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옥
‘나는 예술가입니까?’
이 질문은 상대에게 ‘당신은 예술의 기준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가, 당신은 나를 예술가로 보고 있느냐 아니냐’에 대답을 요구한다. 당신이 예술가든 아니든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건 본인의 판단이며 확신이고,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승인을 받을 필요는 결코 없다고. 우린 그런 식으로 ‘예술’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을 회피하면서 황급히 화제를 돌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꼼짝없이 그 질문을 받은 것은 2017년 말 성미산마을극장에서 공연된 극단 춤추는 허리의 <불만폭주 라디오>라는 작품에서였다. 당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위촉을 받아 장애인 연극단체 공연의 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혹독하게 추웠던 그날, 어두운 골목을 헤매다 겨우 찾은 극장 앞에서 난 이듬해 오를 공연 관련해서 여러 사람과 통화를 했다. 언제나 새로운 공연을 앞두었을 때는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진통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성공적인 공연을 위한 과정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극단 춤추는 허리의 <불만폭주 라디오>는 라디오 MC가 청취자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총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서른 즈음에’는 나이 서른을 앞둔 발달장애 여성 영진이 자신만의 통장을 만들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충을 유쾌한 톤으로 다룬다. ‘성공한 여자의 하루’는 비장애인 남성과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며 이른바 ‘성공한 워킹 맘’이라 불리는 장애여성 현주의 숨 가쁜 하루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장애 여성이 겪는 일상의 문제를 일체 타협 없이 적나라하게 그리면서 각자의 개성과 혼돈을 진솔하게 표현하여 ‘장애’가 또 하나의 강력한 언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예술가의 몸
마침내 그 질문과 마주했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은 ‘나는 예술가입니까?’였다.
예슬: 안녕하세요, 저는 장애 여성 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의 배우 나예슬입니다.
저는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고, 그러면서 점점 성장하는 제 자신을 느낍니다.
그런데 오늘 누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나예슬님은 자신이 예술가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질문을 받고 한참을 멍하게 멍하게 있었어요.
지난 10년간 무대 위에 올렸던 나의 공연들은 예술이기에 뭔가 부족했던 걸까요?
(중략)
결국 비장애인의 공연을 보다 그럴듯하게 흉내 내고 결과가 어떻든 시도만으로도
훌륭해서 무엇을 어떻게 왜 표현하는지는 보이지 않는 그런 공연을 해왔던 걸까요?
도대체 예술은 뭘까요?
나는 어느 전시회에서 목격한 아주 이상한 예술을 기억했습니다.
(중략)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충격을 주지 않는 작품은 가치가 없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가 휠체어에 앉아 있지 않고 무대 위에 나타날 때 나의 몸이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나의 공연은 단지 그 이유만으로 예술일 수 있는 걸까요?
나의 몸은, 나의 예술은 무엇일까요?
안녕? 나의 몸
(배우들): 안녕? 나의 다리
안녕? 나의 손
안녕? 나의 입
안녕? 나의 배
안녕? 내 머리
예슬 :공연을 준비하는 건 힘들지만 재밌습니다.
(함께): 내가 세상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답을 얻는 것만 같거든요.
예슬 : 가끔 이런 상상도 합니다.
와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어요?
예슬님의 세상을 보는 관점이 제 마음을 움직였어요.
신체의 움직임이 감동적이었어요.
엄청난 연습을 하셨나봐요.
당신은 진정한 예술가네요!
그리고 언젠가는 당당히 세상에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나는 예술가입니까?1)
배우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에 자신의 몸을 펼쳤다. 질문에 이미 압도된 탓일까? 배우들의 몸은 강렬하고 신성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몸과 몸을 연결하고 각자의 리듬으로 움직이는 그 몸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언제나 나보다 월등한 비현실적인 몸들의 율동에 감탄했던 내게 중증 장애 여성 배우들의 적나라한 몸과 움직임은 어느 정도 굳어졌다고 여겼던 내 인생을 뿌리까지 흔들었다.
가장 먼저 그들의 공연을 이제야 공연 평가위원 자격으로 보러 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나는 그들의 질문에 답할 자격이 없었다. 공연에 함께할 배우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숙련된 움직임과 대사 소화력, 건강 등을 판단하던 관성이, 한 번도 스스로 예술가라고 말할 필요 없었던 확신이 참담했다. 동시에 예술이라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마치 타고난 예술 감별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을 분류하는, 이른바 ‘정상성’의 세계를 이토록 맥없이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 울다가 웃었다.
불화하는 몸과 살아가기
모든 연극이 그러하듯, 연극이 끝난 후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서로 인사하고 축하하는 그들 사이를 묵묵히 나와 빙판이 된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누군가에게 이 연극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 연극의 감동은 서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또 무대와 극장에서 장애인 배우들을 만났을 때면 다시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재생되었다. 난 언제쯤 그들 곁의 동료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언제쯤 그날 내가 목격한 것이 내 안에 일으킨 정동과 부끄러움에 대해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장애여성공감을 함께 만들고 활동한 지 벌써 20년이다.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 서로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처음으로 내 몸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것 같다.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도 하고 그 모양이나 기능을 생각해 보면서 내 삶에 미친 인식이나 관계도 생각해봤다. 그렇고 그런 몸이라고 머릿속 어느 한구석에 방치해 두었던 것을 다시 소환해서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작업은 부끄럽고 혐오스럽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털어내고 내 삶에서 어떤 의미로든 존재했고 나와 함께 해온 몸의 수고를 생각할 수 있었다.2)
부끄럽지만 난 늘 내 몸으로 당장 해야 하는 일만 몰두해 왔고 몸이 아플 때조차 내 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다른 이의 몸에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 몸을 구석구석 보고 생각해 본다는 것은 몸을 긍정하고 어여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와 내 몸의 어떤 부분은 끊임없이 불화한다. 장애 있는 몸, 트랜스젠더의 몸, 병든 몸, 늙어가는 몸, 그리고 죽음.
신화적으로 내 몸은 나에게 주어진 ‘자연’이며, 또한 어느 때 어느 곳에 나와 같은 몸이 살았다는 흔적이기도 하다. 내 몸을 온전히 인식한다는 것은 내 몸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로만 여기지 않고 나와 같은 몸으로 살았던 존재들을 상상하며 나의 삶으로 끌어온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리고 나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수많은 타인의 몸과 동물의 몸까지도 살피고 인식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너무 당연하고 올바른 소리 같아 멋쩍어 지지만, ‘나와 함께 해온 몸의 수고를 생각’한다는 장애 여성의 말은 얼마나 많은 몸들이 억압당하고 차별받아 왔는지 생각하게 한다.
그날의 공연, 나와도 다르고 서로와도 다른 몸들이 자신을 펼치고 연결하는 그 장면에서 나를 울게 한 것은 ‘나에게도 몸이 있다’는 자각이었다. 오랜 시간 자신의 몸을 보고 또 보고 생각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예술을 시작한 이들의 몸 앞에서, 내 몸은 삭막했고 예술은 처량했다.
지난 일 년, 난 평생 처음으로 내 몸과 오롯이 함께 지냈다. 일하는 몸, 아이를 키우는 몸, 수업하는 몸,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하고 글을 쓰는 몸에서 벗어나, 아무 할 일이 없어진 내 몸과 온종일 지내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몸이 자주 떠올랐다. 평생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신 아버지는 정년퇴직 이후 일하지 못하는 당신의 몸을 구박하셨다. 그 날카로운 감정이 가족들에게도 전해졌다. 얼마 뒤 새 직장을 구하셨을 때 기뻐하시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일 년간 나의 몸과 지내면서 얻게 된 것은 내 몸에 대한 감각과 감정이었다. 내 몸이 그동안 얼마나 긴장 상태에 놓여있었는지 내 감정이 내 몸을 어떻게 괴롭혀 왔는지 알게 되었고, 천천히 요리를 하고 가보지 않은 길을 오래 산책했다. 자기 몸에 대한 초심자가 할 수 있는 첫 단계이리라. 언젠가는 나도 내가 이해하고 찾아낸 내 몸, 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예술을 할 수 있을까? 예술을 함부로 정의하려는 사람들에게 “나는 예술가입니까?”라고 물을 수 있을까?
고연옥
감히 신화적 세계관으로 동시대를 해석하고 질문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싶은 극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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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4pRjspE8H3c?si=lnCWKP8SS7Mtq_30
- 장애여성공감, 『어쩌면 이상한 몸』, 오월의 봄, 2018, 53쪽.

