퍼펫 작가 문수호와 함께 작업했다. 조광화는 국립극장 NT Live <워호스>2015를 보고 처음 퍼펫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2 이지형 또한 자기-서사를 다루고 있는 연극 <청소년기를 바탕으로 한…>에서 인형작업자로서 <워호스>와 <라이온킹>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고 있다. 이지형은 조음기관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인형작업자로서 흥미로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혜화동1번지 8기 동인 창작집단 여기에있다의 박세련 연출, 트렁크씨어터 프로젝트의 조예은 연출이 어떤 경로로 인형극을 만들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정보가 없다. 이들의 인형극 공연은 자연스럽고 정교했다. 오래 훈련된 작업과정에서 오는 공력이 느껴지는 공연들이었다. 8기 동인 5명 중 2명이나 인형극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된 일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김치찌개 웨스턴>이 손가락 인형과 오브제와 배우의 움직임을 함께 결합한 형태라면, <열차>는 퍼포머 1명을 제외하고 모든 사물들이 ‘연기하게’ 만든, 인형들만의 인형극에 더 가까웠다. 인형에만 집중하는, 대사가 없는 무언극이었다. 인형작업자로서 박세련과 이지형에 대해서 좀더 주목하게 되었던 이유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인형을 통해 이야기하는 방식, 인형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게 느껴진다.
<열차>, 사물-인형, 사물의 마음
<열차>는 혜화동1번지 8기 동인 페스티벌 ‘장르 대축제’ 작품의 하나로 올라갔다. ‘장르 대축제’는 “껍데기는 가라”는 신동엽 시를 패러디해서 “알맹이는 가라, 껍데기가 왔다”라는 말로 심오한 의미 대신 관습적 장르물 공연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열차>는 멜로드라마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연인에게 실망하고 열차에 탄 한 여자가 열차 안의 커튼 한 쌍, 선반 위를 굴러다니는 생수병, 개미 한 쌍, 신발 한 쌍 등 온갖 사물들과 미물들의 힘으로 다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공연의 첫 장면에서 무대 뒤쪽에서 맹렬하게 달려오는 작은 전등 불빛이 고개를 넘어오고, 가까이 다가오면서 중간 크기 전등으로 바꾸고, 각도를 꺾어서 무대 오른쪽 큰 극장 조명으로 바꾸면서 저 멀리서 달려오다가 눈앞에 커다랗고 굉장한 굉음 소리와 함께 지나가는 열차 불빛을 표현했다. 이윽고 열차 한 칸이 통째로 레일을 타고 들어오고, 여자가 앉아 있는 창가의 젖혀진 커튼 한 쌍이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달그락달그락 움직이기 시작한다. 커튼 한 쪽씩을 퍼펫티어 2명이 붙잡고 연기한다. 열차의 반동으로 커튼이 한쪽으로 확 쏠리는 순간 커튼 자락들이 서로 몸을 휘감으며 격렬히 사랑을 나눈다. 거의 19금의 열애 장면이다. 커튼의 진한 러브씬을 위해 창문에 손을 탁, 탁 부딪쳐가며 격정적인 연기를 펼쳤던 퍼펫티어의 연기에 순간 강하게 몰입하게 되었다.
인형을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중력과 원근법의 물리적 계산이 정확하다. 인형의 감정 표현 또한 모호하지 않고 생생하다. 여자가 떠나왔던 누군가는 빨간 하트 쿠션 인형으로 표현했다. 무대 가운데 하트 쿠션을 던져놓고 그 가운데에서 하트인형이 일어서게 했다. 하트인형에 머리보호대와 무릎보호대를 착용시키고 극장 벽에 온몸을 부딪치도록 한 장면에서 함께 움직인 3명의 퍼펫티어는 정말로 힘껏 벽에 몸을 부딪치고 떨어지는 장면을 반복하면서도 낙법이 정확했다. 하트인형이 벽에 부딪칠 때마다 떨어져 부서지는 보호장구를 통해 부서지는 마음을 표현했던 장면은 찡했다. 비록 헝겊인형이지만 보호장구를 채워서 벽에 부딪치게 하는 장면을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인형을 살아있게 만드는 마법은 실제로 인형을 살아있는 것처럼 대하는 공연팀의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 자체로 공연팀에 대한 믿음의 마음이 커졌다.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텍스트>, 사람-인형, 인형의 죽음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텍스트>는 같은 제목으로 여러 차례, 여러 창작자들이 참여한 연작공연이다. 2018년 <기존의 인형들>에서는 적극·여신동·애르배 르라흐두가 참여했고, 2021년 <기존의 인형들: Post Puppetry>에서는 이경성·여신동·김보라가, 2022년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조건들>에서는 남긍호·양종욱·입과손 스튜디오가, 2023년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텍스트>에서는 안정민·신효진·김연재가 참여한 낭독극을 거쳐 2025년 1월 본공연을 올리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세 작가가 50분씩 단막극 3편을 연속으로 공연했다.
인형작업자의 공연인 만큼 인형을 대하는 태도나 공연 형식이 흥미로웠다. 작가마다 기존에 공연 이력이 있는 인형이 전달되었고 작가들이 그 인형을 위한 작품을 썼다는 것이다. 안정민 작가에게는 <기존의 인형들> 연작에 출연했던 인형이, 신효진 작가에게는 2022년 연작 중 남긍호 단막극에 출연했던 인형이, 김연재 작가에게는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섬 이야기>에서 제작된 인형이 각각 전달되었다고 한다. 배우들은 퍼펫티어가 아닌 배우로서 인형과 대화를 하고 공연을 이끌어갔다. 인형작업 자체에 대한 메타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공연이다.
이지형은 연출가로서 인형을 무대 가운데에 놓고 배우들이 주변을 움직이는 동선을 주고 쓰고 있다. 안정민 단막극에선 구부려 앉은 관절 인형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끈으로 꿰어 허공중에 매달아 놓았다. 신효진 단막극에선 종말의 시간을 배경으로, 챗봇 기능이 장착된 로봇이 등장했다. 로봇-인형은, AI 음악검색으로 무작위로 노래를 재생시켜서 소음과 같은 소리를 내는 것으로 대화를 대신했다. 인간-배우는 비에 젖은 로봇의 몸체를 닦아내기 위해 로봇을 분해하고, 분해된 몸은 마찬가지로 허공중에 매달린 채 마지막에 혼자 남겨졌다. 김연재 단막극에서 배우는 <섬 이야기>에서 4.3 학살의 시체였던 인형을 안고 나와 무대 가운데에 내려놓고, 자신 또한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준비하는 인물의 하루를 보여준 후 조용히 인형 옆에 몸을 눕힌다. 마지막에 배우는 인형을 ‘나자로’라고 부른다. 나자로는 죽은 자의 이름이다.
이지형은 사각의 투명한 관 속에 매달려 진열된 인형, 관절의 마디 하나하나가 분해되어 전시되어 있는 인형을 통해 마치 인형의 해부학 실험실 같은 무대를 보여주었다. 공연 전체에서 살아있는 인형이 아닌 죽은 자로서의 인형의 이미지가 강하게 환기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분명 전통적 인형극 방식은 아니다. 물체로서의 인형을 통해 마찬가지로 물체-인간의 모습이 강하게 환기된다.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 선 물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인형의 형상은 다소 섬뜩한 포스트휴먼의 종말론적 인간관을 보여주고 있다. 박세련과 이지형,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장르의 인형극을 발전시키고 있다.
김옥란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