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니

작년 말 대전으로 가는 기차에 타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배포하는 정책주간지 『K-공감』을 폈다. 해당 호는 춤 인생 60년을 맞은 “전통춤의 산증인” 국수호 명인의 인터뷰를 실었고, 기자는 그가 보여준 한국 전통춤을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연결해 K-팝의 뿌리를 전통춤에서 찾고 있었다. 국수호는 이 인터뷰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며 “K-컬처의 핵심은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 요소를 얼마나 발견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설명한다.1) 무용계 종사자가 아니지만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국수호가 1980년대 이후 한국 예술 국제교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혼’이 담긴 춤사위를 선보였다 호평받으며 전 세계 순회공연을 통한 문화교류를 주도했고, 88 서울올림픽, 2002 FIFA 월드컵 개막식의 안무를 총괄하기도 했다.

서울올림픽과 문화 세계화

1950년부터 국립극장에서 발간한 ‘국립극장 정기간행물’은 잦은 휴재 기간을 거쳤지만 매체명과 발행 형태를 바꿔가며 지금까지도 발행을 이어가고 있다. 국수호는 1973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한 후 20여 편의 작품에서 주역으로 활약했으며, 1980년대부터 1999년까지 국립무용단의 주축으로서 해외 순회공연 및 국가적 행사의 안무를 도맡았다. 민속학으로 석사학위논문을 취득한 그는 88 문화올림픽 행사와 관련해 국립무용단 <하얀 초상>의 대본과 안무는 물론 출연도 했고, 대규모 물량이 투입된 헝가리의 거장 미클로시 얀초(Miklós Jancsó) 감독의 실험극 <노스토이-불의 아해들>의 안무를 맡는 등, “한국적 소재의 국제화”를 주도했다. 이때 국수호의 안무는 동서양 예술의 화합을 강조한 작품 안에서 동양의 정신, 한국적 아름다움을 체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하얀 초상>은 철저한 고증과 연구에 입각해 “이차돈의 순교를 소재로 한 민족의 정서와 인간 정신 승리를 그린 창작무용극”2)으로 보도되었다. 그는 88 서울예술단 초대 총감독을 지냈고, 1996년 국립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지금도 함께 작업하는 박범훈, 손진책과 ‘공연계 삼총사’로 불리며 ‘MBC 마당놀이’, 가무극 <백두산 신곡>, 음악극 <하늘에서 땅에서> 등을 발표했다. 국립무용단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면 오디션 불공정 논란, 주한 외국인 ‘공짜 관람’ 및 공연 티켓 강매로 구설에 올랐지만, 전통예술 선양과 홍보에 앞장선다는 점에서 늘 지원과 주목을 받았다. 이후 국수호는 성 비위로 실형을 선고받아 국립무용단장에서 해임되었고, 최종적으로 징역 2년이 확정되었다.

물론 국수호 개인의 공과를 이야기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쓴 이유는 서울올림픽 시기부터 지금까지 반복되는 관 주도 예술 정책의 문제와 ‘한국적인 것’의 모호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탈냉전이라는 시대적 분위기와 조응해 ‘동서 화합의 장’으로서 올림픽에 의미를 부여했던 1980년대 중후반은 국제교류라는 측면에서 한국적 예술이 소재, 형식을 본격적으로 구성해 가던 시기이기도 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국제영화제를 타깃으로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이 시기에 이르면 정부 차원에서 영미권은 물론 남미, 동구권 국가까지 아우르는 세계인의 시선을 겨냥한 성과물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 행사로 국립극장에서 준비한 공연은 <하얀 초상>(국립무용단)을 비롯해 한국적 발레 <왕자 호동>(국립발레단), 처용 이야기 <팔곡병풍>(국립극단), 우리의 마음, 우리의 가락 <춘향전>(국립창극단), 지귀 설화를 바탕으로 한 초대형 오페라 <불타는 탑>(국립오페라단·합창단)이었다. 이 작품들은 한국 역사와 설화에서 소재를 찾고, 전통을 스펙터클화하는 방식으로 형식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관객에게 희생, 믿음, 사랑 같은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코자 했다. 국립무용단의 작업은 국립창극단과 함께 ‘세계화’에 가장 적합한 대상으로 간주되었으며, <하얀 초상>의 경우 10년 후 <이차돈의 하늘>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공연되었다. 지속적으로 한국 춤의 정체성과 세계성을 모색해 갔던 국수호는 1990년대 말까지 “가장 우리다운 몸짓으로 토해내는” 춤사위를 보여주며 “우리만의 장르인 ‘춤극’을 주창하는” 인물이라 평가받았다.3) 그는 단장 취임 후 국립무용단의 방향성을 이야기할 때도 “우리 문화 속에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을 춤의 세계로 펼쳐 한국인의 얼이 살아 생동하는 국립무용단으로 성장시켜 세계 속에 우뚝 선 무용단”4)으로 나가는 것을 표방했다.

국가주의 바깥에 대한 상상

그렇다면 우리만의 문화, 장르란 과연 무엇인가. 당시 논의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전통무용을 무대에 끌어올 때 우리의 춤으로 간주되고, 그 춤의 내러티브에는 한국 신화, 설화, 그리고 소설이 놓인다는 점이다. 국수호는 올림픽 전후 ‘우리 문화’의 특징을 “열린 무대-판 문화, 마당 문화, 감정의 문화”로 정리하며, 국립무용단의 춤을 “전통을 만들고 다듬어가는 춤”이라 설명하기도 했다.5) 관련하여 1996년 국제한국학회에서 ‘한국적인 것’을 해명하려는 과정에서 한국문화를 성격론, 원형론, 정한(情恨)론, 이기(理氣)론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시도도 진행되었다.6) 당연히 그 의미와는 별개로 이 같은 설명이 지금 시점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그럼에도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그리고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세계화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한국’ 문화를 상징하는 이름들을 부각하고 그 업적을 강조하며 이들이 빚은 물의는 망각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우리 문화 혹은 한국문화를 정의하는 방식은 익숙하고 명쾌한 동시에 사실 굉장히 모호하다. ‘감정의 문화’의 실체를 과연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겠는가. 감정의 문화가 곧 한국인의 얼인가. 소설가 김동리가 언급했다는 정한론이 한국인의 생활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가. 굳이 에릭 홈스봄(Eric Hobsbawm)의 ‘만들어진 전통’을 경유하지 않더라도, 전통이란 사후 구성적이고 인위적인 집단 통합 장치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연원이 불확실한 한국적인 것에 대한 탐구 의지와 관 주도의 세계화라는 망령은 2020년대에도 정책 담당자들의 머릿속을 떠돌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문체부가 출범 6개월 업무 성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와 <어쩌면 해피엔딩>을 거론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인과관계의 부정확함은 물론이고, 성과는 국가가 소유하려 하고 불확실성은 민간에 떠넘기고자 하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다.7) 개인적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요인인 쿨함과 뻔뻔함은 외부인의 시선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한국문화를 바라보았을 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문화의 우수성이나 진수 같은 케케묵은 표어 대신 음악, 음식, 패션처럼 직관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기호에 ‘순수한’ 애정을 듬뿍 담아 현란하게 전시한 것이 전 세계적 성공 요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K-콘텐츠의 방향 역시 주입된 자긍심이나 집단적 사명감을 넘어서는 것에서부터 찾아가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연극의 해외 진출”이라는 프레임을 버리고, 국가가 아니라 창작진의 이름과 세계관을 피력해야 한다8)는 입장도 등장했다. 이 같은 주장이 완전히 새롭다고는 할 수 없으나 다들 인지하면서도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았던 사안이기도 하다. 정부 주도로 K-콘텐츠에 대한 예산을 대폭 확충했다는 기사가 쏟아지지만, 지원이라는 명목하에 다시 ‘네이션’적 욕망이 개입한다면 그 콘텐츠는 실패할 것이다. 40여 년 전 한국적 시원과 원형을 구축하려 했던 인물들, 곧 ‘거장’의 이름이 재등장하는 것을 비롯해 선별된 일부 집단을 전폭적으로 후원하고 홍보하는 방식이 되풀이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K-컬처의 미래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지만 그 방향성은 과거와의 연결이 아닌 단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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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문제의식은 기발표 글 「‘K-예술’, 전통, 세계화-88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공연계 문화교류 담론에 대한 단상」(『문장웹진』, 2024.12.1.), 「1980년대 국립극장과 문화 세계화 – 국립극장 정기간행물로 본 전통과 ‘한국적인 것’」(『드라마연구』 76, 한국드라마학회, 2025.)과 맞닿아 있다.

전지니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평론가로서 어떻게 써야 할지 계속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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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재호, 「춤 인생 60년 맞은 국수호 명인-“내 춤은 수행이자 시간의 흔적 60년 전 K-컬처 상징은 전통 춤이었다”」, 『K-공감』 830, 2025, 38~39면.
  2. 『국립극장소식』, 1988.7·8 특집호, 2면.
  3. 『국립극장소식』, 1996.9, 9면.
  4. 『국립극장소식』, 1997.1·2월호, 7면.
  5. 김경자, 「88 문화예술계 새 주역 새 설계」, 『매일경제』, 1988.1.7., 9면.
  6. 이상수, 「‘한국적인 것’ 논리적 해명 시도」, 『한겨레』, 1996.11.6., 17면.
  7. 손동혁, 2025년 12월 17일 게시물 중. https://www.facebook.com/sondonghyeog (검색일: 2026.3.4.)
  8. 김준영, 「이제 ‘한국연극 해외 진출’을 그만두자-국가 브랜드가 아니라 이름과 세계관이 움직이는 시대」,『한국연극』, 2025.12. https://ktheater.co.kr/main/03/01_view.php?key=d2t6TQ== (검색일: 20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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